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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곰이 Aug 05. 2024

30대에 공무원을 때려치고 대학교에 재입학하다

 다행히 1학년부터는 아니고 4학년부터 시작해요

  요즘 소위 행복을 찾아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비단 유튜브에 넘쳐나는 퇴사 브이로그뿐만 아니라 내 주변도 그렇다. 이유를 들어보면 ‘더 이상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같은 절박한 목소리에서부터 ‘그냥 더 늦기 전에 더 좋은 회사 가고 싶어서’ 같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유들까지 다양하다. 


  사실 나도 그랬다. 요즘 저연차 공무원들이 빨리 ‘면직’(공무원은 신기하게 퇴사가 아니라 면직이라고 한다) 하는 추세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뉴스도 한창 나오곤 했는데 거기 나오는 통계에서 1명을 늘리는 역할을 해버렸다. 내 이유는? ‘평생 이 일 하기 싫어서’였다. 어떻게 보면 나도 행복을 찾아 떠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근데 그렇게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 이유는... 


  그럼 ‘퇴사하면 다 행복한가?’


  처음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던 건 공직을 걷고 싶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고 대학교를 자퇴한 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합격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오히려 순수하게 기뻤다. ‘아, 나도 이제 혼자 벌어서 밥은 먹고 살겠구나’하는 안심. 의외로 일도 재밌었다. ‘꼰대’거나 무능력한 상사, 야근, 열악한 복지환경 등등 일을 시작할 때 막연히 가졌던 걱정들은 별로 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는 나름 괜찮은 근무환경과 살가운 직장 선배동료들이 나를 반겨줬다. 무엇보다 내가 직장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즘 숏츠에 많이 나오는 ‘MZ’ 신입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고민) 하는 불안이 나를 심각하게 괴롭혔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할 만했다. 


  나는 회사생활이 학교생활보다 더 적성에 맞았다. 물론 진상 민원인들도 많았고 사이가 어색한 직장 상사들 간의 인간관계 문제 등등 어려운 일이 아예 없진 않았으니 남의 돈 버는 일이 어찌 좋기만 했겠냐만은, 그래도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와중에 나를 인정해주고 마음도 잘 맞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일했던 행복했던 2년으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제목에서는 때려쳤다면서 왜 그만뒀냐,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더 높은 상위기관으로 발령받았을 때였다. 나름 동기들 중에 제일 빨리 승진하는 느낌이라 앞길이 탄탄대로인줄로만 알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문제의 시작인지는 모르고. 막상 올라가보니 뜬금없이 억단위 시장 공사를 맡기고 시방서부터 해보란다. ‘저기요 전 역사 전공 문과인데요’ 이런 거는 안 통한다. 애초에 시방서가 뭐냐고요. 전임자는 어디론가 휴직을 가 버렸고 인수인계 파일은 복에 겨운 소리다. 같은 팀의 다른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께 여쭤봐도 ‘글쎄요, 공사는 저도 잘...’이라고 하신다. 예전 문서들을 아무리 보고 인터넷 실무자 카페를 뒤져봐도 감이 안 잡히던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무원 신입 교육 때 보고나서 2년 동안 카톡 한번 못했던 건축과 동기들한테까지 접근해야 했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형태는 갖춘 시방서를 작성해낼 수 있었다.


  다만 한 과제의 마무리는 결국 다른 고생의 시작일 뿐이었다. 왜 이 절차는 빠뜨렸냐 감사실에서 혼나고, 왜 이걸 지금 냈냐 예산실에서 혼나고, 막상 현행 공사를 감독하러 나가면 공사는 계속 연기될 거라고 하지, 상인들은 공사 하루만 더 하면 소송할 거라고 하지, 거기에 팀장님과 과장님은 출장 다니느라 바쁘시고. 나이가 조금 더 든 지금은 좀더 현명하게 대처했을 수도 있겠지만(성격상 ‘아 자르시려면 자르시던가’ 스타일은 못 된다), 그때는 이게 일이 제대로 되가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함과 죄책감에 매일매일 죽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일을 잘 해는 것이 좋은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예술사업이나 문화행사, 아니면 능력을 인정받는 인사총무 쪽에는 발도 못 들이고 계속 이런 현장직을 돌아야 하나? 라는 생각. 좀 더 늦기 전에 면직을 결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생각 많은 사람은 인생을 조금 파란만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퇴사했다고 바로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모아놓은 돈으로 경제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일에 치일 때는 모르고 살았던 하루의 여유가 오히려 버거웠다. 무엇보다 퇴사가 회피성 결정이었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학교도 비슷하게 회피해서 자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쉬는 시간은 짧게 가지고 다시 열심히 살았다. 자격증도 따고 토익 시험도 보고 자소서도 쓰고 하는 와중에 어떤 공기업에 운좋게 들어가게 됐다. 실무 경력으로 그냥저냥 적응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은 못 붙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팀장님이랑 센터장님이 다 같은 대학 출신이라 더 어색했다. ‘아 제가 그 대학은 맞는데 졸업은 못 했어요’라는 말에 이어지는 정적이 싫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 분위기가 싫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뽑으셨으면서 학벌을 왜 따지세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던 차에 우연치 않게 자퇴했던 학교의 재입학 글을 보고 다시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늦은 나이에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다행히 자퇴하기 전의 학점을 인정해주어서 2학기만 다니면 졸업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도 없이 야생에서(?) 살아왔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처지는 편하다. 물론 생각보다 과제나 발표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래도 요즘 대학생(이렇게 쓰는 내가 너무 늙은 것 같다...)이 발표하는 것도 보고 어떤 진로를 향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행복하냐를 이 글의 주제로 써보려고 했는데, 결론은 행복하다. 나는 자퇴-퇴사-재입학이라는 남들이 보기엔 아주 특이한 경로를 걷고 있지만 그래도 내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은 충분히 지면서 살아온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그만뒀을 때도, 공무원에서 면직했을 때도 그에 따르는 결과는 알고 있었고, 내 선택이 결국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불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순간순간의 선택을 재밌게 생각하면서 만족하는 편이다.  남들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늦었지만 뭐 그게 대수일까? 정신승리일 수도 있지만 이미 늦은 판에 스스로를 닦달해서 뭐 하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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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0대에 대학교를 1년 동안 다니면서 겪는 이야기들의 프롤로그 격으로 써봤다. 일반적이지 않은 나이에 대학을 다니면서 겪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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