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Diary in Adelaide

난조 (104)

by 정태산이높다하되

87타를 적어낸 지 불과 5일 만에 100개를 넘긴 스코어를 적어냈다. 무려 17타를 오버하다니 이게 '머선일이고?!?' 역시 골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내가 몸소 증명하고 있다. 고수가 되려면 공이 안 맞을 때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데.... 일단, 하나하나 써 내려가다 보면 알 수 있겠지.

7등에서 141등으로 수직낙하!

티오프 시간은 8시 20분, 6시 좀 넘어서 눈이 떠졌다. 잠을 설쳤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묘하게도 골프 라운딩 예약을 오전에 해 둔 전날 밤에는 잠을 설친다.


꿈을 꾸었는데 물론 내용은 뒤죽박죽이다. 토마토를 샌드위치처럼 여러 겹으로 쌓아놓고 짓눌러서 흐르는 즙을 마셨고, 한쪽은 낭떠러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기도 했다.


간밤에 갈증이 난 걸까? 맥주를 한잔 한 것이 화근이었나? 그래도 몸은 가뿐했다. 골프가 잘 안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에 놀라게 된다. 유난히 집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날엔 어프로치나 퍼팅과 같은 숏게임을 망치기 십상이다.


멤버

멤버는 말콤, 필, 데이비드 이렇게 세명의 노인이었다. 토요일 개최되는 스테이블 포드 방식의 게임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가한다. 블루티에서 해야 하니 플레이 거리가 늘어나서 노인들은 힘에 부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분의 노인이 참가했고, 나는 그 팀에 조인했다. 그리고 나의 스코어링 파트너는 데이비드 david, 마치 아널드 슈왈츠 제네거와 같은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를 가진 신사였다.


그들 셋은 단짝인 듯했다. 물어보니 역시 늘 함께 라운딩을 하는 친구들이라고 했다. 두 분이 더 있었는데 한 분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또 다른 한 분은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고 했다.


멤버 중 필 phil이라는 분은 지금은 은퇴를 해서 이렇게 라운딩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현역이던 시절에는 GE에서 근무했다고 자랑한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자신이 서울에도 여러 번 출장을 갔었다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골프 코스에서 찍은 고슴도치 사진

노인들이다 보니 이분들의 스윙 동작은 매우 간결하고 느렸으며 부드러웠다. 유수부쟁선이라고 했던가.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더니 세 분은 스타일은 다르지만 허허실실 공을 툭툭 치며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잘 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오랜 구력으로 공을 치고 때리고 띄우고 굴리고 밀고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그들 셋은 완벽한 보기 플레이어였다.


그중에 말콤이라는 분은 내가 너무 공을 띄우기만 하니까 낮게 치거나 굴려서 멀리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애를 썼다. 라운딩 중에 잘 될 리가 없었지만 말콤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다.


라운딩이 끝나고 모자와 고글을 벗은 그들을 보고 나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주름과 검버섯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필드에서 플레이하면서 느낀 것보다 그들은 나이가 매우 많은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콤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허걱! 낼모레 아흔이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노인들과 플레이를 하면서 나는 이 분들이 자연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골프 코스에는 나이 많은 나무들이 꽤 있다. 골프를 하는 노인들은 나무를 닮아 있었다. 맥아더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저 사라질 뿐'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분 들이 그럴 것 같다. 또 함께 플레이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셋은 이구동성으로 "애니타임 조인어스!!!" 하는 것이었다.



벙커샷

탈출은 쉽게 하는 편이었는데 두 번째 홀에 빠진 공을 두세 번 쳐도 탈출시키지 못했다. 더블파가 나오면서 0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홀부터 매홀 벙커에 빠뜨렸다.


18홀을 복기해보니 매홀 그린의 좌우에는 크고 깊은 벙커가 아가리를 쩍쩍 벌리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벙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아무리 해도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우리나라 골프장의 벙커는 모래로 되어 있는데 여기는 대부분 붉은빛은 띠는 점토다. 젖어있기도 하고 바짝 말라 있기도 하다. 유튜브를 보고 상황에 맞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바람

토요일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강했다. 매섭게 부는 바람과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당황했다. 그리고 드라이버든 아이언이든 나는 공을 띄워서 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바람에 취약하다. 뒷 바람이 부는 경우가 많지 않고 맞바람이거나 소용돌이 바람이 많이 부는 이곳 마운트 오스몬드 골프장에서는 낮게 깔아치는 연습도 해두어야 한다. 참 할 것도 많다.


골프 플레이어들이 골프가 잘 안된 날에 내놓는 핑계는 백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하다 하다가 나중에는 '이상하게 안 맞는다'는 황당한 핑계로 마무리를 한다.


골프는 탁구공 크기만 한 공을 길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채로, 쳐서 300미터가 넘게 떨어져 있는 지름 108밀리미터 구멍에 네 번만에 넣어야 하는 지난한 게임이다. 안 되는 날이 많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재미가 있는 운동이다.


바람 한점 없이 맑은 날, 우연히 잘 친 5일 전 하루가 꿈처럼 느껴졌던 하루였다. 이래 가지고 핸디를 줄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