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없는 간호사와 인니 사업가의 만남

누운 환자가 아닌 서 있는 환자가 보고 싶었던 나의 부서 이동 수난기

by 인니 집주인

진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 나의 피곤함이 거울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4 night 들어가는 그 첫날이면 마치 월요병 같은 학습된 피곤함이 몰려오는 건 병동으로 로테이션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학생때는 나이트 근무를 안했었고 정식 취업이 된 병원에서의 첫 근무처는 수술실이었던 나는 수술 집도의가 있어야 수술이 돌아가는 근무 특성상 과장님들의 외래 진료가 지연이 될때면 의도치않게 꿀맛같은 휴식을 즐길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것은 오더를 받아 수행하는 여느 타 파트와는 확실히 다른 근무 형태였으며 장담하건데 수술실이야말로 간호사와 의사가 병원에서 가장 수평적인 관계의 근무처일 것이다.

수술이 시작되면 머털도사같이 바짝 머리를 세울만큼 집중하며 스크럽을 하던 나도 3년의 시간이 흐르니 모든 파트의 수술에서 눈이 손과 함께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지만 이런 익숙함과 능숙함은 이내곧 매너리즘이라는 사치스런 감정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 날은 자꾸 몇일 전 재미삼아 본 이대근처 사주까페에서 들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빗을 꽂아도 안 내려갈듯한 사자머리 펌을 한 까페 주인장은 빠르게 사주를 써내려 가더니..


뾰족하고 차가운거 만지는 직업이 잘 맞아..

(처음엔 간호사란 말 안함;;)

해외에 오래 나가 있을 사주야.. 단기 연수 몇년 그런거 아니고 아주 오래.. 오래 말이야

(네? 전 해외 여행도 간적이 없는데요??)

남편이 가져다 주는 재운이 크네..

(남친도 없는데 그럴리가요;;)

배에 흉터 남는 수술을 하겠어..

(에?? 제 배에 무슨 말씀이세요..ㅠ)


특히나 그 당시 간호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 주인장 말씀으론 지금 사주와 잘 맞는 일을 하고 있고 잘 맞는 일을 할 때 사주가 피어난다.. 그 일을 하고 있어야 사주대로 좋은 사람을 만난다..

그렇게 나는 그날 일 그만 두지 말라는 만류까지 그분께 들어야 했다.

해외여행도 한번을 가본적 없는 내게 주인장의 전체적인 말이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렸지만..

그렇게 간호사가 잘 맞다니.. 나는 고민하던 끝에 일은 그만두지 않고 파트를 바꿔보기로 했다.

늘 이동 베드로 환자를 인계 받고 수술 후 이동 베드로 인계 보내는 이 수술실엔 여초 80%에 유부남 과장님들과 중성의 남자 사람 간호사들만 있을 뿐.. 나도 좀 서있는 환자 구경해보고 싶다는 농담 어린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간호사로서 더 다양한 실무 경력을 쌓아보고 싶다는 상담을 수간호사님과 하고 두달 후.. 그렇게 난 병동으로 로테이션 될 수 있었다.

좀더 환자와 가까운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하루에도 몇십명의 입퇴원 환자 리스트를 처리하며 화장실 한번 갈 시간없이 일에 적응해야 했다. 어이, 아가씨, 이봐요 등 의료 서비스가 아닌 그냥 서비스직을 대하는 듯한 환자들도 있었지만 환자 분들을 직접 대하며 소통하는 병동 생활은 좀더 사람냄새 나고 가끔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하루 하루 막중한 업무에 적응해 갈때쯤.. 나이트 근무에서 받은 인계 중 어느 신환의 한 히스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해외 근무지, 다른 지방의 주소지라..

다 큰 성인이지만 보호자 하나 없이 홀홀 단신으로 입원한 그 환자는 별로 대단하지 않았던 감기로 외래에 왔다가 약도 제대로 먹지않고 놀러 다니다 급성 상기도 감염으로 타지에서 입원까지 하게 된 미련한 환자였다. 근데 보면 볼수록 특이했던 그 환자는 심심하다고 혼자 몰래 나가서 dvd player를 사와서는 cd를 바꿔가며 밤새 영화를 보고 몰래 외출해서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 미안했는지 병원 옆 패밀리 마트에서 봉지 하나 가득 먹거리를 사올 때가 있었는데 그가 들고오는 패밀리 마트 봉지 하나지만 족히 10만원은 넘는 간식거리가 가득 가득 들어 있었다. 2만원짜리 초코렛, 수입 과자, 수입 아이스크림, 김밥, 햄버거, 5만원 넘는 와인 등등.. 병원 근무하면서 와인 사다주는 환자는 처음이라며 와인은 왜 샀냐니 썩는거 아니니 놔두다 보면 마실 일 생기지 않겠냐고..;; 이건 뭐 아재 개그도 아니고 재미도 없고.. ;;

하루는 또 자리에 없어서 전화를 걸어보니 잠시 친구들과 저녁 먹는 중이라고 하면서 같이 있는 친구들한테 "야, 가만히 있어봐 우리 간호사 선생님한테 전화왔잖아" 하니

"오~~~~~" 하는 친구들 소리가 전화기 너머 그대로 전달되었다.

ㅎ ㅏ... 여자친구 놀이 아니구요, 환자 위치 파악 중이었습니다가 단전에서 올라왔지만 간단하게 귀가 예정 시간만 체크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허스키한 목소리에 잘도 히죽댔다;;

입원을 한건지 호텔 투숙을 하는 건지 나에겐 그저 불량 환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잘 치료받으시고 얼른 퇴원하시길 바라는 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데 왜 지금 내 옆에 있냐고요...-_-;)





계속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