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동생이 생겼다. 성인이 된 후 동생이 생긴다는 건 혈육을 나눈 관계는 아니란 것이다. 살다보니 생기는 가깝고 친한 동생이다.
나는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사촌들을 전부 나열해도 맨 꼴찌다. 대학에서도 재수,삼수한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한두살-많게는 세살어린 동생으로 지냈다.
졸업을 하고서야 나이보단 사회적 위치나 다른 복잡한 것들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철없던 시절엔 그저 기댈 수 있는 형,누나들이 좋았었다.
그런 내가 교육을 받고 교단에 서서 아이들의 맏형, 큰오빠 노릇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또 나에게 이자리에 서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들의 수고에 감사를 느낀다.
사랑하면 상대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고 한다. 대학 시절, 나의 멘토는 내게 있는 자유스러움을 더 발휘할 수 있게 했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 경험이 지금의 나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나에게 뭔가 더 바랬던 사람들, 함께 더 하길 원했던 이들도 이젠 떠나고 나니 좀 더 뚜렷해진다.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내가 원하던 것은 또 무엇인지가 말이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하고 때가 되면 떠나는 나그네의 삶을 동경해본다. 난 아직 그런 타이틀을 달진 못하겠다. 스스로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크게 실망하거나 자책하진 않는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기도를 멈출 때
우리가 일하고 사랑하기를 멈출 때에도 신께서는 그런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사랑하길
또 기도하길 멈추질 않으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참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