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Diary in Adelaide

핸디 좀 낮춰볼까(87)

by 정태산이높다하되

골프장에 다녀왔다. 멤버십이 있는 골프장은 Mount Osmond Golf Course다. PGA 투어 프로, 아담 스콧이 이곳 애들레이드 출신인데, 그가 처음 멤버로 가입했던 골프장이라고 한다. 내가 호주에 와서 처음 가입한 회원제 골프장이 바로 여기다.


집에서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다. 골프장이 가깝고, 호주에서는 골프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보니 별 준비 없이 시간에 맞춰 가서 대충 치고 오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필드를 걷는다 생각하고 운동 삼아 다녀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실력이 늘지 않았다. 잘해야 보기플레이를 하거나 자칫 방심하면 백돌이가 되기 일쑤다.


"골프 경기를 관전만 하면 그건 재미다. 플레이하면 그때는 레크리에이션이 된다. 그것에 열중할 때 진짜 골프가 된다." 미국의 코미디언 밥 호프가 한 말이라고 한다. 난 여태 오락으로 골프를 즐긴 것인가.


몇 달 있는 동안, 핸디를 낮춰보기로 결심했다. 목표를 가지고 제대로 해보는 거다.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레슨을 유심히 보고 꾸준히 따라 하면서 연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골프장에도 미리 가서 퍼팅그린도 점검하고 어프로치도 해보기로 했다.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몸도 풀고 바짝 긴장도 타고 말이다.



월요일인 어제 한국의 사무실 임원들과 줌 회의를 끝내고 점심 무렵에 골프장을 찾았다. 회의가 한국 시간으로 8시 반부터인데, 애들레이드 시간은 10시다. 회의 끝나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보통 골프는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러 다니는 편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해서 주말에 못 갔던 탓에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지만, 태도와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자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이 드는 것이었다.


등산복이나 트레이닝 복 말고, 골프복을 제대로 차려 입고 거리측정기도 옆구리에 차고, 모자에 마커도 달고, 고글도 챙겼다. 썬 그림도 꼼꼼히 바르고.


그렇게 하고 갔더니 프로 샾(pro shop)에 근무하는 앤드류가 "You look smart today!!! 오늘 맵시가 있는데!!"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곳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일상복과 큰 차이가 없는 복장으로 참여한다.


골프가 별 대수로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탓도 있고, 호주 사람들, 특히 애들레이드는 지방의 소도시여서인지, 사람들이 맵시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도 하다. 아니면 보는 기준이 다른것이겠지.


말이 났으니 한마디 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복장이나 장비는 최고로 준비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두어 시간 청계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반하는데나 필요한 복장으로 무장한다고 하니 말이다.



태도와 준비

마음가짐과 옷차림만 제대로 했을 뿐인데 왠지 골프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코어에 힘을 주고 볼을 끝까지 보며 한 홀 한 홀 정신을 집중하며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했다.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버기(buggy)라고 불리는 유모차처럼 생긴 4륜 카트에 골프채 가방과 모래 버킷을 싣고서 밀고 다녀야 한다. 혼자서 채를 고르고 공을 치고, 디봇이 생기면 보수를 해야 한다.


그린에 볼이 올라가면 마크를 하고 공을 닦은 다음, 홀에서 거리가 먼 사람부터 플레이를 한다. 홀에 공이 들어갈 때까지 플레이를 한다. 골프는 매너라고 하지 않던가. 매끄럽고 빠른 진행과 신중한 처신이 중요하다.

좌측에 보이는 것이 골프가방을 싣는 버기

마운트 오스몬드 골프클럽에서 회원들끼리 하는 게임은 스테이블 포드 방식이다. 경기에 참여하려면 7 호주달러를 지불하고 등록을 해야 한다. 물론, 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그냥 플레이해도 된다. 하지만 “내기 없는 골프는 허공에 하는 헛손질”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 핸디가 19~20을 왔다 갔다 하는데, 그렇다면 18홀 중에서 대부분 보기를 하고 한 두 홀은 더블보기를 하는 실력이라는 의미다. 게임의 룰은, 파 par를 하면 2점을, 보기 bogey를 하면 1점을 얻는 방식이다. 물론, 버디 birdie를 하면 3점이 된다. 이글 eagle을 하면 4점이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보기 플레이어니까 핸디를 적용해 점수를 받는다. 보기를 하면 2점, 더블을 하면 1점, 파를 하면 3점을 받는 것이다. 스테이블 포드 방식은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다.


지난주 한국에서 열린 경기가 변형 스테이블 포드 방식이었다. 버디를 하면 2점이고, 보기를 하면 -1점, 더블 이상을 하면 -2점을 얻는 룰을 적용했던 것 같다.


어제는 왠지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감이 와서 예약을 하지 않고 갔다. 때문에 다른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그 조에 합류를 했다. 동반 플레이어들은 18년 전에 이민을 왔다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리스 출신, 페트 로즈와 40대로 보이는 건축업자, 디온이라는 친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스코어카드를 출력해서 프로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동반 플레이어와 교환한 후 플레이어와 마커 란에 상대방과 본인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요즘은 앱으로 모든 기록을 처리한다. 플레이 시간이 되면 동반자들이 스마트 폰의 앱에 뜬다. 스코어를 기록할 대상자를 선택하고 플레이를 하면서 매홀 결과를 플레이어들이 서로 확인을 한 후 기록한다.


게임이 시작됐다. 첫 홀에서 드라이버 샷이 좋았는데, 세컨드 샷이 우측 나무 옆으로 가는 바람에 망했다. 트리플, 점수 획득 실패!


그런데 샷을 하는 느낌이나 몸의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리고 첫 홀의 트리플이 약이 된 것일까. 2번 홀부터 플레이가 제대로 되는 것이었다. 첫 홀을 빼면 전반 홀에서 4개 오버를 했으니까 파를 4개나 잡은 것이다.


내 경우, 핸디를 고려하게 되면 파를 한 홀에서는 3점을 획득한다. 어제는 평소에 비하면 매우 잘 한 게임이었다. 후반에 뒷심이 부족해서 샷이 흔들렸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이 좋았다. 전반에만 21점을 획득했다.

순위와 토털 점수가 기록되어 있는 스코어카드

마운트 오스몬드 골프클럽은 앞에 마운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처럼 산꼭대기에 있다. 그래서 페어웨이의 경사가 좌로 우로 심한 편이다. 아름드리나무가 홀의 좌우 경계를 만들고 있으며, 도그렉 홀도 많다.


그만큼 정교한 샷이 요구되고 홀마다 공략 방법을 매우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게다가 매홀 벙커가 그린 입구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벙커샷을 두려워해서는 플레이가 되지를 않는다.


애들레이드의 봄에는 바람이 강한 편이다. 몸에 힘을 많이 준 탓인지 뒷심이 부족했다. 후반 9홀에는 17점을 얻는데 그쳤다. 토털 38점(87타), 월요일 참가자 수는 60여 명에 불과했지만 내가 무려 7위에 랭크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골프는 인생의 반사경, 티샷에서 퍼팅까지의 과정이 바로 인생 항로다. 동작 하나하나가 바로 그 인간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까지 하다니.


약 4시간여 동안 성공과 좌절, 실패와 극복, 환희와 절망, 선택과 포기 등과 같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생각을 경험할 수 있는 운동은 흔치 않은 듯하다. 어제는 내게 골프가 그런 스포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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