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하이데거-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명절을 지내고 아빠는 이웃 마을에 사는 구십이 넘은 작은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어린 우리들을 경운기에 가득 태우고 갔다. 그곳엔 어린 내가 봐도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 펴 거무죽죽한 얼굴에 거의 거동도 하지 못하고 살짝 몸이 흔들리고 있는 작은 할머니가 계셨다. 어두운 방 안에는 오래되고 퀴퀴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났고 상냥한 아빠가 안부를 묻는 동안 나는 할머니의 며느리가 내온 간식을 먹으며 조용히 집에 가기를 기다렸다. 그곳을 몇 번 방문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 할머니도 언젠가 돌아가시겠지?’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셔서 더 이상 가지 않게 됐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친할머니도 언젠가 돌아가시겠지? 그 친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경운기를 운전하던 아빠도 언젠가는 돌아가시겠지? 사랑하는 아빠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인간에게 있어 이보다 더 확실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빅토르 위고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수이다’라고 말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병에 걸려 통증과 죽음에 대한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한다. 좀처럼 그 고통은 그칠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일을 심판하는 판사일을 하던 그가 이제는 자신이 죽음 앞에서 심판을 받는 기분이다. 삶에 대한 회한과 증오가 자신을 더 옥죄고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탓을 하며 자신과 타인을 끔찍한 단말마의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다 고통과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편안해지며 죽음을 맞이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옥죄던 것이 받아들이니 편안해진 것이다. 그렇다. 이건 죽음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상황에도 통한다. 미움과 증오가 크면 클수록 결국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황폐하게 만든다. 인간의 증오에서 비롯된 전쟁도 결국 해결이 아니라 더 많은 증오와 파괴만을 남길 뿐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멈추지 않고 있지만.
톨스토이는 늘 인생의 본질을 사색하고 탐구한 작가였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깊이가 있고 너무나 묵직해서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인류의 스승이 되어 온갖 욕망과 이해관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것 같다. 태양과 같은 존재이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처형장에서 총살당할 뻔한 경험이 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5분 후에는 나도 기둥에 묶여 총에 맞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귀중한 5분간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 남은 보물이다.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나는 5분을 3 등분했다. ‘2분간은 명상하는 데 쓰자.’고 그리고 만약 목숨을 건진다면 ‘한순간’ ‘한순간’을 마치 ‘100년’처럼 소중히 하여 절대로 한순간도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극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맹세대로 인류에게 위대한 명작을 남겼다.
우주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다. 별도 태어났다가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과학기술 발달로 이제 죽지 않는 인류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사피엔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양심 ‘노먼 커즌즈’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 최대의 비극은 죽음이 아닙니다.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 안에서 무언가 죽어 사라진다. 이보다 무서운 인생의 비극은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이루느냐입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의미를 추구하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살아간다. 사색하고 경험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 위대한 작가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찾아다닌다. 이반 일리치가 느낀 모든 감정에 공감이 간다. 사는 동안 경험한 감정들에 진심도 있고 위선도 있었지만 그냥 그게 삶 속에 다 어우러져간 것뿐이었을 거다. 이반 일리치에게도 나와 타인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그러나 살면서도 죽음 앞에서도 고뇌에 지지 않아야 한다. 그저 본능적으로만 살아가서는 안된다.
어제 차가운 날씨에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다. 태양은 황금빛으로 빛나며 졌고 동쪽에 달걀노른자같이 앳되고 맑은 달이 떠올랐고 금성이 저만치서 유유히 빛났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렇게나 맑은 날이다. 삶과 죽음은 별개도 아니고 단절도 아니다. 이어지고 연속이다. 달력을 보며 올해의 날들이 마치 남아있는 나날처럼 보인다. 그런데 남아있는 나날이 아니다. 이어지는 나날이다.
내년으로 십 년으로 그리고 영겁으로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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