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묻는다면

명함이 사라진 뒤, 나를 증명할 무언가를 찾아서

by 디지털공구리

주변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야,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퇴근하고 또 일을 하냐? 좀 쉬지." "그거 블로그 글 쓴다고 얼마나 버는데? 최저임금은 나오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퇴근 후 맥주 한 캔 따서 넷플릭스를 보는 게 훨씬 행복하다.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 자는 게 몸 건강에도 좋다. 시급으로 따지면? 솔직히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훨씬 낫다. 블로그 글 하나 쓰는데 2시간이 걸리는데, 수익은 몇십 원일 때도 허다하니까.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나는 지금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삽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밤, 또다시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대체 왜 이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이유는 하나다.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회사 명함 속에 적힌 직함과 내 이름 석 자를 가려보았다. 그랬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OO전자 과장', 'XX팀 대리'. 이 계급장을 떼고 나면 나는 과연 시장에서 얼마짜리 사람일까? 회사가 정해준 업무 매뉴얼 없이, 내 스스로 10원이라도 벌어들일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서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그동안 회사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살았을 뿐, 직접 쌀을 씻고 불을 피워 밥을 지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야생 적응 훈련'을 하는 중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고, 결과까지 책임지는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회사의 울타리가 사라지는 날, 덩그러니 남겨질 초라한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흘리는 이 땀방울들은 당장 통장 잔고를 불려주진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블로그 어딘가에, 그리고 내 몸과 머리 어딘가에 차곡차곡 '경험치'로 저장될 것이다.


이 고단한 디지털 노가다가 언젠가 나를 진짜 자유인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사서 고생을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인생 첫 0.1달러, 그 소중한 가벼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