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머릿속의 잔향
고은의 첼로 연습실
늦은 저녁, 고은은 첼로를 무릎에 안고 활을 켰다.
그러나 선율은 자꾸만 흔들려 깊게 울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카페에서 미소 짓던 선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이 상황 재미있네요. 영화 한 장면 같아서…”
그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돌며 손끝을 흔들었다.
고은은 활을 내려놓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지… 단순한 만남이었을 뿐인데. 집중하자, 집중.”
하지만 선우의 목소리는 떠나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요.”
그 말이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고은은 협연자 오디션을 준비 중이었다.
오케스트라 협연까지는 3달가량 남았고, 오디션에 뽑히면 첼로 솔로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연주자로서는 큰 의미를 갖는 기회였다.
집중해야 하는데, 도무지 한 남자가 떠올라 마음이 산만해졌다.
“아, 돌겠다…” 고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창문을 열어 환기한 뒤, 의자에 앉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다시 활을 잡고 악보를 눈으로 따라가며 차분히 연주를 시작했다.
10마디쯤 연주하다가 멈췄다.
“이건 아니야. 맘에 안 들어.“
고은은 완벽주의자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해도 본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 해야한다는 압박이 밀려왔고, 그래서인지 연주는 더 맘에 들지 않았다.
선우의 광고 회사 사무실
늦은 밤, 선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카페 광고 카피를 쓰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문장은 이어지지 않고, 커서만 깜빡였다.
선우는 무심코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몇자 끄적이다 인물을 그렸는데, 얼굴이 고은과 닮아있었다.
머릿속에는 그녀가 했던 말이 떠돌았다.
“혹시…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날도 추운데…”
그 순간의 따뜻한 눈빛이 자꾸만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지…” 선우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쥐었다.
“아… 글을 써야지, 글…”
모니터 속 자음, 모음 글자들이 흩어졌다가 단어를 만들었다.
‘크림 브륄레, 크리스토퍼 놀란, 커피…‘
“악!” 선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자네, 카피 마무리 했나?” 선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직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아직이요… 최대한 빨리 해서 보낼게요.”
“서둘러, 내일까지야.”
내래이션
“사랑은 운명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그러나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