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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은 한 편의 역사이다

엄마의 삶을 통해 바라본 각 사람의 인생 이야기

by Selly 정



Chaque vie est une histoire,
또는 모든 삶은 이야기이다’
각각의 인생은 한 편의 역사이다




‘Chaque vie est une histoire, 각각의 인생은 이야기이다 또는 모든 삶은 이야기이다’라는 글귀가 박물관 벽에 걸쳐있는 프랭카드에 적혀 있었어요. 그 말이 얼마나 멋있고 울림이 큰지 몰라요. 저도 이 말을 보고 생각했어요. ‘각자의 삶은 하나의 역사이다’라고요. 사람은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을 거치며 세상에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기니까요.




우리는 어느 날 연약하고 작은 아기로 태어나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며 수많은 경험을 겪고, 어느새 세상에 남길 한 줌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존재예요. 그러니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일들을 경험하며 살았으며, 어떤 관계를 맺었고,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지, 그의 여정에 대해 궁금한 수많은 질문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지요. 한 사람의 역사는 그가 살아온 인생 속에 깃들어 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겠지만, 남겨진 이들에게는 감동이나 슬픔, 때로는 분노나 여운으로 오래 남을 수도 있겠지요.




그 벽에 걸린 글귀를 보며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이제는 90세와 86세를 바라보시는 부모님이, 평생 80여 년의 긴 이야기를 쓰고 계시지요. 그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역사가 담겨 있을까요? 어머니는 한때 건강하셨지만, 어느 날 팔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대퇴부 뼈가 부러져 현재는 요양병원에 계세요. 한때 강하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분이셨는데, 이제는 마치 작은 새처럼 여리게 변하셨어요. 굵고 단단했던 손과 발은 앙상해졌고, 온몸을 감싸던 힘줄은 이제 파랗게 비치며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어요. 예전처럼 정갈하게 빗어 올리던 검은 머리칼은 회색빛을 띤 짧은 커트로 바뀌었고, 손거울을 들고 얼굴을 단장하던 모습도 이제는 추억 속 장면이 되었어요. 요양병원에서의 삶은 치매 없이 정신은 또렷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살아있으나 산 사람같지 않은 삶을 힘겹게 하루하루 보내고 계십니다.



처음 요양병원에서 뵌 엄마의 모습은 낯설고 가슴 아팠어요.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계신 엄마를 보며 눈물이 나왔어요. “엄마, 왜 이렇게 변해버렸어요? 정말 할머니가 되셨네요”라며 울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하얀 바탕에 옅은 파란 줄무늬가 새겨진 환자복, 짧은 머리에 회색빛이 섞인 모습의 엄마는 낯설고 마음 아픈 모습으로 제 앞에 서 계셨어요. 작년 11월 어느 밤, 화장실을 가시다 넘어져 대퇴부가 으스러졌던 그날부터, 엄마의 세상은 크게 바뀌어 버렸어요. 나이가 드시고 골다공증이 있으셨기에 몸의 중심을 잃으셨고,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한 뼈는 그만 부서지고 말았지요.



그 후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신 엄마의 모습은 변해버렸습니다. 마치 70년대의 머슴머리처럼 짧게 잘린 머리와 함께 이전의 모습을 잃은 엄마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어요. 평생을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목욕하고, 머리 감고, 화장을 하며 부지런하게 살아오신 엄마였는데 말이지요. “엄마, 그렇게 매일 머리 감고 화장하는 게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곤 했지만,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게 더 편해”라고 답하셨어요. 아버지와 우리 7남매를 위해 매일 정성을 다해 아침 식사를 차려내셨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나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정안수를 떠놓고 삼신 할머니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해요. 새벽마다 기도하며 정성스레 빌던 그 마음이 과연 다 전해졌을까요? 나는 지금도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힘들고, 샤워와 화장은커녕 겨우 잠에서 깨어나는 저와는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존경하게 돼요.



어머니의 삶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병원에서 처음 뵌 엄마는 병상에 앙상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고, 어디서 그런 많은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제가 한국에 온 것을 어렴풋이 인식하시면서도 제 이름을 헷갈리셨지요. 제가 사는 곳을 미국이라고 여기시는 엄마에게 “아니에요, 프랑스에 살아요”라고 정정해드렸지만, 이제는 그저 “네, 미국에 살아요”라고 대답하게 되었어요.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며 대퇴부 골절 수술 후 걷지 못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고, 우리는 돌아가며 요양병원을 찾아뵙고 있어요. 예전에는 병문안을 다녀올 때마다 눈물에 젖어 돌아왔지만, 지금은 웃으면서도 가슴 깊이 묵직한 감정을 안고 엄마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삶이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인생이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의 인생처럼,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각기 다른 굴곡과 색채를 지니고 있듯이, 사람들의 삶도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지금껏 살아온 시간에 상관없이 앞으로 나의 이야기가, 나의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봅니다.




‘라틴어 수업’에서 들은 ‘배워서 남 준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내가 살아가며 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멋진 역사가 또 있을까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을 전하는, 웃음과 희망을 남기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갑니다.



Chaque vie est une histoire, 각각의 인생은 한 편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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