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텀 스파랜드와 황령산 야경 이야기
센텀 스파랜드. 사우나를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는 순간 '어머나, 이렇게나 비싸다니!' 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옆에서 딸아이 역시 "엄마, 너무 비싸지 않아요?" 하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경쟁하듯 울려 퍼졌다. 하나는 "이렇게 비싼 돈을 써도 될까?" 하는 현실적인 목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돈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딸의 망설이는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자, 가자! 오늘은 우리가 거금 투자자가 되는 거야!"
먼저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마치 럭셔리 리조트에 체크인하는 VIP처럼 당당하게, 그러나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스파랜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은 이미 남성 입구로 사라진 뒤였고, 우리 모녀는 손을 꼭 잡고 여성 전용 입구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 웅장한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져버렸다. 이곳은 말 그대로 도심 속 무릉도원이었다. 지하 1,000미터에서 끌어올린 100% 천연 온천수가 22개의 각기 다른 온도의 탕에서 찰랑찰랑 넘실거리고 있었고, 13개의 테마 사우나는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엄마, 정말 영화 속 같아요!" 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는 마치 신선놀이를 즐기는 선녀가 된 듯, 이 탕 저 탕을 옮겨 다니며 천천히 몸을 담그고 마음을 풀어갔다. 히말라야 소금방에서는 톡톡 튀는 소금 입자들이 피부를 어루만져 주었고, 참숯방에서는 깊고 그윽한 숯 향이 폐 깊숙이 스며들어 몸속 노폐물까지 정화해주는 느낌이었다.
야외 족탕에서 바라본 하늘은 한없이 푸르렀고, 발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천수의 감촉은 마치 대지의 어머니가 건네는 포근한 위로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평온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모두가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휴식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6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라면다방'이라는 이름도 정겨운 셀프 라면 코너로 향했다. 1만 원으로 즉석라면 한 개와 음료 한 잔을 선택할 수 있는 이곳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놀이터였다.
"진라면? 신라면? 아니면 너구리?" 딸과 나는 진지하게 라면 종류를 고르며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셀프 코너에는 아삭아삭한 콩나물, 싱싱한 대파, 쭉쭉 늘어나는 치즈, 쫄깃한 떡, 탱탱한 어묵, 고소한 소시지, 통통한 홍합, 쫄깃한 오징어까지... 마치 보물상자를 열어본 듯 다양한 토핑들이 우리를 반겼다.
"엄마, 이거 정말 재밌어요!" 딸은 마치 요리사가 된 듯 정성스럽게 자신만의 라면을 완성해갔다. 김치와 단무지까지 곁들여 먹는 그 맛은... 아,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보다도 맛있었다.
아이들이 재탕, 삼탕까지 하며 신나게 먹는 사이, 나는 안마 의자에 몸을 맡겼다. 부르르르 진동하는 안마기의 리듬에 맞춰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어느새 꿀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엄마! 엄마 어디 계세요?"
딸과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파랜드 곳곳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헤매며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섰다. 얼마나 찾아다녔을까, 마침내 안마 의자 깊숙이 파묻혀 평화로운 잠에 빠진 나를 발견한 아이들.
"아이고, 엄마! 여기 계셨구나!" "어머, 정말! 잠깐 눈 좀 붙이려던 건데..."
아이들의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터져 나온 잔소리 세례를 받으며, 나는 괜히 미안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엄마, 진짜! 연락도 안 하고 어디 가세요!" 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스파랜드에서의 힐링을 마친 우리는 부산의 밤을 수놓을 또 다른 여행지로 차를 몰았다. 미국에서 온 아들이 연신 자랑하던 그곳, 바로 황령산 전망대였다.
"엄마, 정말 멋진 곳이야! 꼭 봐야 해요. 엄마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자신 있으면 당연히 가봐야지!"
스파랜드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황령산. 벌써 부산 시내는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망대까지는 제법 먼 거리를 걸어 올라가야 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휴, 휴" 하며 숨을 고르는 내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체력이 이 정도는 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아, 정말 예전 같지 않네...' 하며 세월의 무게를 실감했다. 젊은 시절이라면 이 정도 경사는 가볍게 올라갔을 텐데 말이다.
드디어 중간 지점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든 피로가 싹 사라졌다.
"와... 정말 장관이네!"
부산 시내가 온통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별들을 쏟아부은 듯, 크고 작은 불빛들이 도시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저 멀리 광안대교의 우아한 실루엣이 보였고, 해운대의 고층 빌딩들이 마천루처럼 솟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문득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떠올랐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견디고 있을 그가 생각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피어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이들은 정말 신이 났다. 미국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이런 야경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엄마, 사진 찍어주세요!" "와, 정말 멋있다!" 하며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니, 이 여행을 계획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웨딩 촬영으로 바빴던 큰아들도 우리와 합류했다. 네 식구가 함께 전망대를 오르며, 자연스럽게 깊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상까지 가지 않고 중간 지점에 머물기로 한 나에게, 큰아들이 다가와 앉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웅성거림을 배경으로, 우리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웨딩 촬영 이야기, 예비 며느리 이야기, 그리고 그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길을 잘 가고 있어요."
아들의 눈빛에는 확신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부와 명예에 대한 건전한 꿈을 품고, 그것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부모님께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아닌가. 하지만 부동산에 묶인 재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들아, 미안해. 나중에라도 꼭 도움이 되어줄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에게 아들이 따뜻하게 말했다.
"엄마, 우리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살고 있어요. 아빠보다도 더 많이 벌고 있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동생도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요."
이런 아들들이 내 아들이라는 것이 그저 자랑스럽고 감사할 뿐이었다. 마치 내가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뿌듯함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올랐다.
한참 후, 정상까지 올라갔던 둘째 아들과 딸이 내려왔다.
"엄마, 왜 안 올라왔어요? 정말 환상적인 파노라마 야경인데!" "정말 아쉬워요! 꼭 봤어야 했는데!"
아이들의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며 나는 살짝 미안했지만, 동시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괜찮아, 이 정도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엄마는 만족해!" 하며 웃어 보였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올라갈 때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안대교의 야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형형색색으로 변화하는 불빛의 향연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장관이었다.
"너 정말 탁월한 선택을 했다!"
둘째 아들에게 연신 엄지척을 해주며, 나는 기분이 좋아 횡설수설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멋진 뷰를 가진 숙소를 찾아낸 아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안대교의 불빛 쇼를 감상하다가, 어느새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마음은 여전히 따뜻했고,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하루가 지나고 돌이켜보니,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나 럭셔리한 시설 그 이상이었다.
때로는 비싸다고 망설이던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센텀 스파랜드에서의 하루는 단순히 몸을 씻고 쉬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진정한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나눈 솔직한 대화들,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마음들, 그리고 함께 웃고 감탄하며 보낸 시간들이야말로 이 여행의 진짜 보물이었다.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처럼, 우리의 일상도 때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힘들고 지친 일상도, 가족과 함께라면 반짝이는 불빛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중국어가 많이 들리는 스파랜드의 특별한 분위기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힘들었던 순간들도, 안마 의자에서 잠들어 아이들을 당황하게 했던 해프닝도, 모든 것이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웃고, 대화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장 값진 보물이기 때문이다.
부산이 우리에게 선사한 이 따뜻한 추억처럼,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기를 바란다. 때로는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때로는 여유롭게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