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짙은 산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순간, 국가유산청이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오래된 사찰 건물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숲속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뎌온 이 공간은 이제 다시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평가의 문턱에 서 있다.
바람에 흩날린 나뭇잎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요가 발끝부터 스며든다. 그렇게 다가서다 보면, 왜 이곳이 지금의 관심을 얻게 되었는지 금세 와닿기 시작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경기도 안성 천덕산 중턱에 자리한 청원사 대웅전은 최근 국가유산청이 보물 지정 계획을 밝히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세기 중반 공사 기록이 남아 있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세워졌음이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기둥머리에 끼워 넣은 포작의 형태와 세부 조형 기법을 근거로 조선 전기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웅전은 앞면과 뒷면이 서로 다른 공포 구조를 지닌 독특한 형태다. 전면에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함께 올리는 다포 양식을 사용했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뒤쪽에는 기둥에서 돌출된 출목과 날개처럼 뻗은 익공을 배치하여, 전면과는 또 다른 시대적 특징을 드러내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한 건물 안에서 두 시대의 기법이 공존하는 사례로, 고려 말의 주심포 계열이 조선 시기 익공식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국가유산청은 임진왜란 이전 건물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연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청원사는 안성시 원곡면의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사찰이다. 주변은 산새 울음과 풀벌레 소리 외에는 잡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천덕산이라는 이름은 병자호란 당시 많은 의병들이 이곳에 몸을 숨겨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며, 사찰의 이름은 산자락에 늘 엷은 푸른 안개가 머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절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구전도 남아 있다. 명절 공양을 위해 팥죽을 준비하던 한 스님이 오래 묵은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없어 마을까지 내려가 불씨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절로 돌아왔을 때, 이미 대웅전 안 부처님의 입가에 붉은 죽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는 청원사가 품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짙게 한다.
사찰 주변 공간은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한숨 돌릴 여유를 선사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숲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일상의 소음을 털어낼 수 있으며, 자연의 정적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청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산길을 따라 천덕산 아래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 외에도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7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불상은 지불 형식으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대적 변화를 담은 건축과 조형미가 한곳에 어우러져 있어 문화유산으로서의 무게감을 더한다.
주변 환경은 방문객에게 조용한 휴식을 제공하는데, 이는 청원사가 깊은 산속에 자리한 덕분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기 안성 청원사 대웅전)
절에 도착하면 잡음 대신 자연의 소리만이 사방을 채우고, 천덕산의 숲은 온전히 쉼을 받아들이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천천히 사찰을 둘러보다 보면, 왜 이곳의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될 예정인지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오래된 건축 양식이 겹겹이 쌓인 모습, 산사 곳곳에 배어 있는 전설, 그리고 깊은 고요가 어우러져 청원사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청원사가 전하는 역사적 가치와 사찰 특유의 정적은, 오늘도 천덕산 깊은 곳에서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