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 작가에게 배운 것
언젠가 아빠의 서재에서 책하나를 발견했다.
어렸을때 우리집은 방하나가 아빠의 사무실 방으로 정말 지금의 회사처럼 사무실 책상과 사무실같은 풍경, A4용지와 한쪽에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
늘 두꺼운 책으로 가득했던 아빠의 책장에서 <상상력사전>이라는 이름의 책을 보고서 나도모르게 손을 뻗었던 기억이 있다.
손에 꽉차는 두께와 <상상력사전>이라는 이름과 달리 책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서 적은 꿈의 내용.
-길가다가 생각난 이상한 상상들.
-먹었던 음식과 공부를 하면서 생겼던 의문들.
-가고싶었던 여행지.
별 내용없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상상력 사전이 책이 된 이유는 저자가 어렸을때부터 꾸준히 기록을 해왔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아직도 그 책이 나에게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정말 저자의 <상상력사전>이라는 책이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일상적인 일로 가득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린 나도 베르나르베르베르는 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걸 알고있었던지라 무의식적으로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과 같은 사람으로 여겨졌나보다.
너무나 대단해보였던 그 작가의 꾸준한 기록을 본 순간, 처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나도 내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고, 책을 써봐야지!"
일기를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당시에는 드라마 광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싶다는 꿈을 꿨다.
내가 보는 드라마는 다 내 현실보다 순한맛인걸?
내가 쓰는 가장 첫 드라마는 힘들었던 어린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보란듯이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써야지.
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해야겠어!
나보다 힘들게 사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고, 나보다 행복하게 사는 누군가에게는 반성할 수 있는 드라마면 좋겠다.
지금도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지만, 당시의 나는 그랬다.
어렸을때 읽은 신데렐라 속의 주인공이 나라고 믿었던 것 같다.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속에서도,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도 결국 왕자를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이나는 신데렐라가 내 인생의 결말이라고 막연한 희망을 꿈꿨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람간의 관계를 배우게 되었다.
언젠가 나에게 남모르는 속얘기를 해준 친구가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내 현실이 너보다 힘든걸?
중학교에 들어가고 이사를 가게되었는데,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처음에 적응을 잘 못했다.
당시에 잘 지내던 친구와 틀어지니 학교생활이 힘들어졌던 것 같다.
그때 힘들어하던 나를 도와주던 또다른 친구와 친해지고, 그 애의 집에 놀러가서 잤던 어느날이었다.
그 친구의 가족을 본건 처음이었는데, 늘 걱정하나 없이 밝게만 지내던 친구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가족을 소개한다는 건 이 친구에게는 큰 용기였음을 그 순간 깨달았던 것 같다.
친구의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이었던 친구의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모습과 어려워진 가계로 힘들었던 친구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굳이 힘든거 티내서 좋을게 있냐고 말하던 친구가 너무 어른스러워 보였던 것 같다.
사람 사는거 뚜껑열어보면 누구나 힘든일 하나쯤은 있는데, 나만 힘들다고 착각하고 살았구나.
그날부턴 드라마작가를 더이상 꿈꾸지 않았던 것 같다.
꿈을 잊고 공부에 매진하던 하루하루,
대학생활을 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이것저것 세상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는 다컷다고 착각하는 어린애일 뿐이었다는걸 예전에 쓴 글을 보고 알았다.
우연히 본 일기장 속, 스터디플래너 속의 내 하루하루.
가끔 격한 감정에 폰을 두드리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나.
사실 성인이 되고, 글쓰기에 재미를 들리는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우연히 올렸던 운동기록이 생각보다 많은 조회수를 내고있었다는걸 깨달아서다.
그때부턴 그냥 다양한 주제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내가 쓰는 일기장이 공책에서, 탭에서, 노트북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글을 올렸다.
요즘 뉴스속에 정치이야기로 가득해서인지 이것저것 찾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유시민 작가의 강연을 보게되었다.
정치를 하려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뭣 모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간 밥벌이도 못하고 살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삶을 위한 물질적인 것들을 남에게 의존하는 삶이란 너무 비참한 삶'이라는 이야기에 그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 같다.
문득 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져 새벽 늦은 시각, 열심히 찾아봤다.
유시민 작가는 매년 책 1권씩을 내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야 먹고 살고, 자식들 교육시키고 할 수 있다고.
유시민 작가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도 매일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글을 쓰고, 정계에 입문해서도 글을 쓰고, 정계에서 은퇴한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쓴다고 한다.
유작가님이 늘 강조하는건 처음부터 글쓰기에 실력이 있었던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글이라는건 꾸준히 써야만 실력으로 갈고 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은퇴하고의 삶을 고민하게 된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난 다음, 은퇴 이후에 할일이 없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반면,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를 꿈꾸며 은퇴 이후의 삶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점점 취미의 중요성을 알게된다.
사실 취미랄것도 없다.
그저 꾸준히 뭔가를 하는 사람들은 언젠간 결과를 낸다는것을 이미 깨달아버린 나는 그 어린날의 그때처럼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기가 끄적이던 한줄기 일상이 책이 될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자기가 했던 생각들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추양받게 될거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공통점은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글을 써왔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저 끄적이는 한줄로, 때로는 누군가에 쓰는 절절한 편지로, 때로는 하루를 되돌아보며 썼던 반성의 회고록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해도, 나도 그 사람들처럼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살고싶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언젠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다.
내가쓰는 글이 인정받지 못해도, 꾸준히 글을 쓰며 그 언젠가 나이가 들었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언젠가 남들이 말하는 '밥벌이'를 못하는 때가 와도 꾸준히 꿈을 꾸었던 '흔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삶'이라는건 어쩌면 꿈을 꾸고 재주를 갈고 닦는 시간일지 모른다.
시간이라는 어쩌면 가장 평등한 기회 앞에서 수없이 많은 꿈을 꾸지만, 그 꿈이 '재주'가 되는 사람들의 차이는 꾸준히 꿈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날의 나에게 베르나르베르베르라는 작가가 알려줬던건, '꿈을 꾸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시간을 돌고 돌아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지금은 어린날의 그때처럼 막장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 나의 꿈은 하루하루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다.
내 하루는 단편의 드라마가 아닌, 매일 매일 출간되는 신작이다.
언젠가 내 삶의 마지막 작품을 쓰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어린 오늘날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 생은 충분히 의미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생이 있기를 꿈꾸며 눈을 감는 마지막 날에도 그날의 작품을 쓰고 싶다.
내 인생의 베스트 셀러 작가는 세상에 단 한사람, 나뿐인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는 한줄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