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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필

2025 콜드플레이 내한 콘서트 후기

by 소려











고등학교 시절, 버킷리스트를 썼던 기억이 있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보고 감명을 받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버킷리스트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다지 많이 적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 강아지와 커플룩 입고 산책 나가기, 언젠가 책 출판하기, 등 현실에 치여 상상력이 많이 움츠러든 고등학생 시절의 필자는 아마 네 개 정도의 과제 밖에 적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론 버킷리스트를 마저 채우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충동적인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적은 과제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바로 ‘콜드플레이 콘서트 가기’였다.


콜드플레이를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최초의 기억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Viva la vida’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마음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달까. 그 고양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노래와 만났고, 더 나아가 이 노래를 만든 밴드와 만났다. 나는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상을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너 뮤직 코리아에서 올린 ‘Viva la vida’의 상파울루 공연 영상. 음원으로 들었을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에너지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영상에 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간 저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이다.


얼마 안 가 나는 머리를 탁 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2017년에 내한을 왔던 것이었다. 현대카드에서 주관하는 슈퍼콘서트의 게스트로 콜드플레이가 이미 찾아왔었다.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만 일찍 했더라면 나도 갈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리곤 꼭 다음 내한 때는 가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한 해씩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나는 성인이 되어 바쁘게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내한을 온다는 이야기는 그 이후로 감감무소식이었고, 나는 언젠가 해외에 나가서라도 공연을 보고 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작년, 드디어 콜드플레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떨리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PC방에 가서 티켓팅을 하여 스탠딩석을 예매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콘서트 날만을 꼬박 기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첫 콘서트 날, 필자는 미리 예매해 둔 셔틀버스를 타고 고양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콜드플레이 노래를 들으며 예습하고 있었다. 살면서 콜드플레이 좋아한다는 사람을 몇 보지 못했는데,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한 밴드를 좋아하다니.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콘서트가 처음이라 몰랐는데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르고 달래어 집어넣어 놨던 내 허리 디스크가 성을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에 들어간 석가모니의 심정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들어가니 초대 가수인 트와이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명예 원스였기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사실 부끄러워서 속으로만 흥얼거렸다. 사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이 감동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최고다 트와이스!


Higher power


항간에서는 7집 투어 시절 오프닝 곡이었던 <A head full of dreams>를 최고로 꼽는다.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Higher power>를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오프닝 곡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나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졌다. 가슴을 울리는 신디사이저 음과 함께 폭발하는 오색빛의 꽃가루. 그토록 수없이 들었던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스타디움 안을 황홀하게 가득 채웠다. 비로소 꿈으로만 그리던 순간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날 이후로 <Higher power>의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Adventure of life time


이 노래는 특별한 무대 연출이 하나 있다. 바로 커다란 풍선이 객석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관객들이 방방 뛰면 뛸수록 형형색색의 풍선이 마법처럼 스타디움 안을 날아다닌다. 필자는 스탠딩 석이었기에 풍선을 직접 만지고 띄우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창 콜드플레이에 빠져 있을 때 가장 최신 앨범이 7집이었기에 이 노래도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서정적인 노래보다 신나는 노래를 더 좋아하기에 뛰어놀기며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Paradise


최애 곡 중 하나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콜드플레이에 열광하게 만든 노래 중 하나였으니까. <Adventure of life time>이 끝나고 <Paradise>의 전주로 이어지는 부분은 가히 전율의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Scientist


신나는 노래만 했으니 잠시 쉬어주는 타임이다. 쉬는 타임치곤 말이 필요 없는 훌륭한 명곡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하이라이트 소절 말고는 사람들이 잘 따라 부르지 않아 약간 무안했다. 나 혼자 목청이 터져라 따라 부르기엔 그 정도로 수치 세포가 퇴화되어있지 않아서 소심하게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Viva la vida


말이 필요 없다. 이 공연장에 온 사람 중 이 노래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감히 예상한다. 그만큼 콜드플레이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노래이다. 나 역시 최애곡은 바뀌어도 가슴속 1등은 항상 <Viva la vida>였기에 너무나 황홀한 순간이었다. 콜드플레이의 콘서트에 가는 순간을 그릴 때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시작하고, 너무 벅차서 눈물이 날 줄 알았다. 근데 오히려 함박웃음만 지어졌다. 벅찬 감동을 상회할 만큼 그저 행복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후렴 부분 떼창 때는 살짝 울컥하긴 했다. 그래도 울진 않았다. 어른이니까.

정말 조금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면 자이로 밴드의 불빛 연출이 내 생각과는 달랐다는 점이었다. 위에서 말한 예전 해외 투어 때는 후반 떼창 때, 공연장 조명이 어두워지고 자이로 밴드에 불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그냥 공연장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내가 너무 순간에 취해서 기억을 잘못했나 싶어 두 번째 갔을 때 집중해서 지켜봤는데, 역시 두 번째 갔을 때도 너무 흥분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량주를 먹지 않고서야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잘 없는데 두 번이나 필름이 끊겼다. 이게 음악의 힘인가?


Hymm for the weekend


이 노래도 비교적 덜 좋아하는 곡이다. 묘하게 발리우드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콜드플레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였는데 역시 콘서트에서 들으니 달랐다. 불도 나오고, 꽃가루도 날리고 떼창도 하니 굉장히 신났다. 어색했던 친구와 술자리에서 친해진 기분이다.


up&up


‘song book’이라는 코너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관객이 들고 온 현수막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주다가 한 명을 골라 무대 위로 올리고 랜덤한 노래를 하나 불러주는 느낌인 것 같았다. 첫 콘서트 때는 너무나 감사하게 <up&up>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곡 역시 너무나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 셋리스트에 빠져서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크리스 마틴의 선택을 받아 무대 위로 올라간 형광 조끼를 입은 관객도 노래 중간중간 따라 부르는 게 보기 좋았다. 무대 위로 초청받은 분이 정말 부러웠다.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더라. 살다 살다 남자랑 악수하는 게 이렇게 부러웠던 적이 있나 싶다. 현장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아주 화목하고 따뜻했다. 콘서트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아티스트와 함께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수학여행 마지막 날 밤처럼.



Charlie brown


<Viva la vida>가 마음속 1위라면 이 노래는 가장 오랜 기간 내 최애곡 중 하나였다.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어딘가 멀리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 노래는 음원도 좋지만 라이브 버전이 특히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이브 버전 음원을 가장 좋아한다. 기타 리프가 스타디움 안을 가득 채우고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가히 환상적이다. 콘서트장에서도 방방 뛰며 따라 불렀다. 덜 유명한 노래라 관객석 반응이 살짝 아쉬웠지만 이때부턴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즐겁게 뛰어놀았다.


Yellow


3, 2, 1,


전주가 울려 퍼지고 모든 자이로 밴드에 노란 불이 들어왔다. 까만 하늘 아래 스타디움이 노랗게 물들었다. 아직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크리스가 저 멀리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부르라고 하면서 따라 부른 마지막 떼창의 순간, 나는 별들이 무수하게 늘어져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작년에 하늘로 떠난 우리 집 똥강아지를 떠올렸다. 저 반짝이는 별 중에 네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손을 허공에 허덕여 보았다. 하늘의 별들은 모두 노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All my love


가장 최근 앨범에 수록된 노래이다. 이미 이때쯤은 황홀경에 취해 좋아하던 노래이던 덜 좋아하던 노래이던 상관없이 따라 부르며 순간을 만끽했다.


Human heart


쉬어가는 느낌으로 넣은 곡인 줄 알았는데 이 곡이 나올 때의 연출도 훌륭했다. 스타디움 전체가 암전 되고 인형극이 시작된다. 한줄기 스포트라이트만이 인형극을 비추는데 몰입도도 좋았고 고양된 마음을 한번 차분하게 다듬어주는 시간이 되어 참 좋았다.


People of the pride


이 곡도 신나기로는 <Viva la vida>와 <Charlie brown>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콘서트장에서 들으니 더욱 피가 끓었지만 이 노래 역시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관객 반응이 생각보다 심심했다. 물론 생각보다 심심했다는 뜻이지 다들 목석처럼 가만히 서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떼창은 아니어도 추임새를 넣어가며 다들 신나게 무대를 즐겼다.


Clocks


최근에 다시 꽂힌 노래 중 하나였다. 가사도 너무 좋고 특히 전주가 극락이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모두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아 몸이 승화하는 기분이 든다.


We pray


선호하지 않는 걸 넘어 싫어하는 곡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콘서트 셋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어 아쉬웠다. 하지만 이게 콘서트 매직인지 현장에서 들으니 또 달랐다. 엘리아나의 짱짱한 보컬을 직접 들으니 슴슴한 노래에 비로소 짜릿한 조미료가 추가되는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트와이스의 특별 피처링까지. 아주 포만감 있는 무대였다.


Something just like this


이 노래 역시 말이 필요 없는 명곡이다. 후반부엔 EDM으로 믹스되어 나오는데 외계인 탈과 함께 소소한 재미였다. 공연장 가드를 한 명 무대로 올려 탈을 씌우고 춤을 추게 했는데 신들린 듯이 잘 추셔서 깜짝 놀랐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무대 연출 중 하나였지만 이런 귀여운 연출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y universe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아티스트와 콜라보한 노래를 한국에서 불러주다니. 첫 콘서트 때 내심 방탄이 게스트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아무도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두 번째로 간 마지막 콘서트 때는 토요일 공연에 이어 진이 깜짝 게스트로 재등장했다. 풀코스로 무대를 즐기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Sky full of stars


히트곡의 향연이다. 이 곡은 엄청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 곡이었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 곡을 꼽고 싶다. 첫 하이라이트 소절에 진입하려는 순간 음악이 꺼지며 달아오른 흥이 한 번에 가라앉았다. 지금 이 순간 만은 스타디움 안에 있는 우리만의 순간으로 간직하자는 말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휴대폰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제야 노래의 전주가 제대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만큼 벅차고 황홀한 순간이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똑같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모두가 같은 뜻으로 같은 아티스트를 사랑하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것은 단순한 즐거움 이상으로 내 안에 아주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죽기 전까지 이 순간만은 절대 잊지 못할 거라는 확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Sunrise


전율의 순간이 파도처럼 몸을 휩쓸고 지나가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잔잔하게 몸을 덥혀주었다. 개인적으로 8집을 아주 좋아하는데 유일하게 포함된 8집 곡이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Sparks


셋리스트에 포함되어 있길래 처음 들어본 노래였다. 하지만 어두운 스타디움 아래 부드럽게 영혼을 긁어주는 듯한 기타 소리가 참 아름다웠다. 알지 못했던 숨은 명곡을 하나 얻어간다.


Fix you


사랑과 치유의 노래로서 <Fix you>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자연스레 각자의 아픔과 슬픔이 투영되고 만다. 그것을 무수히 많은 관중들이 함께 할 때 그 음악에 담기는 치유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해지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Good feelings


10집에서 존재감 없는 곡이었지만 아까도 말했듯 이쯤 되면 그런 건 신경 쓸 겨를 없이 이 순간에 취해있었다. 엘리아나의 탄탄한 보컬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Feelslikeimfallinginlove


’ 문고글‘이라는 것을 공연 전에 나누어 줬다. 지시에 따라 고글을 쓰니 자이로 밴드, 그리고 조명에 무수히 많은 무지갯빛 하트가 생겨났다. 이것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무대 연출이었기에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노래가 끝나가고 폭죽이 터지자 폭죽 하나하나의 끝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펑펑 터질 때마다 작은 하트로 분열되며 사라졌다. 휴대폰을 꺼내 찍을까 하다가 이내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순간을 눈에 담았다.

황홀했던 2시간이 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들으며 자라왔던 많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죽기 전엔 한번 꼭 와보고 싶다고 다짐할 정도로 꿈에 그리던 시간이 조금씩 흩어져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 날의 기억은 내 안에 새로운 감정과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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