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양을 훔쳤어! 어떻게 하지?

사회 규범과 가족 사이의 딜레마

by 곤이

『논어』의 「안연」편에 ‘정명(正名)’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군주일 때는 군주답게, 신하일 때는 신하답게, 아버지일 때는 아버지답게, 그리고 자식일 때는 자식답게 해야 한다.” 이 짤막한 여러 해석과 설명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이 구절은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번역되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할 윤리’를 강조하는 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이 여러 역할(군주, 신하, 아버지, 아들)을 맡을 때 각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역할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있다. 나 역시 시민, 아들, 남편, 아빠, 선생 등 여러 역할을 가졌고 그에 따른 의무도 함께 주어진다. 그런데 이때 시민으로서 나와 아들로서 나의 역할과 의무가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논어』 「자로」편에 이런 모순 상황을 다루는 이야기가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하길: “우리나라에 정직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양 을 훔쳐서 그 아들이 그를 고발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우리나라의 정직한 사람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겨주고(隱),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주니, 정직함이란 이것입니다.”


초나라 귀족인 섭공은 법의 준수를 곧 정직함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범법행위를 한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여긴다. 이는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반면에 공자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가족을 법으로부터 숨겨주는 행위가 정직하다고 한다. 공자의 이 말은 다소 모호하다. 왜 서로를 숨겨주어야 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규범과 가족 간의 유대 혹은 이익이 충돌할 때 가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태도는 명확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자의 입장은 사회 정의 실현과 피해자 구제보다 가족의 이익과 안위를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공자의 말이 무조건적인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만약 이 문제가 익명의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면 어떨까?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준법의 의무가 있고, 동시에 자식으로서 가족에 대한 감정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범법행위를 알게 되었을 때, 과연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99%는 부모를 숨겨주겠다고 답한다. 신고하겠다는 1% 중에도 바로 신고한다는 의견과, 갈등 끝에 결국 신고한다는 의견이 있다. 신고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자가 설명하지 않은 그 이유도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이유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공자와 유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형법 제151조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을 은닉하거나 도피하게 한 경우 처벌하지만, “친족, 호주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왜 이러한 특별법이 있는지 부연 설명은 없지만, 가족 간의 감정에 대한 존중과 가족 간의 신뢰와 유대가 사회적 안정을 위한 기초라는 생각에 근거한 입법적 배려로 해석할 수 있겠다.




공자의 입장을 인정하더라도, 사회 정의와 피해자 보상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가족의 가치와 사회적 정의는 함께 추구할 수 없는 것일까?


공자에 따르면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는 것으로 본인의 일이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걸릴 수 있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옳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공자는 아들이 아버지를 숨겨주고 난 후에 그 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리인」편에서 부모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 자식은 “조심스럽게 간(諫)해야” 하고, 부모가 듣지 않더라도 계속적으로 ‘간’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의 ‘간’은 ‘말로 잘못을 바로잡다,’ 즉 간언을 의미한다. 양을 훔쳤다면, 잘못을 알리고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덕적 책임이다.


사실 공자는 처음부터 잘못을 숨겨주라는 의미로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원문에서 ‘은(隱)’을 ‘숨겨주다’로 흔히 번역하지만, ‘은(隱)’은 ‘은괄(檃栝)’ 즉 ‘휘어진 것을 바로잡음’ 혹은 ‘휘어진 것을 보이지 않게 하다’의 뜻도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말로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숨기다’ 보다는 ‘바로잡다’가 더 공자의 의견에 부합할 수 있다.


이처럼 간언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자는 가족의 잘못을 단순히 은폐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추론할 수 있듯이 아들은 아버지가 훔친 양을 돌려주게 하거나, 금전적 보상을 하거나, 자수를 하게끔 했을 것이다. 공권력에 신고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가족 내에서 해결하면 더 진정한 반성이 가능하다고 본 듯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부모와 자식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만약 섭공이 남남인 타인을 예로 들었다면 공자는 아마 섭공에 동의했을 것이다. 비혈연 관계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 따라 고발하는 행위가 정직함이며,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요지는 타인과의 관계에 따라 행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는 점이며, 맺고 있는 관계에 얼마나 솔직하게 반응하는지가 정직함의 기준이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자.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효는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