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옆으로 걷는 아기 게의 항변
10장. 옆으로 걷는 아기 게의 항변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행동 방식, 사고 패턴, 심지어 감정 표현까지도 몸에 밴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습관들은 단순한 개인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성장한 ‘집안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아는 것이 부부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배우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려면, 그들이 어떤 문화 속에서 성장했는지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아기 게는 왜 옆으로 걷는가? 몸에 밴 문화
아기 게가 옆으로 걷자, 엄마 게가 '똑바로 걸으라' 말하지만, 아기 게는 '엄마가 먼저 똑바로 걸어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명확한 진실을 담고 있어요.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따라 배우죠.
10년을 함께 산 초등학교 2학년인 제 손자는 걸을 때 뒷짐을 지고 걸어요. 할아버지인 저를 꼭 빼닮은 모습이죠. 말하지 않아도 손자는 '그 집의 걷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며 자라난 거예요. 이는 학습이 아니라 체득의 영역이죠.
우리의 일상생활 속 아주 사소한 습관에도 이러한 '문화의 흔적'이 깊이 배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 사이의 첫 다툼이 될 수도 있는 치약 짜는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치약을 언제나 밑에서부터 가지런히 짜야 직성이 풀리고, 어떤 사람은 아무 데나 눌러 짜고 뚜껑도 잘 닫지 않죠. 처음에는 상대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거슬릴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그 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정상'이 된 것뿐이에요. 배우자 역시 자신이 자란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이죠.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르게 자란 것일 뿐이랍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의 문화'는 매우 다양해요. 저는 숨쉬기 운동 이외에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요. 아내가 다그치지만, 지하철 환승하면서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쩌면 제가 자란 집안의 8남매 모두 운동을 즐긴 적이 없었기에, 그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아내는 볼링,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까지 즐기는 '운동하는 몸'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운동선수였던 오빠를 지지해 준 가족 분위기 덕분에 '운동하는 몸'이 그녀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운동을 즐기는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 사소한 습관, 그 뒤에 숨은 가정의 규칙
때로는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가 부부 싸움의 큰 도화선이 되기도 해요. '양말 뒤집어 벗기'로 부부 싸움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양말을 뒤집어 아무 데나 던져두는 남편, '늘 그렇게 해왔던 집안의 방식'이었지만, 아내에게는 그것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당연히 바로 벗어야죠!"라고 말하는 그 아내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그냥요"라고만 합니다. 이처럼 '그냥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행동들 속에 바로 몸에 밴 '문화'가 숨어있습니다.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그저 '익숙함'과 '당연함'으로 굳어진 습관들이죠.
사실 양말은 바깥쪽보다 안쪽이 더 더럽답니다. 각질이 떨어지는 등 더 깨끗해야 할 부분이죠. 그것을 남편이 뒤집어 벗어주면 그만큼 수고가 덜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그 아내가 조금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듯이, 상대의 습관 뒤에 숨겨진 '그들만의 이유'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부부의 경우 '뒤집어진 양말은 그대로 세탁하고, 다시 뒤집는 것이 불편하면 그냥 둔 채로 남편이 신을 때 다시 뒤집어 신도록 하자'는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갈등을 해결했어요.
이는 서로의 습관을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서로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죠.
♣ 깔끔함과 정리 습관 : '몸에 밴 익숙함'이 만든 차이
저와 아내는 청결과 정리 정돈에 대한 습관이 참 다릅니다. 이 차이는 종종 작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성장 배경과 '몸에 밴 익숙함'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유난히 깔끔한 편입니다. 가난한 시골 초가집에서 자랐지만, 어머니께서는 늘 집안을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게 치우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청소와 정리 정돈은 저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 습관이 될 수밖에 없었죠.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영향이 컸던 겁니다.
반면, 아내는 정리 정돈에 다소 서툰 편입니다. 아내의 부모님은 양복점을 운영하셨는데, 생활 공간과 작업 공간이 붙어 있는 환경에서 늘 바쁘게 지내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치우는 것보다는 손님 응대와 작업이 더 우선이었을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내에게는 완벽한 정리보다는 삶의 흐름에 맞춰 사는 것이 익숙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저희 부부의 청결과 정리에 대한 습관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이 차이가 작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서로의 배경과 익숙함이 지금의 습관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비난 대신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 밥상머리부터 감정 표현까지 : 문화가 만든 습관들
습관은 단순히 개인의 버릇을 넘어, 우리가 속한 공동체, 특히 '가족'의 문화가 깊이 스며들어있습니다.
밥상머리 문화 : 저는 식사 중에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밥 먹을 땐 조용히 해라"는 말을 하루 세 번 듣고 자랐기에, 식탁은 그저 음식을 먹는 공간이었죠.
하지만 아내에게 식탁은 "관계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대", "그 친구 엄마가 말이야…" 등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내의 모습에 처음에는 산만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식탁 문화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식사를 통해 가족 간의 유대감을 다지고 소통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죠.
칭찬과 감정 표현 : 칭찬에 인색한 저는 딸이나 손자가 무언가를 잘해도 "잘했어" 한마디로 끝내기 일쑤입니다.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시험을 잘 봐도, 상을 타와도 당연한 일로 치부되거나 별일 아닌 반응만 받은 경험은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합리화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반면, "정말 멋지다!", "네가 있어서 든든해"처럼 칭찬을 자연스럽게 하고, 훈육 시에도 아이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내는 감정도, 말도 따뜻하게 흐르던 집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칭찬과 격려가 일상이었던 환경이 그녀의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을 만든 거죠.
생활 리듬 : 저는 새벽 5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형 인간'이죠. 7시까지 사무실에 도착, 9시까지 2시간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며 30년을 살아온 이 습관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답니다. 이는 아마도 근면 성실함과 계획성을 중요시하는 집안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죠.
반면 아내는 매일을 즐겁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계획보다는 그날그날의 기분과 흐름을 따라 삽니다. 그녀는 삶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은, 여유와 자유를 중시하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휴식과 즐거움의 가치를 아는 것이 그녀의 습관에 반영된 거죠.
이처럼 우리의 말투, 식사 습관, 생활 방식, 감정 표현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자란 집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흡수한 것'을 살아내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익숙함이 나 자신의 '기준'이 되어 상대가 다르면 '틀렸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오해와 갈등이 싹트게 됩니다.
♣ 습관은 행동이 아니라 문화다 :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기
부부 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은 결국 '습관은 행동이 아니라 문화다'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상대의 행동만을 보고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비난하지만, 그 행동 뒤에는 수십 년간 뿌리내린 '집안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간과합니다. 배우자가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은 단순히 '버릇'이 아니라, 그가 속했던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학습된 '규칙'이자 '정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자란 것'일 뿐이다. 이 진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상대의 행동을 판단 대신 이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배우자가 왜 그런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지, 왜 그런 습관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관점에서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행동을 그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는 대신, 그가 성장한 '환경'의 영향으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상대의 말과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잠시 멈춰 서서 그가 어떤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먼저 떠올려 보세요. 그 순간, 갈등은 더 이상 부부 관계를 해치는 독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부부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공감의 폭이 넓어지고 불필요한 비난이 줄어들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고, 그것이 자녀와 손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의 습관이 무심코 다음 세대에 전수될 '문화'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건강하고 긍정적인 가풍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부부 관계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라나고, 따뜻하고 이해심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아기 게가 옆으로 걷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게의 방식인 것처럼, 배우자의 습관도 그저 그의 방식일 뿐임을 인정하는 것이 평화로운 관계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배우자의 어떤 습관에서 '집안의 문화'를 느끼셨나요? 그 문화가 여러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1. 나와 배우자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각자의 '집안 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고 있는가?
치약 짜는 방식, 양말 벗는 방식, 운동 습관 등 배우자의 특정 생활 습관이 단순히 '버릇'이 아니라, 그가 자라온 집안의 '익숙함'이자 '정상'이었음을 인정하나요?
나의 습관 역시 내가 자란 집안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화'이며, 배우자에게는 그것이 낯설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나요?
2. 서로의 '습관' 뒤에 숨겨진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고 노력하는가?
배우자의 이해되지 않는 습관이 있을 때, 비난하기 전에 그 습관이 형성된 '그들만의 이유'나 성장 배경에 대해 질문하고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이나요?
서로의 다른 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강요나 비난 대신 '서로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나요? (예: 양말 처리 방식에 대한 평화협정처럼)
3. '습관은 행동이 아니라 문화'라는 인식을 통해 부부 관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있는가?
식사 중 대화, 감정 표현 방식, 생활 리듬 등 부부 사이의 다양한 '다름'을 배우자의 '문제'가 아닌, '다르게 자란 환경'의 영향으로 이해하고 있나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비난을 줄이고 공감의 폭을 넓히며, 더 나아가 우리 부부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긍정적인 '가족 문화'를 물려줄지 성찰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