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광고판을 보며.
광고를 보면 욕망이 보인다. 광고는 그 사회의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보통은 반영하는 것 같다. 지난 주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도 더 할 것이 없어서 멍하니 앞을 보다 보니 벽에 붙은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광고물들이 붙어있는 듯 했지만, 3가지로 요약되었다.
결혼 정보 업체, 공무원 시험 학원, 성형외과.
나열해서 쓰기만 해도 쓸쓸해지는 세 곳이다. 나는 이 장소들에서 말라버린 사랑과 고립감, 거절감, 불안감이 읽힌다. 터덜터덜 집에오며 '어쩌자고 이런 세상이고, 우리는 어쩌자고 이런 존재들인가. 어쩌자고 이런 아수라가 되어가는가.' 혼자 뇌까렸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 불현듯 만화 스폰지밥의 뚱이와 시인 윤동주가 생각이 났다. 둘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은 우정을 대신할 수 없어. 너를 잃을 바엔 차라리 바보가 될래.'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_윤동주 '십자가' 中
우리는 너무 똑똑해져서, 손해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기꺼이 바보가 되길 선택하는 사랑을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똑똑해서, 약해졌다. 우리의 비극은, 더이상 이런 사랑을 할 수가 없는데, 여전히 이런 사랑에 목이 마르다는 사실에 있다. A 등급이 아니어도, 가진게 적어도, 얼굴이 못생겨도, 바보처럼 안아주는 사랑에 여전히 우리는 목이 마르다.
바보가 된 뚱이와 괴로운 예수. 둘은 손해를 보지만 행복하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길 원하고, 나아가 그들처럼 사랑하고 싶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아우성을 꾹 눌러 무시한 채, 혹은 혼탁한 세상의 소음에 묻혀 그 소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오늘도 우리는 그 광고판들 앞을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