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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산책합니다 6 : 내가 찾은 여행의 이유

생각이 많은 날에는 남해에 갑니다'책을 읽고서 ( 저자, 이 산들)

by Selly 정

본문 요약 : 여행의 이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창가에 기댄 채, 나는 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무엇을 정리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엉켜있던 실타래가 부드럽게 풀리듯, 혹은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복잡했던 마음이 차근차근 정돈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해가 서서히 서쪽 하늘로 기울어가며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황금빛 석양이 내 얼굴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턱을 손바닥에 괴고 그 찬란한 풍경에 넋을 잃고 있자니, 문득 깨달음이 밀려왔다.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일상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의 웅장함으로부터 충전받은 에너지로 이전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여행을 하는 진짜 이유였다 (생각이 많은 날에는 남해에 갑니다 중에서 , 이 산들 )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아침, 따가운 햇살이 창문을 통해 거실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두 대의 선풍기가 윙윙거리며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열심히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들의 성실함이 새삼 대견해 보였다. 커다란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축 처진 나뭇가지들이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장을 넘기던 중, '여행의 이유'라는 소제목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순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책을 읽으며 한동안 깊은 생각의 바다에 빠져있었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여행작가를 꿈꾸고 있는데, 과연 나에게 여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도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렸었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어 '나의 생각 한 스푼'을 완성하지 못했던 그 순간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이 구절이 다시 한 번 나를 흔들어 깨웠다. 선풍기의 리드미컬한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는 비로소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왜 나는 여행작가를 꿈꾸게 되었을까? 내 브랜딩 닉네임은 '여행과 글쓰기로 현금 흐름 500을 꿈꾸는 오디세이 에세이 작가'다.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삶을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사람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래서 '여행작가'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했고, 프랑스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쭉 여행 이야기를 기록해오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파리와 파리 근교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어디지?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런 설렘 가득한 질문들을 품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들을 하나씩 탐험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시간이면 그날의 감동을 글로 옮겨 적었다. 처음에는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거닐었던 길들, 만났던 사람들, 마주했던 풍경들이 글과 사진으로 기록되어 남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도시의 소음이 잦아든 고요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평화로움,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관광지에서 만들어낸 특별한 추억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친 중세시대 성채의 웅장함 앞에서 잠시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섰던 경험들, 화가의 집에서 느낀 예술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감격을 안겨주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여행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여행하며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걸 점차 깨달았다. 여행 유튜버들이 종종 하는 멘트 중에 "그동안 너무 바빠서 편집할 시간이 없어 이제야 영상을 올립니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 일의 현실을 더욱 실감했다. 영상 편집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실제 촬영 날짜와 업로드 시기가 한참 차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튜브를 하지 않는 나 역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며칠간의 여행을 다녀오면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한 달 후에야 블로그에 기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냉정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는 정말 여행 에세이 작가로 살고 싶은 걸까?" 그럴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쉽지 않아. 나는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로 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어. 사실 여행하는 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 일인데..."

하지만 그런 자기 의심의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런데도 너는 왜 여행작가를 꿈꾸는 거야? 너는 정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이 질문에 나는 선뜻 "그래, 나는 끝까지 여행작가가 될 거야"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여행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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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참으로 단순했다. 지금까지 방문했고 살았던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 살면서 수많은 관광지를 다니며 느꼈던 생각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정말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 단지 '기록하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 자체였다.

이 책의 저자처럼 '여행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 위함'이라는 명확한 목적의식은 없었다. 오히려 블로그에 여행지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여행의 행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같다.

기록을 하지 않을 때의 여행은 그저 보고, 먹고, 즐기는 일회성 경험이었다. 추억의 사진 한 장으로만 남는 여행이었을 뿐이다. "그곳 어땠어?"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응, 좋았어. 그냥 좋더라. 너도 언제 한번 가봐!"라는 뻔한 대답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행 사진을 찍고,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사진과 함께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들, 그 순간의 벅찬 느낌들을 우연히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글을 써내려가며 적절한 사진을 찾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여행하는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여행하는 장소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행위들이 결코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이 순간은, 이곳에서 느끼는 이 시간은 다시 내 인생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면 이 순간을 최대한 기뻐하자. 행복해하자. 즐겁게 보내자!"

흘러가는 24시간이 아니라 매 시간이, 매 순간이, 매일의 하루하루를 허무하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행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혼자 하는 여행이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든,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글쓰기는 여행의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누군가처럼 뛰어나고 완벽한 여행 에세이 작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 에세이 작가'로서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행 속에서, 글을 쓰는 순간 속에서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나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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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가지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사진을 좀 더 전문적으로 찍고 싶다는 바람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물론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여행작가로서 좀 더 전문가다운 모습을 갖추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도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진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미러리스 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지만 간절하게 소망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아들이 묵직하고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여행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 저 모습이야말로 진짜 여행작가의 모습이 아닐까?"

산들 작가도 여행 사진으로 사진전까지 열었던 작가가 아니던가! 김영하 작가 역시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지 않던가!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전문가답던가! 이제 나는 여행작가로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꿈꿔본다. 언젠가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현실이 될 것이다.


여행은 이처럼 작은 꿈도 꾸게 하고, 일상적인 하루 속에 작은 설렘도 선사하는 것 같다. 고명환 작가는 "여행은 가기 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늘 말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어떤 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어떤 이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나처럼 기록하고 나누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행복해지기 위해 떠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의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여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왜 여행을 하시나요? 혹시 아직 그 이유를 명확히 찾지 못했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나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행 그 자체가 우리에게 답을 줄 테니까요.

중요한 건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남들과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여행이 당신에게 기쁨과 의미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여행과 그 여행에서 찾아낸 각자만의 이유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새로운 길을 걷고 계실 모든 여행자들에게, 그리고 여행을 꿈꾸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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