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추친구들이 모이면 나에 대해서는 약방감초 격으로 반드시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둘 있다.
'박학다식!'
통상 알고 있는 유식, 해박 이런 류의 말은 절대 아니다. 라면 다섯 개, 밥 세 공기. 옅을 '박'에, 많을 '다'를 붙여 무식한 놈이 먹는 건 더럽게 많이 먹는다는 뜻으로 하는 놀림말이다. 청소년기 돌도 소화시킬 한창때에 목구멍에서 밥알이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식탐이 드셌던 나에 대한 각인된 이미지이자, '돌쇠'에 버금가는 대명사로 굳어진 용어다.
복국의 담백한 국물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핥아먹고는 정작 알짜배기 고기는 곤, 애를 빼고는 왕건이로 몽땅 남겼으니 자연히 나의 과거 식탐을 익히 아는 친구들이 득달같이 입을 대기 시작했다.
나이 탓인지 식욕 자체가 아예 없어져버렸다고 빈젓가락만 뒤적거리며 말했다. 누구 하나 곧이곧대로 믿는 기미는 없었다. 마주 앉은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큼지막한 복어고기 두 덩어리를 냉큼 집어갔다. 이 맛있는 거를 안 먹는다? 고 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박학다식, 이중인식자 등등의 그악스럽게 먹어댄 혈기왕성했던 시절 추억의 단어들이 왁자지껄한 웃음꽃과 함께 튀어나왔다.
"이제 그만 먹을 때도 안 됐나! 그동안 올매나 먹어댔노. 먹는 것도 다 총량의 법칙이 있는기라."
앗아간 복어 살점을 게걸스럽게 입 속으로 밀어 넣던 친구 녀석이 그 와중에 꿍얼대며 한마디 거들었다.
"잘 무야(먹어야) 될낀데...나이 묵는 것도 서러븐데."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나는 그마저도 글렀다보다.
홀딱 벗고 고추 달랑거리며 함께 자맥질하던 친구들과의 대화는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늘 같은 시간, 같은 기억 속에서만 머무른다. 골백번도 더 듣고 웃어댔던 추억담은 언제든 새로운 감칠맛이 난다. 푹 삭인 할머니의 된장맛 같은 거다. 머리 희끗한 중늙은이들이 머리 맞대고 앉아 짜석, 마이도 삭았네, 남 말할 때가 아이다 실없는 대화에 갇혀 낄낄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열네댓 살 얄개들이다. 어설펐던 시절, 서툴렀던 어린 날들이 마냥 그리운 나이가 되었음이다. 각자의 세상에서 성실하게 삶의 흔적을 남긴 벗들의 공통분모는 기억을 가둔 시간뿐이다. 계급도, 사회적 지위도 그 어떤 잘잘못도 의미가 없다. 오줌발 하나로 서열이 정리됐던 부랄친구들이 마냥 그리운 이유다.
누군가가 짐 정리하면서 찾았다며 오래 묵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제63회 전국체육대회가 있던 해, 매스게임에 동원됐던 고2의 18세 소년들은 쫄쫄이 같은 퍼런 체육복 차림에도 한껏 뽄새를 부리면서 40년 후에나 발견될 사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 이런 시절도 있었지.
퍼즐 맞추듯 재빠르게 과거가 소환되었다. 각자의 어린 날을 바라보는 벗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사십 년의 세월을 찰나같이 건너뛰어 바라보는 자신. 배불뚝이, 주름살 자글거리는 얼굴에 허옇게 새어버린 머리칼.
넌 그때 어떤 꿈을 꾸었니? 그래, 열심히 잘 살았니? 산다고 욕봤지?
나의 의문은 어이없게도 이 사진은 과연 누가 찍었을까였다. 틀림없이 친구 중의 한 명이 분명한데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도 긴가민가 꼭 찝을수가 없었다. 내 아슴푸레한 추측으로는 스킨스쿠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자꾸만 밟혔다.
부재의 존재감은 심한 홍역보다 집요하게 엉겨 붙는 법이다. 이별은 연습되지도 않는다. 노랫말로도 살아나고, 스치는 바람결 하나에도 존재를 들추긴다. 그래서 이별은 어떤 이유로든 피하는 게 낫다.
오랜 사진 속에는 여섯 명이 환하게 웃고 있지만, 실상은 일곱인 셈이다. 잊히거나, 떠나거나, 죽어버린 그 누군지 모를 친구를 포함해서.
내 불알 친구들은 안녕할까?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