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후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인스타 알고리즘으로 나에게 도달한 광고. 후추에 다양한 향을 블렌딩하여 매달 이달의 후추를 판매하고 있었다. 어떻게 후추를 판매할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후추에 바리에이션을 주려고 했지? 어떻게 후추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오늘 상담을 하면서 진로가 고민이라는 학생을 만났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쌤이 최근에 어떤 후추 브랜드를 알게 됐어. 되게 다양한 후추를 만드는데, 팬층이 두껍더라고. 그런데 그 브랜드 사장님은 아셨을까? 너처럼 고3일 때 부터 자기가 언젠가 2020년대에 후추를 개발해서 파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학생이 웃었다. 나는 나 역시도 여전히 진로를 찾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너도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되니, 거기에서 찾아 봐도 늦지 않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작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취향을 찾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일러스트를 그리고 스티커와 굿즈를 만드는 작가님들을 팔로우 하는 것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인형, 키링, 도자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마음에 드는 걸 찾고 있다. 그러면서 수년째 나를 관통하는 의문. 어떻게 저 사람은 저 물건을 만드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을까? 그러니까 양말을 신은 도자기를 파는 저 작가님은, 도자기를 만드는 삶을, 도자기를 파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어떻게 먹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화가는 빛이 닿은 물방울을 보며 큰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 이후 수십년을 물방울만 그렸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왜냐면 물방울 말고 다른 걸 그리는 삶이 언제나 지척에서 손을 흔들 것 같아서. 무언가를 그리지 않는 삶에 미련이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그 모든 가능성들 중 하필이면 물방울 그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뭐였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선택한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이 더 맞다. 그냥 그 생각 하나가 나의 대학과 학과를 결정했고, 사범대를 나오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이 교사 뿐이었다. 다들 고민이 깊어간다던 사망년. 다른 취업 루트를 생각해 봤다. 교재 개발, 과학관, 연구원. 모두 싫었다. 나는 그 때에서야 교사가 하기 싫어졌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졸업 후 곧바로 기간제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책을 읽는 걸 아주 좋아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맛을 느끼고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어떤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것을 차츰 알아갔다. 그리고 교사를 잘 해낼 수 있음에도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명쾌하다. 그리고 혼란하다. 무엇을 하며 살겠다고 선택할 것인지 답을 내리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몫이니까.
어떤 삶을 살겠다고 선택하는 일이, 그 일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몹시도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보면서 '저 사람은 어떻게 교직을 선택했을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두들 다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은 이유로 그냥 존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작게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삶을 살겠다고 선택하는 순간을 여전히 꿈꾼다. 언젠가 나의 공간을 열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워 내가 그리던 것들을 나누며 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처럼 방황하는 이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사실 그거 별 거 없더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