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9장. '다른 집안'에서 온 당신 : 배우자의 성장 배경

by 윤혁경

9장. '다른 집안'에서 온 당신 : 배우자의 성장 배경


사람은 모두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달라 그만큼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두 개의 '다른 집안'이 하나로 만나면서, 부부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이 생기기도 하죠. 특히 보수적인 집안과 개방적인 집안에서 자란 배우자의 생활 방식은 '다름'을 넘어 '틀림'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배우자나 자녀의 특정 행동이 낯설고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집안 문화'를 들여다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이래야 한다'는 가르침 : 보수적인 집안의 그림자


제 작은 딸은 슈퍼에 갈 때조차 양말을 신지 않고는 나가지 않아요. 맨발에 슬리퍼를 신는 것을 상상도 못 하며 "다른 사람에게 맨발을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야"라고 말하죠. 직장에서도 5년 동안 결근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출근하고,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날조차 진통이 멎자마자 회사로 향할 만큼 철저함과 책임감이 몸에 배어 있답니다.


이러한 철저함과 책임감은 어디서 온 걸까요? 아마도 제가 보수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선 안 된다"는 분명한 기준 속에서 자란 딸은 그 틀을 자신의 삶과 자녀 교육에도 고스란히 적용하죠.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결석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날카롭게 훈계하는 모습에서 저를 빼닮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보수적이었던 것은 제가 성장한 집안이 엄격한 보수적인 집안이었던 것이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저의 딸에게까지 대를 이어 전해진 것이었죠.


이처럼 권위와 예절, 규율과 책임감은 보수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도덕적 기준이 강하게 작용해요.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고 계획적이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노력합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특성이지만, 때로는 융통성이 부족하거나 타인의 자유로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직된 태도로 비칠 수도 있죠.


♣ '편하게, 자유롭게' : 개방적인 집안의 온도


어릴 적 고향 친구의 이야기인데, 개방적인 집에서 자란 친구 아내와 굉장히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친구가 서로의 생활 습관과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3년이 지나지 않아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답니다.

결혼 초, 신부는 시댁 식사 자리에 갈 때마다 '어른들 뵐 때는 너무 짧거나 화려한 옷은 실례'라며 옷차림을 신경 썼습니다. 하지만 신랑은 "우리 부모님 그런 거 신경 안 써. 편하게 입어"라고 무심히 말하죠. 막상 도착하니 시어머니의 첫마디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노출이 심할까…?"였습니다.


이는 한쪽은 권위와 예절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집안이고, 다른 한쪽은 자율성과 개방성을 존중하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입니다. 신랑은 '우리 부모님은 개방적이니 괜찮아'라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여전히 보수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행동도 서로 다른 문화 안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죠.


제 아내는 "사랑해", "수고했어", "잘하고 있어" 같은 감정 표현을 자녀들에게도, 손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건넵니다. 아내가 자란 집은 좀 더 개방적이고 감정 표현에 익숙한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손자들이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그런 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마음엔 있지만, 그래서 아내를 따라 감정 표현을 연습했죠. 이제는 '극보수에서 중간 보수로 진화'했을 정도예요.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감정 표현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모른답니다.


개방적인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고, 개인의 의견 존중, 그리고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우선시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력과 융통성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개방성이 보수적인 이들에게 '무례하다'거나 '개념 없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죠.



♣ 집안 문화는 삶의 모든 행동을 만든다


보수적인 집안과 개방적인 집안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가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의미예요. 그렇기에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감정 표현, 인간관계, 갈등 대처 방식뿐만 아니라, 삶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도 그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나요.


자녀의 진로 : 보수적인 집안의 부모는 안정적인 직업을 '지정해주듯' 권하는 반면, 개방적인 집안의 부모는 자녀의 적성과 흥미를 존중하며 선택을 응원합니다.


명절 문화 : 보수적인 시댁은 "명절은 시댁, 친정은 그다음"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고, 개방적인 며느리는 "해마다 번갈아 가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가 때로는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경제관 : 보수적인 집안은 절약과 저축을 미덕으로 여기고, 미래를 위한 안정적인 재산 증식을 강조합니다. 반면 개방적인 집안은 '경험을 위한 소비'를 중요시하며, 현재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두기도 합니다. 생활비나 지출 우선순위를 두고 생기는 갈등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옷차림 : 보수적인 집안은 개인의 품위와 집안의 명예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튀거나 과감한 스타일보다는 단정하고 깔끔하며 격식 있는 옷차림을 선호합니다. 반면 개방적인 집안은 옷차림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처럼 집안 문화는 우리 삶의 아주 작은 행동부터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배우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판단하기 전에, '그가 어떤 집에서 자랐기에 저런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갈등을 푸는 첫 단추는 '이해'


결혼 초에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갈등이 반드시 이혼이나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해결하느냐'이죠.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춰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상대가 자라온 환경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보수적인 집에서 자란 사람은 생각과 행동이 자연히 엄격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고, 개방적인 집에서 자란 사람은 자유롭고 표현에 익숙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 집에서 뭘 배우고 자랐길래 저래?"라는 비난 대신, "그 집에서 자랐으니 저럴 수 있겠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관계는 반쯤 회복된 셈입니다. 이 인식의 전환은 상대에 대한 판단과 비난의 칼날을 거두고, 공감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시작점이 됩니다.


제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좀 더 자율성을 주었더라면, 그들의 말을 조금만 더 경청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죠. 지금부터라도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그리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내가 이해받고 싶었던 만큼 이해하려는 마음을 품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는 자란다


보수적인 집안과 개방적인 집안의 차이는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다른 것일 뿐입니다. 배우자의 말과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가 어떤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먼저 떠올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 갈등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이해와 존중'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부부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이 깨달음은 비단 부부 관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녀들과 손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가족 문화 전체를 더욱 부드럽고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란 각자의 뿌리에서 자라난 두 그루의 나무가 만나 하나의 숲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의 뿌리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그 숲은 더욱 풍성하고 굳건해질 것입니다. 배우자의 '다름'을 사랑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배우자의 '집안 문화'를 이해하는 데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1. 배우자의 특정 행동이나 가치관이 '성장 배경'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고 있는가?

배우자의 행동이나 생각이 나의 기대와 다를 때,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하고 그 배경에 배우자의 '집안 문화'가 있을 수 있다고 떠올려 보나요?

예절, 감정 표현, 경제관, 옷차림 등 구체적인 생활 방식에서 배우자의 집안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나 분위기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나요?

2. 배우자의 '집안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배우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가족과의 추억, 명절 풍습 등 '집안 문화'와 관련된 경험담에 대해 경청하고 질문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나요?

배우자의 가족 구성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존중하려 노력했나요?


3.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긍정적인 부부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배우자의 '다름' 때문에 발생한 갈등 상황에서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그 집에서 자랐으니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공감과 연민의 태도를 보였나요?

두 개의 다른 '집안 문화'가 만나 새로운 우리 가족만의 건강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함께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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