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할머니가 되면서 서두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을 잘 걸어왔는지, 잘 걸어가고 있는지 가끔 점검해 보는 여유가 생겼다. 지금도 나는 자라고 있다. 어른이라고, 선생이라고 섣불리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 어떤 것도 단정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든 열릴 수 있는 마음을 가꾸고 다듬어 가는 과정에 있다.
매주 수요일 10시는 나에게 특별한 시간이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까닭이다. 유치원, 어린이집 유아들에게 제공되는 도서관 견학 프로그램 속의 ‘이야기할머니‘ 시간. 귀여운 아이들과의 만남을 수년간 이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깊어진 정이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오래전부터, 나는 할머니가 되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이야기할머니를 생각해 왔다. 마침 2009년 7월에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의 제1기 이야기할머니 선발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진주 지역은 해당이 안 되었고 2011년에 들어서야 진주지역이 포함된 경상권 100명, 수도, 강원권 100명, 충청, 전라권 100명 등 300명이 제3기 이야기할머니로 선발되었다.
그 당시 진주지역에서는 10명이 응시자로 접수되었다는데, 면접이라도 보자며 내가 한 사람씩 권유하여 함께 간 동료들이 9명이었다. 모두가 함께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나를 포함해서 3명만 선발되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가만히 있던 친구들에게 공연히 바람을 넣어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 같았다.
2012년부터 전국 유아교육기관에서 본격적인 이야기할머니 활동이 시작되었다. 아직 교육 중이던 2011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해, 서울에서 ‘전국 시니어동화사랑회’ 주최로 ‘옛날이야기대회’가 열렸고 내가 최우수상 다음인 금상을 받았다. 정말 뜻밖이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참가했는데 2등으로 입상을 하다니! 이야기할머니 활동에 더욱 신이 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적으로 이야기할머니 인원이 계속 늘어났다. 이 사업의 취지는 우리 선현들의 지혜와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유아들의 인성을 길러주고, 조손세대의 문화적 연대감을 높이며, 여성 어르신들의 자아실현과 사회봉사가 융합된 일자리 제공으로 출발했다. 이러한 한국국학진흥원 소속의 이야기할머니 활동이 나에게는 3년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약간의 교통비가 지급되는 한국국학진흥원 소속의 활동을 접고 그동안 재능기부로 병행해 오던 어린이도서관에서의 이야기할머니 활동만 하기로 했다. 올망졸망한 귀염이 들과의 시간이 더없이 좋았다. 좀 아쉬운 것은, 내게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을 때 그 한 번의 시간을 대체해 줄 사람이 너무도 귀했다. 특이한 것은 시간이 많은 친구보다 평소에 가장 바쁜 친구가 대체해 줄 의사를 보내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좀 더 적극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들의 ‘도서관 견학 프로그램’은 그 아이의 삶과 생각에 의미 있는 동심원을 그려가게 될 것이다. 가끔은 어린 친구들의 모습에서 유년기 때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유년기의 내가 그들 가운데서 지금의 내 얘기를 듣는다. 그 순간은 나도 모르게 마음 낮추기에 이른다. 이야기의 모든 언어를 아이들이 잘 아는 언어로 바꿔가며 함께 놀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망울들과 마주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먼저 힐링되는 그 느낌! 그것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가 있으랴. 인간에 대한 끝없는 긍정, 인간 생명에 대한 한없는 찬탄, 그 순수 열정을 언제까지나 가슴에 지니고 싶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나 자신이 타성에 젖어 움직일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나를 자극하고 일깨워 준 유치원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나를 채찍질하고 일으켜 세우며 정신 차리게 한다.
그녀가 내게 들려준 말,
"저도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었을 때, 그 열정과 사랑을 본받고 싶어요."
아차! 싶었다. ‘나는 남의 환경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면서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극받을 수 있는 건, 내가 아직 멈추지 않고 있음이리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기실 그동안 잊고 지내온 무수한 교훈들을 되살펴 보며 나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일이다.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 속엔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들어있다. 4계절을 온몸으로 담아내는 꿋꿋한 산의 맑은 계곡물이 냇물로, 강물로, 바다로 이어지듯이 아이들의 성장은 수많은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늘 선택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설령 아이들이 이야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도서관에서 이야기할머니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그 기억만으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