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나 Guna Jan 31. 2022

타지에서 홀로 아프다는 것(2)

응급실 에피소드

5일 전에 갔던 응급실을 또 가게 되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응급실에서 처방해준 항생제를 먹고 허리가 찢어지는 고통은 사라졌으나, 명치와 등허리 쪽 통증이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Hausarzt (가정의학과)를 다시 내원했지만, 뚜렷한 통증 개선의 효과는 없었다.


결국, 참다 참다 5일 만에 응급실을 또 가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중환자의 기준이 월등히 높아졌고, 저번보다도 접수대에서 "가정의학과를 먼저 갔니?" "언제 갔지?" 등의 질문을 함으로써, 이 환자가 정말 응급 처치가 필요한지를 까다롭게 보았다. 


응급실과 가정의학과로 동분서주하였지만, 원인모를 통증 때문에 슬슬 큰 병이 아닐까 불안해지던 참이었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지도 4년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고, 늘 소화가 안되고 식욕이 없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육체적인 피로만큼이나 컸다.


다행히 접수대에서 접수 허가가 떨어졌고, 대기실에 또 무한 대기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그래도 지난번보다 사람이 적었고, 이번에는 진료를 좀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기다린 지 30 - 40분이 흘렀을까.

저번처럼 증상에 대한 설명, 채혈 등의 기본적인 검사가 이루어졌고, 대기한 지 2시간 만에 의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숨이 나오는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진단받았던 병에 대해서는 이미 치료가 끝났고, 오늘은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보러 온 것인데, 접수대 혹은 기본 검사실에서 잘못 오더를 내린 것인지, 다른 과 전문의를 부른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그럼 또 얼마를 기다려야 되는 것인지 앞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검사실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야,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다. 복부 초음파, 심장 초음파 등을 거쳤지만, 특별한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자, 의사가 위내시경을 권했다. Hausarzt에서는 그렇게도 트랜스퍼해주지 않던 위내시경을 드디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동의서(수술이라고 하니까 뭔가 거창하지만)와 입원 수속을 위한 서류에 하나하나 사인을 해나갔다. 한국에서 이미 세 번이나 했던 내시경 시술임에도 불구하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타지에 병원에서 홀로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니 정말 나는 이 나라에서 혼자고, 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은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되었다.


급하게 병원에 오느라 먹은 것도 없이 대기실에서만 4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는데, 다음날 내시경 일정이 아직 정확히 잡히지 않았다며, 금식까지 해야 한다 했다.


팔에는 주삿바늘을 꽂은 채, 접히지도 않는 팔로 겨우 입원복으로 환복을 하고, 침대에 누우니 병실이 보였다. 


구토 증상이 있다고 하니, 1인실을 주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병동을 쓰는 게 신경 쓰였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내 상황을 알리고, 먹은 것이 없어 더 기운 없는 몸을 빨리 눕히고 휴식을 취했다.


(사진 출처: 본인 촬영)


다음날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병원 수속, 병원 식단을 안내하러 담당자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왔고, 9시가 좀 안되었을 무렵, 다행히 위내시경 시술이 확정되었다며 30분 내로 검사실로 내려간다고 했다.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하나 했는데, 침대에 누운 채로 스탭이 검사실까지 이동시켜주었다. 병원 천장을 보며 검사실 까는 가는 장면이 드라마에서 수술실 들어갈 때 보여주던 View와 겹쳐 보이며 기분이 묘했다. 


살면서 지금까지 위내시경을 3번 정도 받았는데, 항상 비수면 내시경만 고집했었다. 의식을 놓는다는 것이 영 찝찝하기도 하고, 시술 장면을 내가 직접 볼 수 없다는 이유였는데, 이 병원의 경우에는 수면 내시경으로만 진행을 한다고 하였다. 마취제를 놓으면서 간호사의 "Sweet dreams (잘 자)"를 듣자마자 10초도 안되어 잠에 빠져들었고, 간호사가 깨워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시술이 다 끝난 직후였다.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식을 먹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악명 높은 독일의 병원식.

역시 소문대로 놀라운 구성의 식단이었다.


(사진 출처: 본인 촬영)


한국처럼 환자식, 죽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환자식의 신세계라고나 할까.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슈 페츨 레, 찐 브로콜리와 요구르트.


소화가 안돼서 들어온 환자에게 소고기는 좀 과하지 않나 싶었지만, 기운을 조금이라도 내보고자 포크를 움직여보았다. 비록 소고기는 물에 불려 터진 것 같았고, 슈 페츨 레는 결국 소화가 잘되지 않아 먹다가 포기하였다. 브로콜리는 너무 쪄진 상태여서 다 바스러져서 먹을 수 없어서, 결국엔 요구르트와 차로 식사를 마무리하였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 2시간 만에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이상 없음. 도대체 그럼 왜 계속 소화가 안되고 통증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전문의는 위내시경 결과 이상 소견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결과서를 발급하고 병실을 떠났다. 그래도 당장 소화 기관에 이상은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여전히 답답하고 찝찝한 마음을 안고, 퇴원을 하였다. 


혼자서, 응급실에 가고 내시경을 받고 하룻밤에 있었던 일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고, 하루라도 빨리 한국을 가서 검사를 하고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어졌다. 


독일에서의 응급실 해프닝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프로세스가 지나친 인내심을 요구하는 시스템이고,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검사를 받고 하룻밤 입원에 나에게 청구된 돈은 단 10유로였다.


물론, 좀 더 상세한 진단 결과와 처방을 기대하였던 나에게는 돈은 부차적인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까지 과도하게 청구되었다면 정말 다 내던지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이후, 2주 동안 심한 기침으로 갈비뼈에 금이 가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한국에 잠시 다녀왔고, 가서 돌아오게 된 지금 생각해보면, 유독 추운 독일의 집 실내 환경, 아침에는 어학원, 오후에는 일을 하며 몸과 마음이 피로하게 된 모든 상황이 겹치면서 가장 스트레스에 취약한 위가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오게 된 것 같다. 


해외에서 홀로 몸이 아프다는 건 단순히 서럽다는 말로 부족하다. 내 몸을 너무 혹사시킨 건 아닌지, 내 책임에 대한 반성을 뼈저리게 하게 만든다. 한국처럼 쉽고 빠르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들 아프지 말고 건강히 타지 생활하시길.



작가의 이전글 타지에서 홀로 아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