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친구를 보낸 자리에서 도망치듯 시작한 결혼

부제 :엄마라는 성벽을 넘기 위한 유일한 비상구

by 플맘


# 1. 20대의 마지막 선물, 친구가 남긴 '면죄부'


20대의 끝자락,

나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나를 '온실 속 화초'라 부르지 않았던 단짝을 잃었다.


우리 집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을 때,

센텀 꽃집의 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돈 천만 원에 밤잠을 설치던 내게

툭 하고 그 큰돈을 건네주었던 겁 없던 친구.

나중에야 알았다.


그 돈은 친구가 자신의 암 진단금으로 받은 소중한 생명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나를 믿어 줬다는 것을 .


친구가 떠나기 얼마 전, 평소와 달리 돈을 돌려달라고

몰아부치던 그 낯선 모습조차 나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던 마지막 배려였음을

나는 너무 뒤늦게 알았다.


그해 2월, 2층에서 뛰어 내려오며 전화를 받으려던 찰나

엄마의 입에서 나온 "00이 동생인데?"라는 말 한마디에

내 걸음은 멈췄고 눈물은 주륵 흘러내렸다.


친구의 부재는 "너도 이만큼 살았구나"라는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그 상실감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서둘러 다음 각본으로 뛰어들었다.


11.jpg



# 2. 내 감정을 잃어버린 '슬픈 사이코패스'


30살이 되던 해.

친구들과 크루즈 여행을 약속하며 찬란한 서른을 꿈꿨던 기억은 지킬 수 없는 부채가 되어 남았다.


당시의 나는 극도로 지치고 불안했다.

20대 내내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법을 잊어버린 탓이었다.


슬픔조차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곧장 현실의 문제로 나를 밀어붙이는 나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는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냉정한 사람인가? 사이코패스인 걸까?'


하지만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마비였다.

해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 자존감은 나를 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았다.


7년을 사귄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으면서도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지금 이 사람을 놓치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야.'

바닥까지 주저앉은 자존감은 나를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12.jpg


# 3. 생애 최초, 엄마의 각본을 거부하다


나는 이 결혼이

엄마라는 거대한 성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철학관의 예언을 빌미로

"너는 서른여섯에 결혼해야 한다"며 축복 대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남편이 될 사람의 조건부터 성격까지,

엄마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이 공론화되었다.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내 결혼은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실패작'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나는 오기가 생겼다.

20살 무렵부터 다짐했던 한 가지,

내 인생을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단 하나의 이유를 지키고 싶었다.


"내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만큼은 오롯이 내 마음으로 선택하겠어."


항상 엄마의 선택을 따랐기에 실패도 엄마 탓만 하던 비겁한 내 모습이 죽기보다 싫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남 탓이 아닌 내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이겨내 보고 싶었다.


10.jpg


# 4. 투룸에서 시작된 호흡, 그리고 만삭의 질주


억지로 쥐어짜 만든 아파트가 아닌,

우리 둘의 온기로 채운 작은 투룸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물리적인 거리가 생기자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남편과 함께 미래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과 분양을 공부하며

비로소 '우리만의 성'을 쌓아가는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엄마의 세계'는

일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붙잡았다.


첫째를 낳고도 이모님께 아이를 맡기며 밤낮없이 일했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네 인생이 없어진다"는 아빠의 우려 섞인 조언을 뒤로한 채 출산을 결심했다.


그해 10월,

나는 조산기로 병원에 입원 할지언정

만삭의 몸으로 4박 5일간 전국기능경기대회장에 섰다.


무거운 몸으로 도구를 다루며 내가 증명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입상은 실패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아이를 품고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 그해 12월에 만난 둘째는

내 인생에 큰 변화의 시작을 가져다 주었다.


13.jpg 2019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부산대표선수



# 5. 무너진 경계, 다시 시작된 사투


행복도 잠시, 코로나라는 거대한 폭풍이 덮쳤다.


15년 만에 새로 이전한 엄마의 학원은 문을 열자마자 위기를 맞았고,

설상가상 아빠의 위암 판정까지 이어졌다.


기우는 학원 형편을 알기에 나는 차마 엄마에게 월급을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착한 딸의 비중이 커질수록 남편과의 갈등은 깊어졌고,

나는 다시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혔다.


엄마의 과거 방식과

나의 새로운 방식이 충돌할 때마다

나는 비겁한 도망자가 되었다.

엄마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핑계를 대며 내빼는 내 자신이 한없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정당하게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도망갔던 그 비겁함조차,

무너져가는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음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불효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독립 선언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9.jpg



� 독자와의 소통 : 작가의 한 마디


이 이야기는 ,

엄마를 원망하는 딸이 이야기도

자기의 삶을 부정하는 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냥 성공으로 달리는 길목에서 , 잠깐 쉬어가며

혹시나 내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안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오지랖으로 적는 제 삶의 에세이 입니다.


올리면서도 , 누가 읽어 줄까

읽는 사람이 없으면 , 어쩌지 ,

이렇게 살아온 내 삶이 이상해 보이면 어쩌지

등등 많은 걱정속에서도 용기있게 올린 글에


한분한분 좋아요가 , 저에겐 새로운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제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 감사하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