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 불륜, 복수, 멜로'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던 일명 'K-드라마'의 트렌드는 이제 그 뿌리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났다.
일찍이 서인도의 부두교에서 전설처럼 내려온 '좀비'라는 오컬트적 존재는 그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조지 A. 로메로의 잉태와 출산을 거쳐 이제는 동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반도 국가가 세계에서 제일 그럴듯하게 만드는 국가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그렇다면 '학폭'은 어떠한가, 일본의 '이지메' 문화에서 비롯된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이 이제는 그 이웃나라 한국에서까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이제는 드라마의 소재로서 빈번하게 소구 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국 청소년 들은 자칫 세계에서 제일 악랄한 청소년으로 비칠 정도가 되어버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 1은 단순한 빌런 VS 선의의 동맹의 대립을 그린 드라마가 아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방관자'가 될 수 있으며, 악인과 선인 모두가 가진 이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더 글로리> 파트 1 인물모음도(사진 출처=넷플릭스)
시크릿 가든, 도깨비, 시크릿 선샤인까지.
가장 트렌드를 잘 읽는 작가 '김은숙', 그녀는 왜 본인이 드라마 작가계의 아이콘이라 불리는지 <더 글로리>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시대극과 장르물,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굵직한 흥행작들을 내놓은 이후 그녀는 위기를 겪는다.
이민호와 김고은이라는 당대 투톱 흥행 배우들을 기용하며 야심 차게 내놓은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실패가 납득이 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작품은 10%도 채 되지 않는 시청률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필모에서 큰 오점으로 남게 된다.
이에 절치부심 했던 것일까?
넷플릭스를 통해 내놓은 <더 글로리>는 청자의 호흡보다 빠르게, 예측할 수 있는 대사보다 적나라하게, 참담한 주인공들의 고통과 각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캐릭터의 당위성을 기성 드라마들보다 더 노골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하며 본인이 가진 필력과 내공이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 최대의 난적이 되는 박연진 VS 문동은(사진 출처=넷플릭스)
드라마의 가장 큰 대립각과 축을 이루는 인물은 송혜교가 분한 문동은과 임지연이 분한 박연진이다.
사실상 자신을 고아와 다름없이 키운 엄마(박지아 분)로 인해 외롭고 가난하게 홀로 학업을 이어가던 동은은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최대의 적 박연진을 만난다.
첫 만남부터 화장실 청소를 대신해 줄 것을 '명령'하던 연진에게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버린 어린 동은은 그 이후 악몽과도 같은 학업 생활을 이어가며,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연진'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청자들은 동은의 목표에 동화가 되면서도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연진과 같은 위치에 오르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살인을 감행하겠다는 것일까?
물론 극 중에서 동은은 '사회적 살인'에 대한 암시를 이야기하지만, 파트 1이 끝난 시점에서는 아직 빌드업의 과정까지만 다뤄질 뿐이다.
각각 박연진과 문동은의 연인인 하도영과 주여정(사진 출처=넷플릭스)
이 과정에서 <더 글로리>가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물 간의 치밀한 설정과 보편성의 타개에 있다.
단순히 문동은이란 캐릭터가 지닌 측은지심 때문에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동은을 처음 볼 때 각기 다른 상황에서 마주한다.
가장 직접적인 조력자이자 오른팔격인 강현남(염혜란 분)의 경우는 동은이 들키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비밀이 노출되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피치 못하게 끌어안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동은의 '칼'이 되기를 자처하는 주여정(이도현 분)의 경우는 동은 못지않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동은이 지니고 있던 아픔을 듣고 기꺼이 복수에 동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 일명 '흑돌'로 표현되는 하도영(정성일 분)의 행보는 어떠한가.
그는 박연진의 남편이자 거대한 부와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건설사 대표로서 동은이 가장 치밀하게 섭외를 설계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연진의 남편이기에 연진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동은의 직설적인 정체 공개와 본인에게 접근한 이유를 알게 된 후 큰 혼란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여정과 도영 모두 파트 2에서 동은의 복수를 위한 가장 큰 키를 쥐고 있음을 드라마에서는 암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박연진의 내연남이자 연진의 딸인 하예솔(오지율 분)의 친부로 표현되는 전재준(박성훈 분), 연진과 대등한 위치에서 방관자이자 학교폭력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이사라(김히어라 분), 재준의 개이자 동은에게 가장 직접적인 폭력을 가했던 손명오(김건우 분), 연진과 사라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약자에게는 악랄한 이중성을 지닌 최혜정(차주영 분)에 이르기까지, 학교폭력을 가한 집단 내에서도 서로와 서로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며 복수와 애증이 전이되는 다양한 인물 관계를 완성해 낸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다양하고 치밀한 인물관계와 각 인물들이 지닌 서사들이 더욱 극을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이끌어간다.
물론 이러한 탄탄한 서사와 긴장감 넘치는 극 중 인물들 간의 텐션을 완성해 낸 인물은 김은숙 작가만이 아니다.
바로 김은숙 작가와 더불어 연출을 맡은 안길호 감독의 역할이 컸다.
이미 안길호 감독은 비밀의 숲과, 왓쳐를 통해서 캐릭터들이 지닌 인물의 심리 표현에 있어서 탁월한 연출 실력을 이미 증명해 낸 바 있다.
간결하면서도 심도 깊은, 속도감 있는 연출 실력과 현대물에 이르러서 더욱 날카로워진 필력이 만난 그 시너지는 실로 치명적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작품은 공개 직후 글로벌 순위 탑 10 내에 오르며, 비영어원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파트 1에서 복수를 위한 준비 과정을 끝마친 동은은 이제 반격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과연 동은은 연진과 무리들에게 어떠한 복수를 감행할 것인지 그 클라이맥스와 결과를 파트 2에서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