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깨비의 눈물...2

by 김석철





나는 무르팍이 좋지 않다.

골병이 든 거다.

건강에 대해 워낙 무딘 탓도 있지만, 먹고 사느라 몸을 혹사시킨 원인이 가장 크다.

몸뚱이 하나로 버틴 나날, 결국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삐걱대며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팔목과 무릎의 고장은 타일러로서의 고질적인 직업병이다. 아구구 소리와 함께 이 짓도 더 이상 못해 먹겠다는 볼메인 소리를 들으며 돌가루 먼지 속에서 버텨왔다.

몸을 담보로 먹고사는 직업인 노가다 밥을 벌써 몇 년째 먹고 있는지도 가물가물 하다. 이 바닥의 반쯤 고인 물이 되어가니 뼈마디 한 두 군데쯤 탈이 나는 정도는 삶의 훈장쯤으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삼일 벌면 하루치는 의사양반들 먹여 살린다던 선배들의 푸념이 만판 남의 일이 아니다. 몸을 판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무작정 야반도주를 한 후 몸을 숨기기에는 이만한 직종이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전국을 유령처럼 떠돌 수 있으니 도피의 성인 소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몸 사리지 않고 죽을 둥 살 둥 모른 채 부지런히도 달려왔다. 되돌릴 길도 마뜩이 보이지 않았다. 주저앉기에는 억울했고.

가진 거라곤 꼴랑 부랄 두 쪽이 전부였던 몸으로 처자식 건수하면서 이만큼이나 버텨왔으니 뼈다구 한 둘 내어주는 것쯤이야 그다지 아깝지가 않다.


오랜 세월 나의 길동무로 늘 함께했던 6029 봉고 트럭이 어제부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늘 있던 자리에는 퀭하니 허전함만 잔뜩 쟁여놓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길대기는 했지만, 산도깨비 가락에 함께 어깨를 들썩였던 늙은 봉고는 이제 더 이상 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낑낑댈 일이 없어졌다.

렉카차의 꽁무니에 매달려 무기력하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떠나는 마지막 길을 위해 축 늘어져버린 6029를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나를 앉혔던 자리에 늙은 봉고의 이력이 담긴 등록증을 곱게 올려놓고 키 박스에 두 번 다시는 돌리지 못할 키를 꽂아둔 채 조용히 돌아섰다.

또 이별이다.

사람이건 기계건 이별은 늘 어렵다.

나는 골병이 남고, 늙은 봉고는 갈갈이 해체가 되어 조각조각으로 부활하거나 용광로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정해진 길 역시 6029가 지나쳐간 길과 다름이 없을 터이다.

늙은 트럭 6029는 골병이 든 몸값으로 자질구레한 범칙금, 미납된 환경부담금에 세금까지 뒷처리를 깨끗이 하고 떠났다. 완벽한 소멸이다. 나는 이제 잊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 역시 무정한 시간이 감당할 몫이니, 남겨진 자와 떠난 자의 뒤안길은 참으로 냉정한 것이다.


6029는 매연 5등급 판정을 받는 순간 내게서 버려졌다.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인 응급처치는 어리석은 미련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주저앉을 때까지 나 몰라라 마냥 내비둘수는 없었다.

버림받은 6029는 급격히 노화되었다. 그 어떤 연명치료도 받지 못한 채 노골적인 외면과 냉대 속에서 멀쩡했던 속까지 곪기 시작했다. 사망을 드러내고서 기다리는 나와, 각혈까지 하면서도 근근이 버티는 6029의 동상이몽 동거는 오래 전의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죽어있는 삶, 제발 제발 산사람이라도 살 수 있도록 그만 죽어달라고 외친 살고 싶은 자. 그 병든 아버지가 6029의 조수석으로 엉덩이를 비집고 앉아버렸다. 태평소와 꽹과리의 자지러지는 신명에 어깨를 들썩이던 산도깨비의 심술궂은 장난끼가 아버지를 부른 게 틀림없었다.

늘 앉던 내 자리에는 6029의 일생 이력서가, 비가 내려앉던 축축한 조수석에는 방바닥만 두들겨대던 아버지가 앉았다. 그리고 둘은 길동무가 되어서 떠났다. 목을 절개한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산도깨비가 헐레벌떡 아버지의 꽁무니를 쫒았다. 내게 붙여야 할 혹부리 영감의 혹을 깜빡 잊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