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기
한 평생을 살며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만난다. 어떤 이와의 만남은 평행선을 그리며 필요에 의해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어떤 이와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이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는 티격태격 다투고 토라졌다가도, 어느새 돌아와 다시 마주보고 식탁에 앉은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아내다. 익숙함 속에서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가장 위로를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하는 아내는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이며, 내 인생의 거울이다.
철학자 김형석은 말한다. 아내는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다. 청춘에는 ‘연인’이 되고 중년에는 인생의 ‘반려자’가 되며, 노년에는 ‘간호사’가 된다. 아내는 사랑을 뛰어넘는 마음의 주인이며 친구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깊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가슴 설레는 ‘연정’이며,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애정’으로 변하고, 나이가 들면 서로를 보살피는 ‘인간애’가 된다. 그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아내는 남편이 잠든 사이 역사를 써 내려간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창업가 카를 벤츠(Carl Benz)는 1872년 독일 포르츠하임 지역의 유복한 가정의 딸인 베르타(Bertha)와 결혼했다. 베르타는 여성이지만 재정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카를의 자동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베르타의 도움으로 카를은 1885년 세계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3륜 자동차 모터바겐(Motorwagen)을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모터바겐에 대해 말이 끌지 않는다는 이유로 괴물을 보듯 하였다. 소심한 카를은 자동차를 창고에 넣어두고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타는 달랐다. 자동차의 잠재력과 여성도 운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888년 어느 날 베르타는 남편이 잠든 사이 친정에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두 아들과 함께 자동차를 훔쳐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당시로서는 도전적인 106km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장거리 운전은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주유소가 없어 약국에서 벤젠을 구입해 사용했다. 막힌 연료관은 머리핀으로 뚫고, 마모된 브레이크는 구두가죽으로 라이닝을 만들고, 과열된 엔진은 우물물로 식혔다. 오르막 경사에서는 엔진의 힘이 부족하여 차를 밀고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새벽에 시작한 여행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동차로 106km를 12시간 동안 달리는 사상 최초의 장거리 운전을 완성한 것이다.
시속 20km로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많은 사람이 구경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른 길을 택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베르타는 자동차가 단순한 발명품이 아닌 마차를 대체할 새로운 이동 수단임을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만하임으로 돌아온 베르타는 여행기간 중 경험한 문제점을 하나하나 카를과 함께 개선해 나갔다. 그리하여 고성능 고효율의 벤츠자동차가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다.
카를 벤츠는 말한다. 생명의 작은 배에서 가라앉을 것 같을 때 단 한 사람만이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사람은 제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용감하고 단호하게 새로운 희망의 돛을 세워주었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베르타가 한 대의 자동차를 운전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을 운전한 것이다. 소심한 남편의 완벽주의를 참다못해 새벽에 모험을 감행한 아내의 여장부적 기질이 없었다면, 오늘날 자동차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때때로 자신의 꿈을 내려 놓는다.
대한민국 온라인게임의 전설 리니지(Lineage)로 잘 알려진 엔씨소프트(NCSoft)는 ‘한글과컴퓨터’ 창업가 김택진이 1997년 설립한 게임개발 회사이다. 김택진의 아내 윤송이는 카이스트와 MIT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인공지능(AI) 전문가다. 그녀는 1999년 SBS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이나영이 열연한 천재소녀 주인공의 실존 인물이다. 2002년 SK회장의 스카우트를 받아 SK 지능형 통신개발사업 상무로 재직 중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김택진과 인연을 맺었다. 2006년 열애설이 돌았고 이듬해 부부가 되었다.
2008년 윤송이는 SK를 사직하고 엔씨소프트의 최고전략책임자(CSO) 부사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그녀는 AI팀을 직접 꾸리고 진두지휘했다. 그렇게 엔씨소프트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자체 개발한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기업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산업은 ‘게임은 중독’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산업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택진이 ‘리니지’ 시리즈와 ‘리니지2’, ‘아이온’, 그리고 ‘리니지M’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내 윤송이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2011년 윤송이가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구성한 AI연구팀은 그후 전담인력 300명이 넘는 AI센터로 성장했다. NCSoft의 AI모델은 오픈AI가 출시한 언어모델 GPT3.5와 같은 1750억개의 파라미터 규모이다. 그녀는 엔씨소프트 AI기술의 상징인 LLM ‘바르코’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디지털휴먼에 이 AI기술을 적용해 역할연기게임(MMORPG)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몰입도와 생동감을 높일 수 있게 하였다.
2015년 윤송이는 북미지역사업을 총괄하는 NC웨스트 CEO에 취임했으나, 그해부터 회사는 적자의 늪에 빠졌다. 2018년 김진택 대표의 동생은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클렙의 대표에 취임했으나, 이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에 의해 양분된 시장에 후발주자로 입성하는 상황이라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렇듯 아내와 동생이 이끄는 회사의 경영실적이 부진하자 가족경영의 문제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노조와 주주의 입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2024년 윤송이는 NCSoft 최고전략책임자(CSO), 엔씨웨스트사장, ESG위원장 등 모든 직책을 내려놨다. 그동안 계속되어 실적부진을 가족경영과 연계하려는 이사회와 주주종회의 논란을 종결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남편 김택진이 가족경영 문제로 인해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한 아내의 배려였을 것이다. 현재 윤송이는 2024년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VC운영에 집중하며, AI사상가로서 새로운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택진은 말한다.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은 아내다. 그녀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지적 동반자이자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공동 경영자다. 아내는 NCSoft가 AI기반 게임회사로 거듭나고, ESG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아내는 여전히 AI분야 벤처투자, 스탠퍼드대 AI자문위원, MIT공대 이사, HP 이사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AI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먼 곳에서 김택진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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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의 인생에 빛과 소금이다.
류운천의 아내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한국무용을 전공하여 큰 무대에서도 공연한 경험이 있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류운천은 시골마을에서 하루하루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여 아내와 비교되곤 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기죽지 않도록 항상 배려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신보다 남편을 먼저 챙겼다.
류운천은 해외사무소장이 되었을 때, 해마다 직원들을 집에 초대하여 떡국을 먹으며 신년회를 했다. 여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번거로웠음에도 밝은 표정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어느 날 직원이 과음하여 화장실을 더럽혀 놓고 갔을 때도 아무 말없이 뒷정리를 했다. 부인들 모임에서는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그녀는 부부라는 것이 아내의 모습이 곧 남편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거울과 같은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다. 때로는 빛이 되어 길을 비추고, 때로는 소금이 되어 삶의 풍미를 더해 준다. 어려울 때는 버팀목이 되고, 기쁠 때는 가장 큰 소리로 함께 웃어주는 사람이다. 아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성공한 남편 뒤에는 언제나 헌신적인 아내의 역할이 있다. 벤츠의 아내 베르타가 그랬고, 김택진의 아내 윤송이가 그랬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채우는 마법같은 힘, 그것이 바로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