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
말띠 여자라서 그런지, 나는 말(horse)에 대해 관심이 많다. 말 그림도 좋아하고, 말이 등장하는 영화도 좋아하고, 심지어는 말 모양의 소품들도 좋아한다. 영화속에서의 말은, 훤칠한 남성미 풍기는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달리면서 주인공을 더 돋보이도록 하는 부(副)캐릭터로, 또는 경주마로, 혹은 전쟁터에서는 전우 같은 존재로, 더 나아가 인간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치료사로도 등장한다. 그래서 말은 영화에서 종종 길들여 지지 않는 자유, 그리고 신뢰와 치유의 존재로 그려진다. 매끄럽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바람을 가르는 야성미가 있는 말이나, 주인을 대신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비극을 맞는 말이나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온 몸을 던져 달리고 인간에게 봉사한다.
퀼트로 붉은 말 소품을 만들었다. 자격증을 받는 수강생들을 위한 선물이다. 앞을 보고 달리되, 멈출 때를 알고, 다시 나아갈 줄 아는 용기를 갖기를 소원하며 작지만 넘치지 않는 내 사랑을 담아 만들었다. 이 작은 말이 불처럼 뜨겁지 않지만 그들의 손에 온기를 전할만큼만 되어도, 그리고 그들이 가끔씩 길을 잃고 헤맨다는 느낌이 들때 그들에게 보내는 내 응원이 그들의 손에 잡힐 정도만 되어도 나는 더 행복할 것이다.
말에 대한 글을 쓰자니, 오래전에, 감명깊게 보았던 '워 호스(War Horse)'와 '더 호스 위스퍼러(The Horse Whisperer)'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더 호스 위스퍼러'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인데다가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이 일품인, 미국 북서부의 몬태나(Montana) 주가 배경이라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다. 이상하게도 몬태나가 배경이 되는 영화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가을의 전설' 처럼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뿜뿜인 배우(브래드 피트)가 등장하지만 동시에 여성들에게는 보호본능을 일으킬 정도의 순정남이 등장한다. 특히 영화 '가을의 전설' 속, 주인공 트리스탄이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들은 우리 여성들에게는 숨을 멎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 '더 호스 위스퍼러'는 어찌 보면 말을 타다가 사고가 난 한 소녀와 그녀의 말(필그림)의 치료와 치유를 위해 말 치료사인, 주인공 로버트 레드포드를 찾아가고 점차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다소 지루하게) 보여준다. 순전히 인간에게도 기대하기 힘든 인간과 말의 깊은 유대감을 보여주는 영화로, 승마를 통한 신체치료(균형감각, 골반이나 척추의 자세 조절 및 운동기능 향상)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말과의 교감이 정서적 치료 및 심리치료적 효과까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말은 인간이 느끼는 긴장감, 불안 그리고 공포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하여 '감정의 거울'처럼 보여준다.
말은 본래 초식동물이라 포식자들로부터의 경계심이 강하여 미세한 움직임에도 예민하다고 한다. 그래서 상처 받은 인간, 불안해 하는 인간의 그 미세한 감정에 즉각 반응하고 심박수나 에너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쌓은 인간과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은( 영화 '워 호스'에서 소년 알버트와 말 조이 사이의 우정처럼) 전쟁터에서 조차 인간(군인들)에게 평화를 떠올리게 하는 안식처가 되어 주거나,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처입은 두 존재(알버트와 조이)가 서로를 확인하고 치유되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인간존재 자체에 대한 위로가 되어 준다. 즉,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는 동반자이자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희망이라고나 할까?
중세시대에, 말은 신분과 권력 그리고 부를 상징하는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말은 매우 고가의 재산이자, 단순히 탈 것 이상의 것이었다. 즉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오직 상류층만이 감당할 수 있는 신분적 증거가 되었다. 중세시대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멋진 기사(knight)는 갑옷을 입고 창이나 검을 들고 돌격하는 말 등 위에 있어야 더 빛이 난다. 말이 없으면 기사도 아니며, 말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곧 전투에서 패배함을 의미했다. 특히 말이 공포에 떨며 전진하지 못하거나 부상을 입고 도망 친다면 기사도, 전쟁도 끝이 난다. 말과 비슷한 당나귀나 노새는 전투용이라기 보다는 주로 노동용이었기에 말은 오늘날로 보자면 최고급 전투 장비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역사가 오래된 나라 정상들의 의전 행렬을 보면 빠짐없이 멋진 말이 등장한다. 스페인이나 영국의 국빈 의전행렬을 보면 화려한 말 장식과 안장, 그리고 마차까지 더해져서, 말을 탄다는 것이 아직도 계급 선언 같고 영광과 부의 과시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말에서 내려온다는 것, 아니 말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속도와 높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것을 잃는 의미가 될 것이다. 우리말에도 '낙마(落馬)' 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중일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도, 또다른 목적지를 향해 이제 방향을 튼 사람도 자신의 심장 소리를 말발굽 소리 삼아 중심을 잃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한편 어떤 사람은 낙마를 한 것인지, 아니면 말이 도망을 간 것인지 상관없이 말에서 내려와 터벅터벅 외로이 걷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서 책임과 현실 속 삶의 무게 때문에 말에서 내려와 체념속에서 힘들게 걷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은 항상 전력질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잠시 멈추어 되새김질도 하고,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하면서 자신의 등에 올라 타 함께 달릴 (주인)친구를 기다린다. 당신은 지금 당장 말등에 올라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말은 언젠가 당신을 다시 태울 준비를 할 것이고 당신은 다시 안장을 잡는 용기를 내면 된다. 만약에, 만약에라도 혹시 자신의 말이 사라졌다고 느낀다면 스토리의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말을 만날 기회라고 여기면 된다.
" 나의 말은 아직 살아 있는가?"
" 나는 아직 탈 수 있는가?"
당신의 말은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당신을 다시 태울 준비를 할지 모른다!
< 예로부터 역동적인 생명력과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의 의미를 지닌 붉은 말 >
이제, 당신의 말은 당신의 신분, 과거, 그리고 실수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다. 그냥 당신이 이 작은 말에게 내면의 두려움, 존재의 외로움, 그리고 당신 마음 속 그리움을 털어 놓으면 그 동그랗고 말간 두 눈을 당신에게 맞추며 묵묵히 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조용히 자신의 등을 내어 줄 것이다. 당신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함께 달리자고!
이 작은 말이 당신 존재의 파트너이자 감정의 안식처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