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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laus Sep 04. 2022

<탑건: 매버릭>

멋지게 늙는다는 것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피부는 탱탱함을 잃고 대신 주름이 자리 잡는다. 예전에는 한 번만 보아도 기억하던 것이 이제는 아무리 집중해도 자꾸만 잊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날의 패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손안에 쥔 것들을 간신히 붙드는 것에 몰두한다. 참으로 나약해지고, 우매해지며, 기력은 끝없이 쇠퇴한다. 노화는 유기체의 종말에 대한 아주 슬픈 예고인 것이다.


반면에 ‘늙음’을 달리 표현할 좋은 단어가 있다. ‘성숙’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당황하거나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다만 차분한 태도로 주어진 일을 완벽히 처리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 해답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이른바 ‘지혜로운 늙은이’와 같은 이미지는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에게 신체적 쇠퇴에 따른 불안과는 별도로 ‘늙는다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아.’라는 정신적 위안을 선사한다.


36년 만에 나온 후속작인 <탑건: 매버릭>은 86년에 개봉한 <탑건>을 철저히 계승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계승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승하는 태도일 것이다. 특히, <스타워즈>의 최근작에서 나타난 ‘싸가지 없는 태도’와 비교해본다면, 이번 영화가 전작을 얼마나 예의 바르게 대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영역, 그러니까 ‘본능’이라는 다소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요소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자동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신앙심은 다소 올드한 느낌을 내뿜기 쉽다. 사실 <탑건: 매버릭>이 올드한 영화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톰 크루즈도 벌써 60이 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올드함’은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의미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늙음의 이미지가 내보이는 양면성은 올드하다는 것 자체에 대한 평가를 유보시키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이번 영화에서 던지고 있는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매버릭(톰 크루즈)이 나이가 든다면 그는 과연 어떠할까?” 이전 작인 <탑건>에서 그려지는 매버릭은 젊음 그 자체를 상징한다. 저돌적이고, 열정적이며, 신념을 굽히지 않는데, 게다가 실력도 출중하다. ‘Maverick’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이해한다면 딱히 설명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매버릭이 늙는다? 형용모순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매버릭은 여전히 매버릭이다.


영화는 나이 든 매버릭을 보여준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매버릭이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가와사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하지 말라는 짓을 꼭 하며, 결국 다크스타 프로젝트에서 또 사고를 쳐서 쫓겨난다. 자기 멋대로 구는 파일럿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에 매버릭은 이렇게 대꾸한다. “Maybe so, sir. But not today.” 여기까지만 두고 볼 때, 매버릭에게 나이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훈련학교 교관으로 돌아온 매버릭은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기지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역시나 멋있지만, 자기보다 한참 젊은 파일럿과 옛 연인을 바라보는 표정에서 좀 궁상맞은 표정이 드러난다. 게다가 유리창 너머로 루스터(마일스 텔러)가 그의 아버지 구스의 애창곡을 부를 때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매버릭의 표정은 고독해 보이기까지 하다. 영락없는 늙은이의 모습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버릭은 남들과 다르다. 나이가 더 들었다고, 계급이 좀 더 높다고 해서 꼰대 짓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과 같이 웃통을 벗고 해변가에 뛰어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지혜로운 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다지 지혜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제독에게 시비를 거는 듯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루스터를 대하는 매버릭의 행동도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가 지혜로웠다면 당장이라도 루스터에게 가서 지난 과거를 설명할 대화를 청했을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연인의 딸을 피해 창문 밖으로 도망치고, 그러다 결국 들키는 장면에서 매버릭은 철부지로 보인다. 냉정히 말해, 이게 어디 어른의 모습인가? 그러니 그는 여전히 그 짬에도 대령 계급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멋지게 늙는 것은 늙음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멋짐이 중요한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매버릭은 여전히 멋있다. “늙었지만 멋있다.”라는 말이 참임을 증거 하는 사례가 바로 그인 것이다. 이 영화는 ‘여전히 그는 매버릭이다’라는 명제를 적극 강조하는데, 여기서 매버릭의 정체성을 실천적 측면에서 적절하게 그려낸다. 그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본질적 요소는 바로 ‘동물적 본능에 대한 신뢰’이다. 첫날부터 두꺼운 교본을 내다 버리고는 이내 본능을 믿으라는 짧은 가르침을 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말만 하지 않는다. 신념이란 실천 없이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 그가 왜 멋있게 늙었는지가 나타난다. 신념의 내용이 올바른지가 아니라, 신념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매버릭은 보여준다. 그는 임무 성공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이 직접 비행하여 제한 시간 내에 곡예비행에 성공한다. 그 결과, 이전 계획과 달리 이번 임무에 그는 직접 참여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또 한 번 성공한다. 매버릭의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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