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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Oct 27. 202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이반의 대심문관 & 스메르쟈코프

2부의 주인공은 이반과 스메르쟈코프다. 이반은 부친 파블로비치의 두 번째 부인, 소피아에게서 태어난 아들이고 알렉세이가 같은 부모 슬하의 동생이다. 그는 음울하고 염세적인 정서를 가진 인물인데 영특하고 지적 능력이 탁월하다. 스메르쟈코프는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아라는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생아다. 부친은 파블로비치가 거의 확실한데 그것은 리자베타가 겁탈을 당한 적이 있고, 아이를 낳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파블로프의 집안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리자베타는 죽고, 아이만 남는데 파블로비치의 묵인 하에 아이를 거두는 사람은 하인, 그리고리 부부였다.


스메르쟈코프

소설 속 스메르쟈코프를 설명하는 에피소드는 파블로비치의 하인, 그리고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리는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결국, 갓난아기 때 죽고 만다. 만삭의 리자베타를 발견하고 해산을 도운 그리고리 부부는, 핏덩이 스메르쟈코프를 죽은 아들이 보낸 아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맡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스메르쟈코프는 그리고리의 바람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그는 천성적으로 타인의 사랑을 받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성경의 내용 중 창세기를 설명하는 그리고리에게 어린 스메르쟈코프는 "주 하느님이 빛을 창조한 건 첫째 날이고 태양과 달은 넷째 날에 창조했다면서요. 그럼, 첫째 날엔 어디서 빛이 비쳤던 거죠?(1권 261쪽)"라는 맹랑한 지적을 한다. 그래놓고서 자신의 은인을 경멸이나 조롱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리는 "바로 여기서다!"라며 어린 스메르쟈코프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그 며칠 후부터 스메르쟈코프의 발작(뇌전증)이 시작된다.


어느 날은 음식을 먹기 전 항상 불빛에 비추어 보면서 요리조리 검토를 한 다음 입에 넣었는데 그 모습을 본 파블로비치는 스메르쟈코프를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낸다. 유학서 돌아온 스메르쟈코프는 파블로비치의 전용 요리사가 된다. 요리를 거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파블로비치와 그리고리 사이에서 잠자코 있다가도 그는 한 마디씩 끼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파블로비치가 어떤 상인으부터 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병사가 아시아의 어떤 나라에 포로로 붙잡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고, 그래서 개종하지 않고 병사는 장렬한 죽음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스메르쟈코프는 "제 소견으론, 이런 경우 대략 그리스도의 이름과 자신의 세례를 거부했다고 해도 죄가 될 건 없을 듯한데요, 그렇게 자기 목숨을 구함으로써 앞으로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자신의 비겁함을 보상하면 되니까요.(1권 267)"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대답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적 권위를 고려하면 매우 불경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저자, 도스토옙스키는 스메르쟈코프의 입을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전쟁과 과학이라는 개혁적 사건들이, 종교적 신념과 갈등을 빚는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리는 카라마조프가의 하인이지만 신중하고 의리가 있으며 사리 분명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신분제도가 철폐된 이후 자유를 찾아 떠나자고 하는 아내, 마르파 이그나치 예브나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고 파블로비치의 곁을 평생 지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거리에서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던 주인을 지켜준 충직한 하인이었다. 그래서 엽기적 행각을 일삼는 파블로비치도 그리고리의 고언에는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 그리고리조차도 스메르쟈코프의 이치에는 맞지만 정서적으로는 동의가 안 되는 불편한 말들과 태도, 표정은 용서할 수 없는 오만불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리는 스메르쟈코프에게 '양고기처럼 구워질 녀석'이라거나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몹쓸 놈 -실제 표현은 지극히 선정적이다-(1권 470쪽)'이라는 저주를 퍼부으며 아들과도 같았던 스메르쟈코프와 최악의 관계를 만들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었던 지하묘지, 위키백과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모친이 키가 140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작은 키에 산발한 머리카락에는 항상 덤불이나 흙을 묻힌 채 거리를 배회하던 정신 나간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가슴속에 깊은 원한을 갖게 된다. 그리고 타인들과 세상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세상을 저주하는 스메르쟈코프의 깊은 내적 심연은, 그를 세속의 기쁨과 욕망 따위에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게 하지 않는다. 파블로비치가 거금을 탁자 위에 두거나 마당에 흘려도 절대 일부라도 가지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파블로비치는 요리사 겸 하인인 스메르쟈코프의 이런 면모를 높이 산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이 연결된다. 파블로비치와 그 세 아들, 그리고 카 체리나와 그류셴카, 그리고 호흘라코바 부인과 그 딸 리즈, 수도원의 장로와 신부들, 수도사들, 스네기료프와 그 아들 일류샤 등은 모두 사건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맺지만 유일하게 스메르쟈코프만은 외따로 떨어져서 비슷한 캐릭터의 이반과만 관계를 맺고 있다.




이반 & 대심문관

드미트리가 돈을 변통해주는 바람에 위기에서 모면한 카체리나는 중령이었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는데 거기서 친척의 상속녀가 되는 바람에 일거에 부자가 된다. 은혜를 갚기 위해 드미트리와 약혼을 한다. 그런데 드미트리는 부친 파블로비치의 재산 일부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중 부친의 술집에서 일을 봐주던 그류셴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런데 문제의 그류셴카라는 여성은 이미 파블로비치가 눈여겨봐 두고 일금 3천 루블을 제시하면서 청혼을 시도하고 있던 대상이었다.


그때 드미트리가 배다른 동생, 이반을 카체리나에게 보냄으로써 자신이 카체리나를 떠나고자 하는 의도를 노출한다. 이반은 지적이면서 냉소적인 인물이고 카체리나 또한 출중한 외모와 귀족적 오만함으로 가득한 여성이었으니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격식과 규범에 얽매인 둘은, 드미트리나 파블로비치처럼 모든 문화적 관습적 난관을 무시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 둘은 각각 타인을 위한 헌신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지적 허영과 체면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반은 부친과 카체리나를 떠나기로 선언한다. 떠나기 전 자신의 세계관을 논리와 지적 능력을 이용해 동생 알렉셰이에게 선보인다. 이반은 자신이 직접 지은, 대심문관이라는 서사시를 알렉셰이에게 소개한다. 서사시의 배경은 16세기 에스파냐의 세르비라는 지역인데, 이 지역은 현재의 스페인 안달루시아라는 주의 주도다. 당시 세르비에서는 종교재판을 통해 100명에 육박하는 이단자들을 처형한다.


그 직후 어느 날 갑자기 1500년 만에 예수로 보이는 존재가 그 마을을 찾아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소녀를 부활시키는 기적을 행한다. 시민들이 모이고, 그를 숭배하려고 구름 떼처럼 모이지만 90살의 대심문관은 근위대에 명령해 시민을 해산하고 그를 구속한다.

16세기 세르비, 위키백과

이반의 서사시는 구속된 예수에게 대심문관이 하는 말들의 집합으로 완성된다. 재림한 예수에게 하는 대심문관의 첫 질문은 "대체 뭣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것이냐?(1권 527쪽)"였다.


그가 하는 말들을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핵심은 자유와 빵이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빵 없는 자유는 고통일 뿐이다. 그런데 빵과 자유를 모두 획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를 담보로 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경배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는다. 그리고 자신이 찾은 경배의 대상을 여럿이 공동으로 섬기기를 희망한다. 그러니 인간들은 무리 별로 경배의 대상을 위해 경쟁한다. 경쟁은 검을 빼들게 하고 살육과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인간들의 삶이 되는 것이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인간들과 신은 모두 박멸의 대상일 뿐이다. 대항해 시대의 모든 제국들은 하나의 가치를 기치로 내걸고 세계를 통일하고자 했다.


"나약한 반역자들의 양심을 영원토록 정복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힘, 그들의 행복을 위한 지상 유일한 세 가지 힘이 있으니 - 이 힘이란 기적, 신비, 그리고 권위이다.(537쪽)" 그러나 결국, 인간들이 현재 처한 상황은 불안, 혼돈, 불행이라는 비극적 관념에 사로잡혀 허우적 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자유와 빵과 양심을 좌지우지하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대부분의 인간들이 조종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심문관은 갈파하고 있다.


파블로비치 VS 이반 & 스메르쟈코프

이반과 스메르쟈코프는 신분과 학벌의 차이는 대단히 차별적이지만, 공통적으로 음울하고 이성적이다. 그리고 지적 능력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매우 비슷하다. 경멸의 대상인 파블로비치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이 두 사람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파블로비치는 자신들이 태어난 원천인데, 그 원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 둘에게 파블로비치는 제거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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