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고민되지만
술의 시작
아마 대입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친구들의 꼬드김이라고 쓰지만, 사실 그 꼬드김을 반기며 은근히 기다린 내면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제삿날이면 남자 어른들이 돌려 마시던 청주 냄새, 가볍고 날아갈 듯 날개가 긴 소리 없이 나는 새가 생각나는 냄새였다. 막걸리는 묵직하고 찐했다. 심부름으로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고 달려서 집에 오면, 손에서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탄산이 느껴졌다. 몰래 핥아 보면 혀끝이 텁텁해졌다. 소주는 무색과 달리 냄새마저 취기를 느끼게 했다. 취기가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막연하게 머리가 아파오는 냄새였고 그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숙취라 생각했다.
대학교 다니는 큰언니가 온갖 폼을 잡으며 가져온 와인, 아마 만원 미만의 달콤한 와인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마개를 따는 순간부터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큰 선심 쓴다는 듯 큰언니가 밥그릇 덮개에 따라준 붉은빛의 와인은 색깔과 냄새와 달리 쓰기만 했다.
백일주, 팔십일 주, 삼십일 주, 십팔 일주 이름도 많았다. 사실 고3들에겐 어느 날인들 특별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떤 땐 나는 그냥 재수를 해야겠다, 어떤 날엔 같이 강에 가자, 어떤 날엔 미팅을 할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설레발을 치기도 하던 날들.
슈퍼를 하는 친구가 빼내 온 맥주 네 병과 우리들이 주섬주섬 사온 젤리와 새우깡이 다였다.
여기저기를 어슬렁 거리다가 동네 놀이터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술을 마셔본 척했지만, 맥주캔을 따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보리 냄새와 알코올 냄새, 그리고 우엑, 정말 묘한 맛이었다. 그렇지만 허세를 버릴 순 없었다.
“아, 역시 맥주는 oo이지.” 이러면서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타임머신을 경험했다.
눈을 떠 보니, 우리 집 내 방의 익숙한 꽃무늬 이불 밑이었다.
죽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방을 나섰지만, 익숙한 일요일 아침의 풍경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언니들은 거실에 널브러져 아침 프로를 보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란 생각을 하며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아침은 뜨끈한 콩나물국이었다.
속으로 콩나물국으로 해장하면 되겠다며 천금 같은 손을 들어 올려 수저를 들었다. 콩나물국을 한 국자 뜨는 순간 참았다는 듯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니들과 오빠는 배를 잡고 웃었고, 엄마도 아빠도 웃고 계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체 그들을 쳐다봤다.
그날 밤, 나는 신발 한 짝을 가슴에 품고 들어왔단다. 언니가 뭐냐니까 울면서
“길에서 불쌍한 강아지를 주웠어,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어.” 목 놓아 울면서 신발 한 짝을 곱게 소파 위에 올려놓더란다.
“이름은 해피로 할래, 불쌍하니까 앞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아이고 해피야.. 언니도 슬퍼. 언니는 고3이야. 너는 해피?”
식구들은 다들 황당해하며 나를 봤고,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 입에서 풍기는 새우깡을 품은 맥주 냄새에 사태를 파악했다.
그 후 한동안 나는 해피 엄마로 불렸다. 월요일에 친구들을 만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별일 없이 멀쩡한 얼굴로 집에 돌아갔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내 신발 한 짝이 아무리 찾아도 없어.”
나는 차마 그 친구에게, 네 신발 한 짝이 내게로 와서 해피가 되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