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주택은 처음이라..

요리는 할수록 는다.. 늘 때까지 하니까..

by 인니 집주인

"왜에? 맛이 이상해??"


첫 술을 입에 넣은 남편의 표정을 살피는 내 모습이 누가 봐도 영락없는 새색시 그 자체다.

단칼에 맛없음을 확인한 나는 반찬에 실패!라는 빨간 글자의 낙인을 눈으로 새겨 놓았고 그다음부턴 남편이 더 먹든 말든 이미 머릿속으로 다른 레시피를 그리고 있었다.

쓸데없 드넓기만 한 인니 구옥 주택에서 친정도 시댁도 없이 단순한 정보 하나 물어볼 것도 없는 불모지 같은 곳에서 나의 인도네시아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 지독한 공허함과 외로움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지지든, 볶든, 굽든 뭐든 해내야만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었다.

실은 그 집엔 데위라는 남편이 총각 때부터 데리고 있던 작고 마르고 선한 눈빛을 한 아이가 있었는데 늘 아침에 일어나 한 두 가지 볶음 요리에 계란, 김치와 정체는 모호하지만 먹어보면 맛있는 그런 국물로 아침을 차려주곤 했다. 굳이 내가 요리한다고 설치지 않아도 이미 그 친구의 요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던 남편이었기에 내가 요리를 해서 망치든 어쩌다 운 좋게 맛이 나든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한 음식이 맛없으면 어제 저녁에 먹었던 그 반찬을 얘기하며 가정부 반찬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요리에 욕심을 부리게 되면서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식자재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가령 감잣국을 끓이려고 감자 두 개를 내일 써야지 하고 놔두면 새벽부터 일어나 집을 청소하는 그 아이의 아침용으로 삶은 감자가 되어 김을 모락모락 풍기며 맛나게 푹~익어 있었다;;

도움을 받지만 도움이 안 되기도 하는 이런 미묘한 한집 살이 관계에서 당연히 남편도 완전히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도 당연 장보기 비용을 줘야 했고 데위에게도 3인분의 장 보는 비용을 줘야 했다. 입은 하나 더 늘었는데 어째 빠지는 돈은 마치 5인 식구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데위가 해주는 반찬만 먹자니 내가 물렸고 내가 해주는 반찬만 먹자니 아직 식자재 적응 중이었던지라 그 또한 부담이었던..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삐걱대며 각자의 방법으로 적응 중이었다.


그날도 커뮤니티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김치를 보곤 뽄독인 O 몰 푸드홀 마켓으로 장을 보러 갔다. 6번 로비로 들어가 몽블랑 매장을 지나 지하로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오른쪽에 스벅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인 아줌아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는 연배가 많아 보였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그 틈에 끼어 어마 무시한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싶 마음을 그저 꾹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이 스타벅스 굿즈를 를 구경하며 그저 오디오로 만족하고 발걸음을 돌아섰던 그때 멀어지는 한국말이 그냥 서러웠다.

장을 보다가 눈에 습기가 어린 순간이 지독히도 많던 시간들..

그렇게 외로운 시간을 요리로 가득 채웠던 나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재미났다.

가령 족발이 먹고 싶으면 돼지 뒷다리를 사 와서 매끈하게 제모를 하고 남겨진 억센 털들은 가스불에 그을려서 모조리 정리해 준 다음 물에 한번 끓여 잡내를 없애고 두 번째 물에 갖가지 향신료와 간장, 커피, 설탕을 넣고 뭉근하게 졸여주었다. 푹 흐드러지게 3시간 삶은 뒷다리를 따뜻할 때 뼈에서 분리해서 유리 네모 반찬통에 두면 네모나게 각진 편육 같은 모양이 잡혔고 그걸 얇게 썰어 먹으면 한국 같은 맛이 나곤 했다. 물김치라고 할걸 그랬다 할 만큼 홍수가 났던 포기김치도 점점 때깔과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인도네시아 대통령 집에도 산다는

찌짝 도마뱀의 출몰도 이젠 놀라지 않고

인도네시아어도 조금은 익숙해졌고

인도네시아 돈 루피아 계산도 척척~

그렇게 세 사람도 3인 체제에 익숙해져 갈 때쯤..

데위는 오랜 남자 친구와 결혼하며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빨래할 땐 늘 호주머니를 뒤져서 나온 돈은 동전 하나까지도 고이 한쪽에 모아두고 새벽부터 성실하게 걸레질을 하던 그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쯤 그 아이도 아줌마가 다 됐겠다며..

언젠가 우연찮게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잘 지냈었는지, 아이는 몇 명인지

결혼할 때 내가 사준 냉장고는 아직도 잘 쓰고 있는지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때 수입산 감자 삶아 먹은 거 눈치 줘서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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