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따르릉” 이른 아침인데 전화벨 소리가 숨 가쁘게 울린다. 큰 아이들의 학부모로 만나 절친이 된 영희다.
“너 빨리 준비해 우리 급히 갈 곳이 있어” 그리고 뚝….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차를 타고 출발하며 물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겨우 예약했는데 나만 갈 수 없으니 너랑 같이 가려 구”
“그러니까 어디?”
“청량리, 너 진짜 고마워해야 한다 아무나 못 가는 데야, 재벌가나 정치인들만 받는 곳 이래”
그녀의 첫째 딸과 나의 첫째인 아들은 둘 다 중3이었고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녀의 말인즉슨
“유학 운이 있는지를 물어봐야 해, 아니면 못 가거나 가도 돌아올 수도 있데 “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의 긴 여정이… 2004년에 시작해서 그녀가 내 곁을 떠난 2019년까지.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런 곳을 찾지 않았다.
매너 현관 벨 소리와 함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태리로 겨울 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작은 선물과 함께 새해 인사를 하러 온 거다. 우린 식탁에 둘러앉아 다양한 에피소드를 듣고 새로 업데이트된 이런저런 소식을 나누었다 그러다 ‘타로’ 얘기로 넘어갔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타로’나 ‘사주’를 더 많이 본다는 말은 더러 들었지만 아들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기에 사뭇 당황스러웠다.
“뭐 하러 그런 걸 보니?”
한마디 하고는 친구와의 옛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뭐라고 그러던?”
아들 녀석은 이태원 해밀턴 호텔에서 한강진 역 사이에 있으며 엄청 소문난 곳이라 가 본 거고, 그저 그랬다며 그날의 무용담을 풀어냈다.
“엄마, 친구들 많이 보러 다녀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K-therapy라고 하잖아?” 막 합류한 딸이 거든다.
“친구 누구는 이직하려고 6단계의 과정을 거쳐 면접까지 봤는데 최종 2인에서 불합격했고 직장 생활에 적응이 힘들었던 한 친구는 퇴사하려고 하다가 바로 위 상사가 갑자기 그만두게 되면서 승진을 했다.” 등등
“엄마 그래서 요즘의 우리들은 운 7기 3이 아니라 운 10 기 빵이라고 해”
기발한 그 표현에 남편과 나는 빵 터졌지만 웃픈 현실에 금 새 숙연 해졌다. 우리는 성실과 노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들을 만나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뜻을 한 번 더 새겨 볼래? 엄마가 살아 보니…” 또 잔소리 시작이다 싶은 지 벌써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보인다.
“3할의 노력을 준비해 두어야 찾아오는 7할의 운도 쟁취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엄마는 참, 그 뜻을 누가 몰라? 준비된 자가 결과도 더 궁금하고 실망도 하지 않겠어?”
“그러네 그렇겠네”
“엄마는 너무 그런 것에 의존하지 마라고 당부하는 거지” 꿋꿋이 할 말을 마무리했다.
뒷정리를 마치고 화장대에 앉았다. 거울 속의 나를 지긋이 보다가 2019년 5월의 어느 날 영희와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잠시 머뭇 거리 던 그녀는 힘에 겨운 목소리로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가 했던 모든 걱정거리들은 살아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었어.
재미있게 살아라,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토록 사랑하던 딸의 결혼식이 있던 날 평온하게 하나님 품으로 떠났다.
오늘은 그녀가 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