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MCU를 구할 진짜 진짜 진짜 마지막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마블 영화 예고편 댓글을 열 때마다 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단어를 몇 번을 봤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희망, 스타워즈 영화 제목 같고 멋진데요. 이젠 슬슬 물리는 감도 있죠.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 맞을까요? 마블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속았지, 다 뻥이지롱
네. 아니었고요. 우리는 영화 리뷰 유튜버들의 섬네일에서 "진짜 마지막 희망일까...?", "이번엔 진짜...!" 요런 문구를 당분간 계속 봐야겠습니다.
그럼 혹자는 말하죠. 영화가 망했냐고. 아뇨 그건 아닙니다. 다수의 관객들이 원했던 영화가 아니었을 뿐이죠. 지금 이 영화에 대한 평 때문에 커뮤니티가 들썩들썩합니다. 여러분은 어땠나요? 재미있었나요, 재미없었나요? 같이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출처: 개구리 중사 케로로
아는 만큼 보인다
놀랍게도 저는 <로건>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봐야 하는 단 하나의 영화가 있다면 그건 바로 <로건> 일 겁니다. 이 영화 감정선의 대부분은 <로건>에서 기인합니다.
근데 이걸 안 봤다고? 그런 네가 뭔데 이 영화에 대해 떠들어?
저는 마블 영화를 좋아하고 열심히 챙겨보지만 모든 컨텐츠를 챙겨볼 정도로 열렬한 팬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지는 않았어도 알고 있는 게 적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을 하도 많이 해서일까요? 어쨌든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얼마나 아는가"인 것 같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죠. 저는 체감상 50%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감정의 50% 정도를 즐긴 것 같습니다. 맥락과 요소는 알겠으나 서사의 진한 감칠맛까진 느끼진 못했습니다. 때문에 꽤 객관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오프닝
시작부터 데드풀이 울버린의 묘를 팝니다. 고인모독은 굉장히 불경스러운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데드풀스럽습니다. 폭스에서 마블로 넘어오면서 약해지진 않았을까, 순해지진 않았을까 가슴 졸였던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뒤집었습니다. 심지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거기에 이어진 울버린의 뼈를 활용한 학살 액션까지 너무나 데드풀스럽습니다. 여전한 똘끼를 증명했죠.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의 똘끼 고점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잘 만든 오프닝이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어른의 사정
데드풀의 가장 큰 매력은 소위 '제4의 벽'이라고 말하는 작품과 현실 사이의 벽을 마구 드나든다는 점입니다. 이런 캐릭터성 덕에 여러 어른들의 사정을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죠. 폭스의 인수, 멀티버스 이후 MCU의 쇠락, 케빈 파이기 등등 데드풀의 걸쭉한 입담 아래에선 모두 농담의 소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단 데드풀만의 매력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엑스맨 유니버스를 MCU에 편입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주요 인물이 죽으면 그 시간선이 붕괴 된다는 설정은 현실의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사실을 설정화시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마블은 엑스맨 유니버스 판권 획득 이후 새롭게 리부트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의 유니버스가 붕괴되는 순간이었죠. 당연합니다 로건도 이젠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데드풀이 막습니다. 이미 끝난 세계관을 지켰습니다. 현실의 세계가 중요하듯 캐릭터의 세계도 소중하니까요. 어른의 사정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묘한 뭉클함을 자아냅니다. 오직 데드풀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캡틴 아메리카
극장에서 자지러진 장면이었습니다. 캡틴인 줄 알았는데 휴먼 토치였습니다. 마치 중고나라 사기 같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캐스팅 때만 해도 크리스 에반스는 우리에게 휴먼 토치가 더 익숙했습니다. 으린것들이 뭘 알기나 해? 근데 나 <판타스틱 4> 안봄. 엌ㅋㅋㅋ
출처: 네이버 영화
슈퍼맨
이건 그냥 놀랐습니다. 대체 왜 나온 거지....?
출처: 헨리카빌 인스타그램
초대받지 못한 손님
이 외에도 여러 카메오들이 대거 출현합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팬이라면 축제와도 같은 128분이었을 겁니다. 반면에 이건 슈퍼히어로 장르에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파티의 구석으로 점점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스무 살, 처음으로 대학교에 왔습니다. 서로 처음 본 청춘남녀끼리 인사를 나누고, 친해지고,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누는 학우로 성장해 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웬걸, 이미 지들끼리 서로 다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싸는 몰랐겠지만 인싸들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걸 하죠. OT를 안 갔으니 우정이고 나발이고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복학생인지 신입생인지도 모를 한낱 아저씨에 불과할 뿐입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건 화장실 몇 번째 칸에서 밥을 먹어야 소리가 잘 안 날까 하는 고민뿐입니다. 그런 영화입니다.
추억의 엘렉트라도 나오고, 루머만 남긴 채 사라진 채닝 테이텀의 갬빗,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X-23, 그리고 와! 블레이드! 이러고 있으니 라이트 팬들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게 뭔데 씹덕아
정신 차리십쇼 여러분. 마블 영화 많이 안다고 여러분이 위의 사례에서 말한 인싸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방구석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동안 인싸들은 "헤헤 영화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당. 밥이나 먹으러 갈까 자기야?" 하면서 팔짱 끼고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적어도 지금 저처럼 이렇게 뻘소리나 해대고 있지 않을 테니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플롯
진입장벽과 더불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플롯이 정신 사납고 산만한 데다가 지루합니다.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은 데드풀 군단 장면이었습니다. 뭔가 뭔가한 장면을 만들고 싶었던 거 같은데. 영화의 하이라이트 액션신이 여기인 것 같은데 뭔가 심심하죠.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데드풀 군단은 대체 왜 나온 걸까요. <로키>에 잠깐 나왔던, 규모도 훨씬 덜 했던 로키 군단이 더 강렬합니다. 휴 잭맨 형님이 드디어 올드 유니폼 가면까지 썼는데 이 정도 카타르시스 밖에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올드보이가 왜 추앙받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이 장면을 보십쇼. 11년 전 영화인데 아직까지 오마주가 나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데드풀은 외부와 내부의 의도를 동시에 쥐고 달려야 했습니다. 이제 끝나버린 올드 엑스맨 유니버스와 새로운 MCU 유니버스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곁엔 울버린이 함께했고요. 시리즈의 대들보를 데리고도 이 정도 이야기 밖에 보여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볼게요.
출처: 네이버 영화
로건
로건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그는 불사의 육체를 가졌지만 그렇기에 남들보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를 더 두려워하는 여린 사람입니다. 알콜에 의존하는 것도, 폭력적이고 난폭한 성향을 가진 것도 모두 실은 누구보다도 가냘픈 그의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기제로 반증됩니다. 그래서 그는 상처받기 싫어 타인을 상처 입힙니다. 비뚤어진 다정함. 그것이 울버린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그리고 이걸 극복하는 것이 수많은 엑스맨 시리즈 내내 그에게 짊어진 숙명이었습니다. 싸우고, 실수하고, 부딪히고, 실망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힐링팩터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족을 통해 치료합니다. 이것이 로건의 이야기였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이 영화 또한 약간의 변주일 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너무 아쉽습니다. 최악의 울버린이라는 타이틀.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악의 울버린이라 말했지만 저는 뭐가 최악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기껏 한다는 트롤짓이 겨우 술 먹는 거? 이게 끝이야? 계속 난 최악이다, 최악이다 떠들지만 뭐가 최악인지 모르겠습니다. 기껏 데드풀 영화까지 나왔는데 더 망가졌다면 어땠을까요. 더 망나니처럼, 아슬아슬 예측불허하게 말입니다. 기존 울버린의 단점이 극도로 부각된 진짜 최악의 울버린이 무엇인지 보여줬어야죠. 그리고 그 끝엔 우리가 알던 울버린으로 각성하는 거죠. 결국 최악의 로건도 로건이다라는 걸 보여주며 끝냈으면 어땠을까요? 이 영화는 마지막만 그렇게 했을 뿐 중간 과정은 심심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데드풀스럽다
그래서 이 영화는 팬무비 같습니다. 팬이 만든 영화. 오마주와 헌사를 잔뜩 떡칠하고 보고 싶었던 장면, 기대했던 장면을 두서없이 그대로 구현해 만든 영화. 영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으로 보입니다. "망해가는 마블? 마지막 희망? 응 X까~ 내 맘대로 할 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비싼 농담입니다.
그렇기에 무척 데드풀스럽습니다. 대충 망쳐놓은 거에다가 이 수식어를 붙여 포장하는 게 아닙니다. 개그계에서 흔히 말하는 '꺾기'. 예상치 못한 구간에서 지 꼴리는 데로 하기. 이게 데드풀스럽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무거운 운명은 팬들이 갖다 뒤집어 씌운 거지 마땅히 감내해야 할 무게가 아니었거든요. 이 영화 제목은 '어벤저스'가 아니라 '데드풀'입니다. 여전히 꼴리는 데로 했을 뿐인 거예요.
출처: 네이버 영화
멀티버스에 대하여
엔드게임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주요 테마는 추억과 회상이었습니다. 멀티버스라는 코믹스의 설정을 차용해 MCU라는 거대한 흐름, 그리고 그 이전의 많은 사람들의 추억들을 소환해 기뻐하고 환호했습니다.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커튼콜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비단 마블뿐만 아니라 DC유니버스나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역사를 가지고 있던 프랜차이즈의 요즘 화두는 '레트로'입니다.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트렌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입니다. 지금은 레트로가 시대의 흐름입니다. 멀티버스는 그걸 이용하기에 아주 훌륭한 수단이었고요. 실로 즐거운 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슬슬 이 풀롯이 익숙해지고 점점 물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미래를 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박수도 다 쳤으니 이제 알려줘야죠.
그래서 앞으로 어쩔 건데?
마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가 멋진 2루타를 날렸고 <로키>의 번트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자들이 족족 아웃당하는 와중에 이번 영화가 등장했죠. 아쉽게 희생 플라이 정도로 그쳤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로키>에서 나온 TVA의 설정은 현재 아슬아슬합니다. 더 좋게 쓰일 수도 있고,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로키>는 2루에서 다음 타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9회 말 2 아웃. 과연 마블의 4번 타자는 누가 될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마무리
기대는 되지만 우리 역시 너무 이것에 혈안에 되진 말아야겠죠. 과분한 기대는 큰 실망만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진짜 4번 타자가 등장했을 때 비로소 박수를 쳐주면 되는 겁니다.
<데드풀과 울버린> 상상과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마음껏 웃고 엔딩크레딧에선 뭉클한 감정을 느끼며 기분 좋게 극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힘이 바짝 들어간 팬들의 어깨를 살살 풀어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