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악단을 보고 기록.
'광야를 지나며'. 노래를 마친 김 대위의 눈빛이 실존적 떨림으로 흔들린다. 그 갈 곳 잃은 시선의 묘사에 감탄했다. 북한 체제 속에서 유물론적 이념에 세뇌되어 삶에 관한 실존적 고뇌가 거세당한 개인은, 이 알 수 없는 떨림에 당황한다.
창조주에 관한, 인생의 의미에 관한, 인간의 자유에 관한 실존적 질문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에 스며들때, 죽은것만 같던 인간 영혼은 떨린다.
늘 그렇듯,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세뇌와 폭압으로는 마침내 짓밟아 없앨 수 없는 것이, 어찌할 바 모를 허무가, 도리 없는 갈팡질팡함이, 인간 안에는 있는것이다. 광막한 광야를 헤메는 김 대위의 무너짐은 결국 절규가 된다. 그 갈 곳 잃은 눈동자는, 다시 뛰는 영혼의 맥박으로 떨린다.
고등학교때 요덕 수용소 실상에 충격받고 한참 북한 인권단체 활동에 관심갖던 때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삶에 치이며 북한과 그 정권이 자행하는 인권 탄압은 가끔 필요할 때 견해만 드러내는 추상적인 담론처럼 내게 여겨졌음을 고백한다.
개신교 문필가 메릴린 로빈슨의 소설 길리아드에서 나이 든 목사는 삶을 회고하며 그의 할아버지가 남긴 글을 기록한다. 노예제를 막기 위해 총을 들고 남북전쟁에 뛰어들었던, 역시 목사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남북 전쟁을 반대하는 아들에게 이런 메모를 탁자에 남기고 집을 떠난다.
'선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악이 끝나지 않았다.
그게 너의 평화란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주님께서 너를 축복하시기를.'
올해로 서른 셋이 되었다. 예전부터 줄곧 내 서른 초반은 어떨까 궁금했다. 안중근은 그 즈음의 나이에 이토를 쏘아 죽이려 홀로 하얼빈으로 향했고. 예수는 그 즈음의 나이에 세상의 악과 고통을 짊어지려 홀로 골고다로 향했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세상에는 아직 악이 끝나지 않았다.
기쁜 소식, 복음을 통해 실존을 마주하는 인간과 그 선택에 관한 영화였다. 또한 우리가 외면하는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어 사명 찾을 것을 촉구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한 해를 시작하기에 좋은 이야기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