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은 삶의 답을 찾았나요?

<애스터로이드 시티> 리뷰

by 소려




연극

최근, 아니, 지금까지 나온 웨스 앤더슨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여백이 많은 영화였습니다. 단순히 '잡지'라는 매체를 영화로 그대로 옮긴 <프렌치 디스패치>와 다르게 이 영화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연출의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전작과 비슷한 전개 양상을 보여줌에도 많은 분들이 난해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흥미로웠다'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군요.



연기

배우들의 연기는 이견의 여지없이 훌륭했습니다. 화려한 출연진을 뽐내기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배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연기를 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과잉된 감정을 절제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제이슨 슈워츠먼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이슨 슈워츠먼의 눈빛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혼자만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못지않은 스칼렛 요한슨의 열연도 찬사 받아 마땅합니다. 이렇게 촉촉하고 섬세한 배우였나요? 확실히 슈퍼 히어로 무비스타로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배우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연극의 제목임과 동시에 배경이 되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소행성이 떨어져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가 명물인 어찌 보면 아주 보잘것없는 소도시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범죄자와 카체이싱을 벌이는 경찰이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원자폭탄 실험이 벌어지는 굉장히 수상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연극의 작가인 콘래드 어프가 구현하고 싶었던 예술적 세계의 극한이라고 보이기도 하죠.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인간의 삶을 투영한 연극입니다. 인간사 그 자체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황량하지만 어느 정도 마을로서의 구색은 갖춘 작은 도시. 그 안에서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정신 나간 사건들. 이것은 마치 웨스 앤더슨 본인의 내면을 투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화적이면서 기묘한 잔혹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테이스트의 세계입니다.


연극이 곧 삶을 의미한다.



저는 이 지점에서 소행성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외계인과 소행성

웨스 앤더슨은 절제된 특유의 카메라 워크로도 유명하죠. 그중에서도 팬(가로)과 틸트(세로)만을 극단적으로 고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틸트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광활한 사막 지대이기에 세로 시각선을 움직이게 할 요소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연출적인 의도라고 보이고 그 의도에 대한 해답은 외계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선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수평적인 구도를 뚫고 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시각적인 충격을 동반한 우주선. 즉, 외계인의 등장에는 작품 전체를 꿰뚫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은 행사 중에 나타나 소행성을 슬쩍 가져가곤 일주일 뒤에 다시 슬쩍 돌려주고 사라졌습니다. 돌려준 소행성을 보고 장군은 이런 말을 합니다.


품목을 분류해 놨군.


소행성 뒷면에는 외계어로 쓰인 이상한 문자가 쓰여있었죠. 품목을 분류했다? 그 소행성의 품목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주에서 내려와 우주의 존재에게 명명된 이 소행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외계인의 존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극의 삭제된 장면에는 오기가 꿈속에서 죽은 아내와 대화를 나눈 장면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내는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죠. 외계인은 우주에서 온 존재. 우주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꿈과 이상입니다. 오기는 꿈에서 아내를 만났고 이 작은 도시에 천재소년, 소녀들이 모인 이유도 저 우주라는 공통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볼까요? 그럼 꿈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들이 공통으로 그리는 '이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대기권 밖의 세상이 자신의 집 같다고 말하던 두 꼬마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사랑에 빠지죠. 네, 모든 인간이 꿈꾸는 저 하늘 위에는 사랑이라는 우주, 우주라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내 마음속 황량한 평원에 불쑥 찾아와 큰 구멍을 낸 저 소행성 같은 당신의 존재. 저 돌덩어리의 품목은 바로 '사랑'이었던 거죠.





흑백의 현실, 컬러의 연극

저는 이 영화의 흑백 장면들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감독은 의도적으로 현실 장면을 연극처럼 연출했을 겁니다. 그 근거로는 영화가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의 제작 과정을 재현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시작점이 있을 것이고, 좁은 화면비, 연극에서 많이 쓰이는 극적인 조명 연출, 컬러를 완벽하게 날려버린 흑백의 색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연극 장면은 아주 생생하게 진짜 현실처럼 느껴지게 연출됐습니다.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 활용,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가까이서 조명한다거나 탁 트인 광각 화면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대비를 둔 이유는 바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죠. 덕분에 관객들의 입장에서 흑백의 감정선은 다소 무디게, 컬러의 감정선은 굉장히 섬세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은 두 가지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존스 홀(오기 스틴백)과 콘래드 어프(작가)의 관계. 메르세데스 포드(밋지 캠밸)와 슈버트 그린(연출가)의 관계입니다.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 부여됐지만 그들이 서로 예사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죠. 컬러의 인물과 흑백의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작품 외적 인물과 내적 인물 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대비야말로 영화의 핵심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자동차가 고장 난 세 번째 이유

핵심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먼저 영화 초반 오기의 차에서 떨어져 나온 정체불명의 부품, 자동차가 고장 난 세 번째 이유에 대해서입니다. 자동차에서 불쑥 튀어나와 혼자 스파크를 내뿜는 이 문제의 부품은 영화 후반 외계인이 소행성을 다시 갖다 놓고 난장판이 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아주 뜬금없이 말이죠. 오기는 그걸 보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알 수 없어. 이 연극이 뭘 말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오기는 연극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벗어나, 분장한 외계인의 곁을 지나며, 문을 열고 슈버트 그린의 방을 찾아갑니다. 동선은 대단히 간단하죠. 왼쪽에서 오른쪽. 오기는 슈버트에게 묻습니다.


모든 게 알 수가 없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조차 알 수가 없다고요. 우드로의 말처럼 적어도 저 우주 속에는 답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이에 슈버트 그린은 이렇게 답합니다.


아주 잘하고 있어. 네가 오기가 된 게 아니라, 오기가 네가 된 것 같아.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슈버트는 말합니다.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오기는 바람을 쐬러 더 오른쪽, 수평 구도의 끝으로 나갑니다. 영화 시작할 때 카메라의 움직임 어땠나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며 도시의 모습을 담습니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을 그 공간감에 가두죠. 그렇기에 오기가 연극을 빠져나와 계속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동선은 외계인의 등장과 다른 의미로 시각적인 충격을 동반합니다. 갇혀있던 연극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는 의미인 겁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삶이라는 양식에서 초월했음에도 알 수 없었던 그의 세 번째 문제, 스파크를 뿜어대는 부품을 마주한 순간이었던 거죠.





오기의 사진

영화에서 오기에게 찍힌 네 개의 피사체가 있습니다. 원자폭탄, 밋지 캠밸, 외계인, 그리고 죽은 아내입니다. 아까 아내는 죽어서 우주로 갔다. 즉, 외계인으로 은유되었다고 말씀드렸죠? 미지의 영역에서 온 사랑의 존재니까요. 그리고 밋지 캠밸은 죽은 아내와 유사한 점을 많이 보입니다. 같은 존재라는 뜻이죠. 그럼 원자폭탄은 뭐냐고요? 제가 아까 소행성이 뭐라고 말씀드렸죠? 황량한 평원을 뒤흔든 폭발이라는 점에서 둘은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셋과도 일치하죠. 쉽게 말해 오기의 사진에 찍히는 건 모두 사랑입니다. 평생 전쟁터에서 허락 없이 남의 아픔을 담아내던 이 불쌍한 남자의 구원은 결국 사진이었습니다.





다시, 연극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나레이터가 현실을 재구성하여 설명하는 TV 속 장면이 있고,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속에 존재하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연극으로 통합니다. 액자식 구성이죠. 전작들처럼 감독은 저 동화 같은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을 밀어 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나레이터의 대사로 이 모든 건 부정당합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이 연극이 허구임을 스스로가 인정했습니다. 몰입하지 말라며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소행성과 외계인은? 사랑의 도시는? 도대체 이 감독은 무슨 생각인 걸까요? 이 영화가 말하려는 건 대체 뭘까요?

영화는 과잉된 감정을 절제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보입니다. 존스 홀(오기 스틴백)이 오기가 토스터기에 손을 댄 이유를 해석하자 작가인 콘래드는 납득하면서도 굳이 그걸 대사로 넣을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작중 아내와의 회상씬도 러닝타임 탓에 잘려버리고 맙니다. 저는 감독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구원 없는 예술에서, 답이 없는 인생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소실된 감정의 안식처를 우리는 더 강한 감정의 힘에서 찾곤 합니다. 감독은 그걸 모두 제거했고요. 결국 모든 게 모호합니다. 웨스 앤더슨, 이 앙큼한 감독은 무엇하나 우리에게 또렷하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황량한 사막의 벌판 속에 우리를 던져놓고 잔인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연극에서, 이 영화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대체 어떤 답을 찾아야만 할까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죽은 아내의 사진

다시 아까로 돌아가겠습니다. 오기는 구도에 갇힌 연극의 세계 속을 초월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바람을 쐬러 더 오른쪽, 이 수평 구도의 끝으로 나갑니다. 맞은편에 마주한 건 죽은 아내를 연기한 배우입니다. 이젠 그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지 "죽은 배우를 연기한 아내군요"라고 말하죠. 그 배우는 원래라면 극의 일부여야 했을 꿈속 아내와의 재회 장면을 재현합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새로운 사랑을 찾으라고, 하지만 오기는 고개를 내젓습니다. 뜻대로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노력이라도 해 봐.


라고 말이죠. 그리곤 아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에 오기는


내 사진은 원래 잘 나와.


라고 답하네요. 눈치채셨나요? 컬러로 표현되는 연극의 장면에서 오직 흑백인 요소가 딱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오기의 사진이죠. 허구의 세계에 스며든 현실의 색깔. 예술의 모순 속에서 홀로 반짝이는 빛바랜 사진 한 장. 어쩌면 오기는 예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중간에 콘래드와 존스 홀(오기 스틴백)은 키스를 합니다. 그 이후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결국 순회공연 중에 작가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연극의 의미를 모르겠다며 호소하던 그의 외침 속에는 작가의 죽음이라는 절절한 심상이 깔려있었다고 짐작이 가능합니다. 작가는 죽었지만 작품은 남았습니다. 그걸 연기해야 하는 배우도 역시 남았고요. 저는 콘래드에게서 웨스 앤더슨을 보았습니다. 세세한 인물의 감정 묘사를 들어냈던 그처럼 웨스 앤더슨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외칩니다.


잠에 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잠은 꿈을 꾸게 하고 꿈은 우리에게 작은 사진 한 장을 건넵니다. 내기하는 소년이 그토록 갈망했던 '존재의 확인', 우드로가 말한 우주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 빙글빙글 둘러 말하던 이 얄미운 사람은 영화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그 답을 숨겨놓았습니다. 결국, 예술 속에 있었네요.




현실의 구석, 예술의 변두리

극중극과 현실이 대비되는 영화는 대개, 극에서 깨우친 진리를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조망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입니다. 오기는 결국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떠납니다. 죽은 아내의 유골은 묻어둔 채로 말이죠. 화상 입은 손에 쥐여있는 건 새로운 사랑의 여지였습니다. 존스 홀은 이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갑니다. 뭐가 현실이고 연극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쫓아 떠납니다. 다만, 그 방향이 예술로 향해있을 뿐인 거죠. 언젠가 깨어나야 하는 순간은 분명 올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일단 새로운 잠을 청할 모양인가 봅니다. 노란 수평선 위로 우뚝 솟은 바위산이 우리를 부릅니다. 청아한 하늘이 오늘따라 더 푸르군요.


아주 소중한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