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부터 시드니까지, 교환학생에서 여행자를 거쳐 워홀러까지
#5. 중동은 처음이라, 카타르 도하 공항에서의 4시간
인천에서 출발하여 10시간 50분의 비행 후, 6시간의 시차와 함께 나는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하였다.
사실 비행기를 타던 그날, 아침부터 체기가 있었던 나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비행기를 탔다. 구토와 미열 증세가 있었고 '이러다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떠서 비행기를 못 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이미 마쳤던 터였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몸도 아프고 운 탓에 엄청나게 지쳐있었던 상태였다. 동남아로의 단거리 비행에 익숙하던 나에게 최악의 컨디션에 대략 11시간이라는 비행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이륙 후 마신 와인 한 잔에 8시간을 자고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비행에 대해 기억하는 건 11시간 중 3시간밖에 없지만, 좋은 항공사는 다르구나를 느꼈다. 승무원분들의 서비스야 말할 것도 없고 좌석 간의 간격도 좁지 않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에 코로나로 인해 옆 좌석에 아무도 타지 않으면 다리를 뻗고 누워서 갈 수 있는 '눕코노미'가 있었다. 나 역시도 운 좋게 눕코노미에 당첨되어 내 자리와 옆의 3자리까지 총 4개의 좌석을 마음대로 누리며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거기에 첫 비행에 주어지는 기내 와이파이 사용 쿠폰까지, 기내식을 제외하고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비행이었다.
내 지난 여행들은 주로 아시아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동은 처음이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라진 공기로 중동에 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는 1월이었는데, 도하 공항의 습하고 더운 공기가 마치 동남아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비행기에 착륙하여 공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여 입고 있던 히트택을 벗어야만 했다. 공항 내부이기 때문에 에어컨이 작동 중이었을 텐데, 실내온도가 이 정도로 습하고 더우면 실외는 얼마나 더울지 궁금할 정도였다. 분명 중동 지역은 사막이 많아서 건조한 날씨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습한 느낌에 놀랍기도 했다. 날씨를 체감하니 코로나로 인해 도하 여행을 못하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타르 도하 공항은 깔끔했고, 엄청나게 넓지는 않았으나 인천공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내가 인천공항에서 본 면세점은 명품이나 화장품 매장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보다 더 다양한 매장들이 있었다. 삼성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금만 판매하는 매장도 있었다. 심지어 그 매장이 그날 내가 본 매장들 중 가장 손님이 많은 매장이었다.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건 공항에 포르셰와 벤츠를 전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직접 타볼 수는 없었고, 전시만 해놓은걸 보니 판매용인 듯했다. 인천 공항에서 봤던 차는 기아였는데 도하 공항에서 보는 차는 포르셰와 벤츠라니, '이게 바로 오일머니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또한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로 있는 파리 생제르망 FC와 관련된 제품들을 파는 매장도 있었다. 파리 생제르망 FC는 분명 프랑스의 구단인데 카타르 공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카타르 왕족의 부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이슬람 여성들을 위한 히잡을 파는 매장과 하마드 공항 굿즈를 파는 매장까지, 뻔하지 않은 매장들이 있어서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4시간을 기다린 후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터미널을 통해 공항 밖으로 버스를 타고 비행기까지 이동했는데, 막상 실외에 나가보니 실내만큼 습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가을과 비슷하게 공기가 선선한 정도였다. 어쩌면 그날이 흐렸기 때문에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였을지도 모르겠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겨울에서 온 나에게 공항은 더웠지만, 카타르도 똑같이 겨울이라는 걸 감안하면 공항은 난방 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6. 부다페스트의 첫인상
카타르에서 부다페스트까지 다시 5시간의 비행을 거쳐 마침내 부다페스트 땅을 밟았다. 비행기에 내려 입국 심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는데,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 중 동양인은 나를 포함해 딱 2명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해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의견이 많았고, 내 영어가 부족했기 때문에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헝가리 입국을 위해 들고 갔던 서류는 단 2개, PCR 음성 결과지와 ELTE 교환학생 입학허가서였다. 입국심사관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할 수 없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나, 그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2개의 캐리어를 이끌고 Welcome to Budapest라는 글귀와 함께 입국장으로 나왔을 때, 여권을 내부에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우선 입국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너무 풀린 탓이 아닐까 싶다. 짐을 찾은 후 캐리어를 열고 정리하는 동안 여권을 옆에 있던 의자에 올려두었는데, 그곳에 그대로 두고 나온 것이다.
만화나 영화처럼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큰일 났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당장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입국 수속을 해주는 카타르 항공 직원에게 갔다. 당시에 내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영어로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급하게 번역기를 켜고 정확하게 어디에 두고 나왔는지를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도 내가 두고 온 장소에 여권이 그대로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외국인에게 여권은 정말 중요하다. 나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여권이 없으면 많은 일들이 꼬이게 된다. 그 중요한 여권을 두고 나온 나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당황스러움도 있었지만, 정작 영어가 필요한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무력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정말 교환학생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다시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바짝 긴장한 채로 숙소에 도착해 짐을 옮겨두고 저녁을 먹기 위해 한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자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는데, 짠맛 외에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언컨대 내가 유럽에서 먹은 한식 중 최악이었다. 심지어 외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찌개가 이렇게 짠데 왜 물을 안 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여기는 헝가리이니까 돈을 주고 물을 사 먹어야 한다. 내가 한국을 떠나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또 다른 순간이었다.
당연히 시차 적응에 실패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버린 나는 새벽 6시부터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7시에는 일출을 보았다. 6시에 공사하는 소리를 듣고 대체 어떤 나라가 새벽 6시부터 공사를 하냐고 투덜거리면서 헝가리에서의 이튿날을 시작했다.
두 번째 날의 나는 누가 봐도 부다페스트를 잘 모르는 외국인의 모습이었다. 가방 위에 패딩을 입고, 휴대폰에는 소매치기 방지 스프링을 달고 사진을 찍은 게 지금 와서 보니 얼마나 어리숙하고 관광객스러운지.
밖을 나가 특별한 것 없이 부다페스트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보이는 건물들이 영화에서만 보던 유럽 스타일의 건물이라는 사실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었다. 노란색 트램도, 고풍스러운 건물과 신전처럼 생긴 박물관도, 트램을 타기 위해 구매했던 트램과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트램까지 무엇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어 모든 것을 다 사진으로 남기기 바빴다. 유럽은 처음인 나에게 소위 말하는 '유럽뽕'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국인 교환학생 언니들과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서 산 장미 젤라또를 들고 성 이슈트반 성당 앞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2월의 부다페스트는 꽤 많이 추웠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입술이 마비되어 어떤 맛의 젤라또를 먹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처음이라 너무 꿈만 같았었다.
저녁을 먹은 후 나와 한 교환학생 언니는 오늘이 기회라며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 위해 부다 사이드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너 계단으로 올라왔을 때 마주한 국회의사당 뷰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예뻤다.
우리나라에서 야경은 보통 고층 건물들로 가득 찬 건물들로부터 오는 야경을 말한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달랐다. 강 건너에는 국회의사당 하나, 단 하나의 건물 밖에 없는데 그 건물이 이 모든 어둠을 밝히는 느낌이었다. 노란색도 아니고 주황색도 아닌 그 중간의 색으로 빛나는 국회의사당과 다뉴브 강에 비쳐 일렁이는 모습, 그 왼쪽에 자리 잡은 보름달까지 너무나도 예쁜 풍경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앞으로 내가 이 도시를 무척이나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