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고기는, 억수로 큰 법이다.

by 김석철




내가 아무리 낚시 문외한이지만, 적어도 입질 신호와 물결이 흔드는 찌의 움직임 정도는 구분을 한다. 파랑이 인다거나 바람이 거친 날은 사실 긴가민가 피곤하기는 하다. 그래서 세상 속 편한 원투라고 일컫는 '처박기' 낚시, 그마저 딴청 부려도 상관이 없도록 딸랑이 방울까지 매달고서 낚싯대를 던진다.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가는 봉돌과 낚싯줄이 원했던 지점까지 멀찍이 날아가 안착될 때의 뿌듯함은 웬만한 손맛보다 낫다. 초릿대 끝이 쿡쿡 처박히는 순간의 기대감과, 챠라락 소리를 내지르며 맹렬하게 풀려나가는 은빛 낚싯줄의 포물선이 안겨주는 맛. 거기에 더해 막 건져 올린 파닥이는 생선을 바로 포 뜨서 초장에 꾹 찍어 먹는 재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방파제나 갯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끓여 먹는 라면은 또 어떻고. 온새미로 메가리나 낭태 한 마리 풍덩 빠뜨리고 한소끔 팔팔 끓여 찬바람 피해가면서 들이키는 라면이면 상감마마 수라상이 조금도 부럽지가 않다. 고기를 꼭 낚아야 맛인가. 낚싯대에는 도다리도 걸리고 눈먼 송사리도 걸리고 하릴없는 세월도 걸리는 법이다.


챔질의 순간은 딱딱 맞추지 못할 망정 입질 정도는 아는 나와는 달리, 낚시라고는 낚자도 아예 모르는 창호형은 낚시랑 팔자에도 없던 늦바람이 나버렸다. 뒷걸음질에 얻어걸린 대물의 짜릿한 손맛이 화근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처럼 어거지 걸음을 한 지세포 방파제에서 뜻하지 않게 그 힘 좋다는 삼자 감생이를 걸어버렸으니 단단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어어, 이기 머꼬!

팽팽하게 긴장한 낚싯줄이 윤슬에 부딪힌 은빛의 파편들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활대처럼 휘어져버린 낚싯대를 놓칠세라 온몸으로 부둥켜안은 창호형은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머리 올리는 초보 골퍼가 첫 라운딩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셈이었으니, 미치듯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당연했다. 학꽁치 채비로 멋들어진 자태의 감성동 월척을 낚아 올리다니, 모여든 조사들조차 부러움 반으로 놀라워하며 한 마디씩 부추겼다.

그날의 지독히 운빨이 사나웠던 삼짜 감생이는 쌩초보 창호형의 허파에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말았다.


자칭 어복의 사나이 창호형은 하고많은 조사들을 내비두고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의 별 영양가 없는 나만 들들 볶아댔다. 고수들이야 낚시에 민폐만 끼치는 쌩초보 훼방꾼이 달가울 리가 없으니 동반출조를 해 줄리가 없고,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 결국 나를 점찍은 것이다.

틈만 나면 유투버의 낚시방송에 꽂혀 도낏자루 썩는 줄을 몰랐다. 붕어 찌낚시에서, 애기들 장난 같은 피래미 견지낚시, 플라이낚시, 갯바위 구멍치기, 무늬오징어 훌치기, 후킹 어쩌고 저쩌고 하는 공갈 미끼의 루어낚시 등등 닥치는 대로 섭렵하더니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세포 방파제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선 조사들이 연신 형광등급 학꽁치를 낚아 올리느라 신바람이 났다. 발치 앞에서는 밑밥에 홀린 학꽁치 떼가 요란한 파문을 일으키며 조사들을 광분시켰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지.

꼴에 대상어종은 감성돔이란다.

큼지막한 봉돌을 매달고 갯지렁이를 한 마리 통으로 꿰어 멀찍이 던져두고서 닥지닥지 붙어선 낚시꾼들의 분주한 챔질을 구경했다.

방파제의 유일한 감성돔 조사 창호형을 흘깃 훔쳐보았다. 자칭 어복의 사나이 창호형은 그 와중에 정작 낚싯바늘을 묶을 줄 몰라 손바닥만 한 폰이 알려주는 채비법을 눈이 빠져라 복습하고 있었다.


"왔다! 왔어!"

백만 원이 넘는 거금을 들였다고 자랑질하던 5미터의 1.2호 부시리대가 완벽한 반원을 그리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배꼽 부분에 대의 끝을 지탱하고 허리를 크게 뒤로 젖힌 창호형은 흡사 유명 낚시저널의 표지모델 같았다.

"저거 최소 4짜다! 사고 제대로 쳤네."

경질대의 휨새로 직감을 한 어느 조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일제히 학꽁치 낚시는 뒷전으로 팽개친 채 내가 선 방향으로 몰려들었다.


우사를 당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줬어야 했다. 황급히 뜰채를 펼쳤던 동료가 궁시렁거리며 뒤돌아 설 때, 대물고기가 바위 사이에 대가리를 처박은 게 아니라 그냥 바늘이 밑걸린거라고 이실직고를 못한 내 죄가 컸다. 선수 기 한번 살려주려다 내 눈깔 내가 찌르고 말았으니, 찰거머리처럼 들붙어 지세포 방파제로 가자고 밤낮 성화를 부려대도 도리가 없었다.


형님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기 직전 내 작은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멀리서 지나가던 배가 일으킨 물결이 꽤나 큰 너울로 밀려와 막대찌를 출렁 흔드는 것을. 그 짧은 순간 형의 팔뚝에 시퍼런 핏줄이 불뚝 솟구치면서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는 사실을.

"우와! 졸라 큰갑다. 꿈쩍도 안 한다!"

부러질 듯 크게 휜 릴대는 요지부동으로 버팅기며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불콰한 얼굴의 희색이 만연한 창호형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행님, 아무래도 돌틈에 대가리를 처박은 거 같다. 아까버도 우야겠노, 낚싯줄 끊자."

"아, 이거 백퍼 5자 대물인데...대물."

한동안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람에 맥없이 날려 다니는 바늘 떨어진 낚싯줄만 멍하니 바라보던 창호형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 지구가 두 쪽이 나더라도 나 박창호, 반드시 저 괴물 놈 얼굴 보고야 만다."

큰일이 났다.

지금이라도 밑걸림이었다고 말해줄까?


또 전화가 온다.

박창호 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