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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공짜로 큰 줄 아나!

by HB

남편과 나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아침 8시 30분이면 집을 나서서, 9시쯤 옥수동에 도착한다. 시집간 딸아이 출근길 라이드를 위해서이다. 옥수동에서 딸아이의 직장이 있는 잠실까지는 30여분 걸린다. 우린 이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직장 일들에 대해 아빠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오늘도 정확히 9시에 딸아이는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앉아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있지…. 나… 합격했어~”

“진짜? 와~ 울 딸 대단하네!”

운전하던 남편이 계속 질문을 한다. 그는 마치 이 좋은 기분을 더 느끼고 싶어 안달하듯 또 묻고 있다. 나도 대견해하며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창 밖을 내다봤다.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이는 한강의 아침 햇살을 보며 피식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가엔 그리움이 고인다. 18년 전쯤 이던가 생각은 어느새 그 당시로 돌아가 있다.

아이를 겨우 깨워 등교시키고 막 돌아와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듯한 기분에 거의 울 지경이었다. 때 마침 부산에 계시는 친정 엄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야야, 잘 지내제? 니가 통 연락이 없어서 내 한번 해봤다. 별일 없제 ?”

“아… 엄마…” 다 귀찮은 듯 건성건성 대답했다.

“나 엄마 손녀 때문에 짜증 나서 못살겠어”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왈칵 울음보가 터져 버렸다.

“아가 어때서 난리고?”

“몰라 몰라 말도 안 듣고 사춘기라 그런지 공부도 열심히 안 하는 거 같고 내가 못 살아 “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듯 엄마에게 푸념을 마구 늘어놨다. 혼자 하소연인지 화풀이인지 해대는 중에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는 더 했다. 지는 억시기 말 잘 들었는 줄 아나 보네. 엔가이 아를 들들 볶아라. 니는 공짜로 큰 줄 아나”

나는 퉁명스럽게 되받아 쳤다.

“엄마는 이렇게 힘든 줄 알면서, 나 애 낳는다 할 때 좀 말리지 그랬어?”

“허허 내가 참 밸소리를 다 듣겠네. 다 지나갈 기다 그만하면 1등 손녀다. 마, 전화 끊자”.

수화기를 내려놓고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며 생각에 빠졌다. 사춘기 시절 나의 모습들을 돌이켜 봤다. 울 엄마 속 많이 탔겠네… 늦게 깨웠다며 엄마 때문에 지각하겠다고 문을 부서져라 닫고, 시험 못 봤다고 짜증 내고. 울 엄마는 넷을 어떤 맘으로 키웠을까? 나는 이렇게 쩔쩔매는데,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니는 공짜로 큰 줄 아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내가 왜 몰라 엄마가 우리 넷을 온 정성을 다해 키웠다는 걸.


“엄마 엄마~, 엄마는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길래 불러도 몰라?”

딸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응~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인지 한강이 더 예뻐 보여서 멍하니 봤어.”

얼른 눈가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어느새 잠실에 도착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행여나 뒤이어 따라오는 차에 불편을 줄까 봐 얼른 조수석으로 몸을 던져 넣으며

“오늘도 좋은 하루”를 외쳤다.

남편과 나는 다시 둘만의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 적어도 오늘은 딸아이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얘기로 조금은 긴장되고 들뜬 하루가 될 거다.

그렇다 세상사에 공짜가 어디 있겠나.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물며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데 공짜 일리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 생각만 하면 왈칵 눈물부터 나온다.

‘엄마 나 알아요. 엄마가 얼마나 많은 걸 감내하며 우릴 키웠는지. 엄마의 모든 걸 태우고 녹이며 우릴 사랑하셨다는 걸. 미안해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절절이 이해되는 나의 어리석음을’

아마도 나의 남은 시간 속에서 엄마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언제나 함께 할 거다. 누군가 그랬지, 죽음은 생과 사의 갈림이 아니라 단지 변화일 뿐이라고!

비록 다시 만날 수는 없어도 엄만 늘 내 맘속에 살아 있어요. 고맙고 사랑해요. 애 많이 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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