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간의 연애 종지부..

그것은 결혼이었다

by 인니 집주인

4 night 근무 후 이틀을 쉬고 이브닝 근무에 들어오니 이제 다 나은듯한 낯빛을 한 그가 투약을 하는 와중에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내일 퇴원을 앞두고 있던 그날..

나는 나의 익숙한(?) 감으로 왠지 이 환자가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거라며 김치 국물 한사발은 너끈히 드링킹한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근무하던 병원이 대기업 진료 협력 병원이라 젊은 환자들이 많았는데 근무중 사적으로 번호를 주고받지 않겠다는 20대 중후반 나름의 야무진 근무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처치를 하러 가니 역시나 시덥잖은 농담이 시작된다.

고수는 고수의 의중을 알아보듯 아 네네~ 하고는 돌아서는데..

갑자기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는게 아닌가..!

자기는 한국에 살지도 않고 외국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도 잘 안들어오니 자기를 그 어떤 미지의 사람처럼 갑자기 가슴 답답하고 어딘가 하소연 하고 싶을 때 그냥 자기한테 메일을 보내라는 것이다. 그럼 자기가 들어주겠다고..

나에게 있어 이메일이란 그저 스팸 창고같은 곳인데..

머리속 가득 번호 안돼 번호 아니야 번호는 아니지 번호는 안줄거야 번호 번호 번호.. ;;

그랬었는데.. 그런데.. 이메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이메일 선공에 잠시 멈칫할 때 이미 그 사람의 손에는 수첩에서 찢어서 쭈삣 건넨 이메일 주소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받아들고 나니 헛웃음이 났다.

아.. 번호가 아니라 이메일이라니..

이메일을 물어본 사람이 없어서 순간 당황 했었나부다.


고등학교때 학교에서 단체로 국군 아저씨와 펜팔은 한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막 20살이 넘은 까까머리지만 대학생 같은 오빠들인데 친구들과 나는 꼬박 꼬박 국군 아저씨 안녕하세요? 라고 썼었고 그럼 한번만 오빠라고 불러주면 안되겠니 라는 장난스런 하소연 답장이 날아오던 그 펜팔도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단절됐었다.

근데 이메일이라..

어찌됐건 결국 내 손엔 그 사람의 이메일 주소가 쥐어졌다.

(뭔가 의문의 1패 같은 이 느낌은 뭐지??)

하지만 이내 곧 절대로 다시 볼 일이 없다는 듯 핑크 가디건에 구겨놓곤 일상에 집중했다.

그가 내 일상이 될 일은 죽었다 깨나도, 하늘이 두쪽이 나도 없다고 생각 했으니까..


이메일이 내 기억 심해 저 바닥 끝으로 가라 앉은 한달 후 어느 날..

병원에서 일이 터졌다.

당일 입원한 할아버지 환자가 혈당이 쭉쭉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급하게 50dw 수액을 오더 받아 한고비를 넘긴 후 원인을 파악하니.. 인지가 떨어지시는 노부부여서 질의응답에 팩트 체크가 안됐었고 자식들도 멀리 사니 보호자로서 병원에 달려오긴 했으나 정확한 투약 사실은 알 수 없기는 마찮가지...

식전에 복용하는 당뇨약은 따로 포장이 되어 있는지라 이전 투약 여부 사실 확인시 그것만 쏙 빼고 고지혈증, 고혈압 약만 확인 된거고 과장님 처방으로 당뇨약이 들어가니 갖고 계시던 약을 드시고 처방된 약도 드시고 그래서 결과는 저혈당 증상 발현...

같이 근무한 순두부 멘탈의 1년차 쌤은 바들바들 떨었고

결국 모든 화살은 경력 4년차인 나에게로 돌아왔다.

다행인건 저혈당 쇼크로 가기 직전에 액팅을 하던 선생님께서 보시고 빠르게 오더를 받아 처치를 할 수 있어서 사고는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 간호사 선생님은 경도 치매끼가 있던 환자 분인데 셀프 투약까지 어찌 알겠냐며 우리가 더 잘 체크 하자셨고 사건은 거기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입원시 부터 개인 위생에 문제가 보였고 반복되는 상동어도 평범하지 않았다. 짜증스런 말투로 만사 귀찮아 하듯 대답을 회피하셨다. 그런 분의 대답에만 의존해 써내려간 입원전 투약기록은 좀더 신경썼어야 했는데.. 좀더 꼼꼼히 체크했어야 했는데..

짐을 한번이라도 뒤져볼 걸.. 할머니께 더 자세히 물어볼걸..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쇼크까지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

가슴을 짓누르는 의미없이 되뇌이는 말들이 나를 점점 더 옳아메 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빈 껍데기 같은 몸을 끌고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그 때 불현듯.. 그 이메일 쪽지가 생각났다.

간호복 가디건에 손을 넣으니 가디건과 함께 세탁, 탈수, 건조까지 함께한 쭈글쭈글한 종이가 나왔다. 희미하게 번졌지만 확실히 보이는 그 주소로 내 마음을 탈탈 털어보였다.

걱정할까봐 가족들한테도 말할 수 없는 얘기..

창피해서 동기들한테도 못하는 얘기..

갑자기 보낸 이메일에 폭풍같은 내 사연을 쏟아 부었고 2억만리에 계신 그 분은 마치 옆에 있는 사람처럼 덤덤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한통, 두통, 편지를 주고 받다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잘 맞았던 우리는 본격적으로 롱디 커플이 되었다. 감질나는 이메일 대신 화끈하고도 살인적인 00365 국제 전화로 끝없는 통화를 이어갔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 한달 월급보다 전화비가 더 나오는 나날이 지속됐고..

사귄지 60일쯤..우리는 전화비도 아낄 겸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그 후 한달 안에 예식까지 마무리 하고

지금은 그 때 호다닥 결혼해서 전화비도 아끼고 좋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다들 이렇게 눈에 뭐 뵈는게 없이 하는게 결혼 아니겠냐고ㅎㅎ


결혼 후 해외 여행 한번도 해본적 없는 내가,

해외 의료봉사 지원해 보겠다고 여권만 만들어놨던 내가

드디어 말간 여백에 첫 스탬프를 찍고 인도네시아로 날아갔다.

비행기 아래 몽글몽글한 구름이 융단을 깔아주듯 인도네시아로 날 데려갔다

그렇게 시작된 인생 2막을 창문 안으로 쏟아지는 노을과 함께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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