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성장 Feb 09. 2024

 행복한 연휴를 위한 마음 준비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가수 Zion.T의 양화대교 노래가사 일부이다.  
택시 운전기사를 하시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시던 아버지의 길을 어느덧 내가 걷고 있다는 담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말한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을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어서 이 노래가 더 유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이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 퓨 리서치센터라고 하는 미국 여론 조사기관에서 17개국 성인 1만 9000명에게 던진 질문의 결과의 답변 결과는 꽤 의외였다.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 일본 등의 대부분의 나라는 ‘가족’을 1순위로 꼽았다. 개인주의 적인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도 ‘가족’을 1순위로 꼽은 것이다.


 더 의외인 결과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는 ‘물질적인 풍요’를 삶의 가장 큰 가치로 두었다는 사실이다. 가족은 3위였다. 친구는 리스트에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무엇을 높은 가치로 두느냐에 대한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욕망을 원동력으로 국민이 성실하게 일하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와 ’부‘의 차이일 것이다. 과거에는 물질적인 풍요의 ‘주’ 목적이 가족 구성원의 행복에 있었다면 지금은 근본적인 목적이 될 가족 구성원조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주’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물질에 대한 욕망을 원동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호 이익을 전제로 자유롭게 거래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수요자가 모두 만족하는 거래를 통해 부자도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의 ‘주’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항해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럴린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수준이 넘어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이스털린의 역설‘로도 불린다.

 파괴적 혁신으로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 故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도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에서 부(富)를 위생만족수단으로 분류했다. 즉, 부는 우리의 문제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우리는 부를 더 많이 가져도 더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행복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부를 쌓는데 우리의 한정된 자원인 시간과 건강을 너무 많이 소진하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이지 않다고 조언한다.

 설 연휴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누구는 풍요롭게 살고 누구는 조금 부족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를 비교하며 우쭐하거나 주눅 드는 것은 매우 ‘전략적’이지 않다. 우리가 하루 세끼를 먹고 하루 밤 누울 곳이 있다면 말이다. 우리 가족의 기본적인 위생만족이 해결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감사하자. 가족 구성원의 행복과 건강이‘주’ 임을 생각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

“엄마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좀.. 아프지 말고”

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회비용, 거래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