여의도 증권사 퇴사 후 강릉에서 지내는 삶은 어떻냐면 자연 속에서 행복한 들숨을,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 섞인 날숨을 내뱉는다. 결국 돈을 벌러 서울로 갔다가 강릉으로 왔다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서울을 이탈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탈서울 한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나의 이 간극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주리님을 처음만난 건 강원 영화학교에서 영화수업을 듣고 영화를 만들었던 2023년 10월. 주리님은 비슷한 시기에 열린 배우수업을 듣던 중이었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내가 만들게 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게 됐다. 알고봤더니 주리님은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강릉으로 온 이주자였다. 그 기분좋은 웃음과 함께 첫 번째 인터뷰 대상으로 주리님과 함께하게 됐다!
이탈; 서울
문화기획자 김주리 이야기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이름은 김주리고, 만으로 서른 살이에요. 강릉으로 이주한 지 1년 정도 됐고, 강릉 오기 전에는 부산에서 5개월 정도 살았아요. 전까진 쭉 서울에서 살았어요.
Q.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서울 살던 당시 일하던 성수동의 카페가 문을 닫았고, 실업급여를 받게 됐어요. 시간과 돈이 생기니까 뭘 할지 고민했죠. 여행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지라 해외를 갈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고3 때 수능이 끝나고 혼자 내일로 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부산을 여행했던 기억이 좋게 남았어요. 당시 해운대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며 '바다가 있는 일상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그 10년 전 마음이 불현듯 튀어나와 몇 개월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부산에 갔습니다. 성수동 카페에서 같이 일하던 남자친구와 함께요. 일자리를 구하고 간 건가요? '일'보단 '산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기 때문에 일자리는 구하지 않고 갔어요.
Q. 부산에서의 삶과 서울에서의 삶은 어떻게 달랐나요?
A. 우선 먹는 음식, 날씨가 달랐고, 서울에 나지 않는 꽃들이 보였어요. 부산에선 광안리 쪽에 살았었는데, 일대 산책을 하는데 집집마다 무화과나무 심은 곳들이 많아서 특이하게 느껴졌어요. 도시마다 개인마다 삶의 양식이 다른 것에 흥미를 느껴서인지 그런 특징들을 관찰하는 게 즐거웠어요.
Q. 부산에서 강릉으로 오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부산에서 지내던 중 성수동 카페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대표님은 디자이너였는데, 당신의 브랜드를 강릉에서 오프라인숍으로 오픈하고 싶다고 얘기하셨고, 남자친구에게 일자리를 제안하시더라고요.
부산 지역 생활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다른 지역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어요. 바다와 산이 조금 더 가까운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적재적소 좋은 제안이 들어와 많은 고민 없이 강릉으로 오게 됐어요.
Q. 강릉 살며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A. 살아보면서 알게 된 건데, 제가 자연 근처에 사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바다를 보고 싶으면 바다에 가면 되고, 들판을 걷고 싶으면 또 들판을 걸으면 되는 게 강릉이었어요. 이런 삶이 일시적인 여행이 아닌 일상이 되니까, 산이든 바다든 쉽게 갈 수 있으니까. 이것이 가장 큰 좋은 점이에요. 자연에 있으면 왠지 위안을 받거든요. 맑은 공기. 높은 건물이 없이 탁 트인 시야. 이런 것들이 저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는 거 같아요.
Q. 반대로 강릉에 왔을 때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A. 탈 서울을 한 건 서울이 싫고 답답해서가 아니라 서울도 재미있는 도시지만, 오랜 기간 살아봤으니 다른 곳이 궁금해서 온 것이었거든요. 지역마다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걸 좋아하기에 불편한 점은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얘기하자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 확실히 서울이 일 할 수 있는 기회나 장소가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강릉에 와서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해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해요.
Q. 하고 싶은 일을 해봤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것들을 하며 살았나요?
A. 이주온 초반에는 수제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선교장에서 다도를 배운 적도 있고, 주말 새벽에는 바다 요가를 나가기도 하고요. 배우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연기도 배웠고, 독립영화 출연을 하게 됐고, 글쓰기 모임 같은 것도 참여해서 나갔고... 지금은 시민문화 기획단에 참여해서 제가 기획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상태예요.
Q. 또 이주계획을 갖고 있나요?
A. 1년 정도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앞으로 1년은 더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적어도 당분간은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직 서울의 삶이 그립다거나 딱히 생각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가겠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아요. 부산에 있다가 서울에서 잠깐 지낸 적이 있는데, 답답함이 느껴지더라고요. 1년 후에는 글쎄, 어떤 도시가 가고 싶을지 모르겠네요. 강릉에 계속 있을지도 모르고요.
Q. 많은 활동을 했는데, 누군가 직업을 묻는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실 거예요?
A. 지금은... 문화기획자.
Q.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나요?
A. 원하는 선택을 하거나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을 때 답답함을 느끼는 편이에요.
운이 좋게도, 부모님 또한 대학교를 가야 한다, 대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라거나 압박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사는데 가치를 두며 살았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다가 그만두고 대학교 대신에 대안학교를 진학했어요. 운 좋게 제가 상상해 온 것과 비슷한 대안학교를 만날 수 있었고, 그 학교를 다니면서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책도 읽었고, 여행도 다녔어요. 제 성향인 거 같아요. 흥미가 있는 것을 선택해서 배우는 일을 좋아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일 순위긴 해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삶의 1순위가 되면 현타라고 해야 할까?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여러 일을 하며 몸과 마음 건강을 우선순위로 두는 삶을 살자는 생각이 들었고, 강릉은 이 우선순위를 지키기에 덧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도시의 분위기가 바쁘고 치열한 분위기도 아니고 느긋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제 기질과 성향에 잘 맞거든요.
Q. 외로운 적은 없어요?
A. 부산에 내려가기 전 서울에 있을 때 '지방에서 살면 어떨까?' 했을 때 지방에는 아무것도 없고, 서울에 다 몰려있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지방에서 외롭기만 하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래도 '고요하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부산에 내려갔고, 살다 보니 친구는 또 생기더라고요. 부산에서 만난 친구들이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따뜻한 기억이 많이 남았어요. 게다가 요즘은 온라인이 잘 되어있으니 서울 사는 친구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걱정하던 외로움은 원하는 환경을 스스로에게 제공해 주며, 그리고 지역의 친구들과 삶을 통해 튀어나오지 못했던 거 같아요.
Q. 강릉에서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A.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해요. 모루도서관을 많이 가고, 다리 건너서 남산 공원을 가는 것도 좋아해요. 남산에는 새소리가 많이 들려요. 평일 낮에 가면 사람도 없고, 날씨 좋을 때는 강아지랑 같이 돗자리 가져가서 앉아있기도 하고. 언스, 펌킨오울, 바우어 등 편안한 환경의 카페에서 다이어리 쓰는 일도 좋아해요. 송정해변 소나무길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신사임당 생가 쪽도 자주 걸어요.
Q.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망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자리가 고민이라고 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막연한 불안으로 괜히 서울을 떠나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런 불안감이 들면 꼭 한 번에 이사오지 말고, 한 두 달 살아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근데 사실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닐 수도 있거든요. 생각하기 나름이랄까?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고 마음 편하고 즐거운 환경은 뭘까? 에 대해서 적어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다면 선택하기 수월할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Q. 결혼을 하거나 집을 살 생각이 있나요?
A. 우선 결혼을 하는 게 꿈은 아니에요. 그냥 살다가 필요하면, 혹은 시기가 되면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집도 지금은 굳이 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서울에 집이 아직도 있는데, 전세기간이 남아있고, 아예 정리하기로 했어요. 안 돌아갈 거 같아서 완전히 빼기로 했거든요. 이와 별개로, 사고 싶다는 바람은 지금은 없어요.
결혼보다 집을 사는 것보다 바라는 것은.. 내 삶에서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에요.
Q. 돌아다니면서 들고 다닐 그 가방엔 무엇을 넣을 거 같아요?
A. 볼펜이랑 공책..
옷 한 두벌..
텀블러.. 수저..
손수건
카메라?
이 정도이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이탈자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기록되시길 원하는 분들은 댓글 혹은 인스타그램 DM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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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 : www.instagram.com/aloha_jj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