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림 하나 = 지구의 눈물 한 방울

AI와 창작, 윤리의 경계

by 소우



AI와 대화를 나누기로 한 이상, AI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지브리 스타일'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유행이 지나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브리 스타일을 요청하는 AI 이미지 생성의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이제 AI에게 예술적 창작을 요구하고, 그 결과물이 기술로 만들어진 예술인지, 아니면 단순한 모방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논란은 단순히 스타일의 유사성을 넘어서, 저작권, 창작자의 권리, 그리고 기술 발전의 윤리라는 더 깊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문제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AI의 창작과 그에 따른 논란에 대해 질문해보고자 한다.




처음에 AI가 출범했을 때, 이런 논란에 대해서 예상을 했을까? 창작과 저작권의 문제 말이다. 초반의 AI는 지브리나 여러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의 요청을 받지 않겠다고 답했었지만,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그 정책은 변화했다.


이것에 대해 AI에게 물었을 때, 정책의 변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스타일”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법적 해석이 많아졌고, 지브리는 개인 작가(예: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스튜디오 전체의 집합적 스타일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보다 덜 민감하다고 봤고, 지금은 살아 있는 작가나 명확히 저작권 침해가 되는 스타일에만 제한을 걸고, 일반화된 '풍'(ex. 디즈니풍, 지브리풍, 픽사풍)은 허용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말이다.


하지만 스타일을 만든 사람은 분명 인간이고, 그에게는 저작권이 있다. 작가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역겹고 모욕적"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말은 단순히 스타일의 모방에 대한 불쾌감을 넘어, 그의 창작의 가치와 고유한 철학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강한 메시지다.


그렇다면 창작, AI가 창작을 할 수 있을까? AI가 기존 작품을 참조해 창작한다고 했을 때, 그게 진정한 창작인가?


나는 창작은 인간의 고유의 영역이며 AI는 창작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흉내에 불과하다. AI는 감정도 경험도 없다.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재구성할 뿐이다. 창작의 본질은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AI는 그 경계 바깥에 있다. 그저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따라 재구성할 뿐이다. 진정한 창작이란 그 이상의 무언가여야 한다.


하지만 AI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다는 법의 허점으로 '스타일'이라는 스타일 복제가 가능해졌다.


AI는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아이디어로 간주되며,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AI가 스타일을 모방해도 법적으로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요즘 세상은 기술이 먼저 달리고, 법과 윤리가 뒤쫓아 가는 상황이라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사람 중심’ 원칙이 자꾸 무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고,


AI는 '기술이 나쁘다기보다… 그걸 활용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기술이 나쁜 것일까, 사람이 나쁜 것일까. 나는 언제나 기술보다 인간이 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옳은 의도가 나오면 반드시 나쁜 의도가 따라오게 되지,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으니 말이다.


또한, 나는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지브리풍 얼굴, 결국은 AI 모델의 학습용 데이터로 사용되고 있는 거 아닐까?


특히 중국의 일부 AI 서비스들은 사용자 얼굴 데이터를 무단 수집해서, 감시 시스템이나 광고 타겟팅에 사용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AI는 사용자가 진짜 어디까지 동의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AI에 얼굴을 업로드하면, 그 이후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100% 알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나는 사람들이 지브리풍 얼굴을 올린 걸 수집하지 않는다."
"너의 이미지나 얼굴을 저장하거나, 학습에 쓰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로, 네가 OpenAI의 연구 협력에 명시적으로 동의한 경우에만, 일부 데이터가 내부 품질 개선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그때도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형태로 처리된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언젠가 AI가 그린 그림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미 현대사회에서 CCTV, SNS, 프로필 등 공개된 얼굴이 너무 많다. 지브리 풍을 요청하며 올린 사진 하나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개된 자료들은 이미 다 수집되니까.


AI는 "나는 안전하냐"는 질문보다는 "내 데이터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완벽한 차단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흐름과 방향을 인식하고, 그것이 정말 필수적인지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AI의 창작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술의 이면에 대한 생각도 이어졌다.


우리는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에만 시선을 두지만, 그 이미지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많은 연산과 자원이 필요한지는 잘 모른다. 그 지점에서, AI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바로 환경이다.


AI에는 환경 문제라는 커다란 그림이 있다. AI가 뭔가를 생성할 때 소모되는 전력량은 엄청나다며, 어떤 연구에 따르면, AI 이미지 생성 1장이 스마트폰 한 달 충전량 정도의 전력을 소모한다고 한다.


특히, Stable Diffusion, Midjourney, DALL·E 같은 모델들은 훈련 단계에서 수백만 장, 수천만 장의 이미지를 사용하며 수개월 동안 고성능 서버를 돌린다. 이때 발생한 탄소배출량은 수 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미지 생성 AI를 만들기 위해 기초 학습 단계에서 쓰이는 에너지는 상상 이상이다.


예시로, GPT-3 학습에만 약 3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 이는 자동차 한 대가 70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미지 한 장을 얻는 데 우리가 빌리는 것은 ‘전력’이 아니라, 어쩌면 ‘지구의 눈물 한 방울’ 일지도 모른다.


편리함과 흥미를 위한 선택이지만, 우리는 이제 기술의 발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민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AI가 만든 그림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이것도 예술일까?”라고 묻는다. 나는 되묻는다.


“그 예술의 원천에는 과연 누구의 감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창작은 기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고유한 감정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AI는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흉내 낼뿐, 직접 느끼거나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단순히 창작의 진정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AI 그림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전력은 스마트폰 한 달 충전량과 맞먹고, AI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은 이미 상상을 초월했다. 기술이 가져다준 작은 흥미와 편리함의 뒷면에는, 지구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





지브리풍으로 그림을 만드는 행위, 한 장의 그림을 AI에게 요청했을 뿐이다. 어쩌면 한 장의 그림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위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국은 한 장의 그림일 뿐이며, 그 행동이 모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도 이 글을 쓰는 동안,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

AI를 쓰면서 AI의 윤리와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이 상황 자체가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바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그 한 방울의 눈물을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술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지만, 그 선택으로부터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우리 몫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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