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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현 Aug 21. 2021

안팎의 '형님'들

부르지 못한 그 이름

내 일터엔 '형님'이 참 많다. 회사 안에도 밖에도 많은 '형님'이 계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형님'이라 부를 수 없었다.


회사 안의 '형님'들.


요즘은 코로나로 보기 힘들어진 광경이지만, 술잔이 몇 바퀴 돌면 일부 동료들은 그렇게 '형님'을 찾는다. 선배도, 부장도, 심지어 국장도 '형' 또는 '형님'이 된다. 처음엔 마냥 부러웠다.


'내겐 어려운 선배인데 쟤는 정말 편하게 대하는구나'


그런 장면을 몇 번쯤 보고 나니 궁금해졌다.


'내가 저 선배께 '오빠'라 부르면 어떻게 될까?'


정말 갑분싸... 하지 않을까. 사실 상상조차 어려운 장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함을 넘어 불편함이 왔다. 내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님'이다.



방송국에는 또 다른 '형님'도 있다. 취재차의 운전을 맡는 분들을 '형님'이라고 한다. 취재차량 '기사님' 같은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 말은 나 역시 써왔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분들을 직접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같이 현장에 나간 오디오맨(영상취재기자와 짝을 이뤄 음향을 챙기고 촬영도 돕는다)에게 "형님 연락처 있어요?"라고 묻는 식이었지, 직접 "형님, 안녕하세요?"라고 해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역시 나로선 편치 않은 호칭이었다.


사실 기사님이라고 부르기엔 거리감이 있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 신속함이 생명인 취재현장에서 역할의 중요성이나 동료의식에서 나온 호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보도국의 대부분을 형님과 '남'동생이 채웠던 시절의 유산이 아닐까.



회사 밖에도 '형님'은 많다.


우선 주로 초년병 때 일선 경찰서에서 만나는 경찰 '형님'이다. 형사들에게 새벽부터 찾아와 사건 없냐고 묻는 기자들은 정말 귀찮은 존재다. 그럼에도 친화력 좋은 동료들은 금세 자신의 '형님'을 만들곤 했다. 주로 외진 곳에서의 '담배 타임' 때 그런 호칭이 나왔던 것 같다.


얼마 전 여자 동기들과 '형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아직도 반짝임을 잃지 않은 한 동기는 그 시절, 자신도 "형님" 따라 부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형님' 앞에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ㅎㅓㅇ님, 그래서 OOO은 집회 신청을 했나요?"


앞부분은 들릴 듯 말 듯.


취재현장이 바뀌어도 '형님'은 어디든 있다. 국회에도 정부에도... 도처에 '형님'은 있었다. 나는 제대로 부르지 못한 그 이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울렸다. 남편 대뜸 이렇게 받았다.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남편은 기자도 아닌 회사원이다. 통화가 끝난 후 나도 모르게 쏘아붙였다.


"누군데 전화를 그렇게 받아!"

"우리 회사있다가 나간 선배.  왜?"


그래, 호칭이 애매하겠다... 싶으면서도 한 마디 붙였다.


"제발 그 형님 좀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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