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조각이 이루는 완전체가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누군가를 이루는 낱개의 편린만을 본받는 건 옳은 걸까. 처음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의 일대기에서 비롯한 저자의 위태로운 인생의 과도기를 넘기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지인이 추천한 책이라는 것과 대중들이 올려놓은 베스트셀러라는 데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종이를 넘길수록 도저히 본받을 수 없는 면모들이 드러났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어쩌면 창피해 보일 수 있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자연의 하찮음조차 품으려 했던 순수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과학자로서 때 타지 않은 열정을 보였다. 여러 번 꿈을 담은 유리병이 깨져도 아무렇지 않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습은 과학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존경했다.
하지만 그를 파멸적인 우생학자로서 타인을 극으로 몰아가게 만든 것은 분류에 대한 그의 오염된 사랑의 집착이었을까, 아니면 대학의 학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치였을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는 학살자인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앞의 질문에 부정한다. 그의 그릿grit과 파괴되지 않는 것, 저자가 삶을 돌아보게 한 그것들이 그의 파괴적인 면모로부터 비롯되었을지, 그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지 않는가. 편린도 결국엔 하나를 구성하는 일부이므로. 모여서 하나의 개체가 되고, 어엿한 존재가 되므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에필로그인 듯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 이야기의 첫 실마리였던 물고기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게 착각일 수 있다는 것, 자연의 사다리란 결국 인간이 군림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럴듯한 거짓 근거라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넘기며 읽어 받아들인 미디어의 지식 조각이 사실은 그럴듯한 오류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