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어린 우릴 데리고 호주로 갈 생각을 다 했어?”
퇴근길에 잠시 들른 딸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불쑥 물어 왔다.
“글쎄, 그땐 오로지 너희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오빠가 만 12세가 되기 전에 영어 습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영어권 나라로 가야만 했어. 너에게는 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니 용기가 났겠지?”
그러면서 ‘LAD(언어 습득 장치)’에 대한 설명도 해 주었다.
‘현대 미국의 언어학자로서 변형문법 창시자인 촘스키(Chomsky, Noam)에 의하면, 인간은 언어 습득 장치
를 통해 선천적으로 언어가 습득되며 0세부터 13세까지 활발하게 진행된다’
“참 유별난 엄마였지?”
넌지시 물어봤다. 어떤 평가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아냐, 오빠와 나는 늘 엄마 아빠께 감사하고 있어. 굉장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울 엄마 참 대단해”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어디서 그런 결단이 나왔을까 살펴보는 듯하다. 문득 오래전 기억들이 소환된다.
12살 아들아이와 8살 딸아이를 둔 엄마인 나는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교육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특히 영어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썼는데 아이들이 한국어 못지않게 영어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영어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창하지 못한 나의 영어 실력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2000년 초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영어 동화책 읽기’ 방문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 될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미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는데 곧 6학년이 될 딸과 동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시기가 애매하기는 해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말하는 그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어 하나!
‘LAD (언어 습득 장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LAD’ 내가 왜 그걸 기억 못 했지? 대학 시절 언어학 강의를 들으면서 별표까지 친 그 ‘LAD’! 바보같이 느껴졌다. 큰아이 나이가 12살이니 더 늦기 전에 미국으로 최소 1년만 다녀오자고 결심했다.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유학원도 여러 군데 다녀봤다. 한결같이 비자를 못 받을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했다.
F1비자를 받기에는 12살도 어린데 8살이랑 같이 가는 거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광화문에 있는 미대사관에서 두 아이 비자 인터뷰가 있던 날은 평생 있지 못한다. 안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비자 인터뷰 신청을 한 거였다.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당연한 결과였다. 이왕이면 미국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만 가득했을 뿐 무식해서 무모할 수 있었던 해프닝으로 끝났다.
“sorry, They are too young.”
영사의 마지막 딱 한 마디,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그렇다고 한 번 뺀 칼을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 길로 시드니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미국 VISA Reject 후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 그렇게 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드니’로 두 아이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내게는 목표가 분명했으므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싶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고 크게 눈에 띄는 타입도 아니었다. 더구나 매사 묻혀 가는 타입이지 적극적으로 뭔가를 추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해외 경험은 두 아이와 태국으로 패키지여행을 간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고 생면부지 아는 사람도 없는 시드니를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건지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조심해서 잘 다녀와~ 내가 추석 때 시드니로 들어갈게!” 남편의 말에
“아빠 난 가기 싫어 잉~”
딸아이는 아빠를 떠나 엄마, 오빠하고 만 먼 나라로 떠난다는 게 영 불안했던 거 같다. 헤어짐도 슬펐을 터이고.
“엄마는 아빠만 두고 가는 게 좋아? 잉~” 딸아이 말에
“나중에 크면 엄마한테 잘한 결정이었다고 고마워할 거야 우리 조금만 참고 잘해보자!”
다독 거리긴 했지만 나 역시 슬펐고 그보다 걱정이 많이 되어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렇게 나는 어린 두 아이와 검은색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시드니행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는 상상도 못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