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지야 꼭지야 엄마 어디 가셨노?"
어린 시절 나는 이름대신 꼭지라고 불렸다. 당시엔 아들이 없는 집 막내딸을 꼭지라고 부르면 남동생을 본다는 속설이 있어서 나도 그리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동네 아줌마들이 " 꼭지는 왜 꼭지고? 라 물으면 나는 어김없이 " 아들 낳지 말라고 꼭 지래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모두가 큰 소리로 웃고 " 야 아 대답하는 거 보소 아이고 웃긴다 " 라며 깔깔댔다.
나는 그들의 웃음이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반대로 대답해서 웃어제끼는 그들과 함께인 순간이 좋아서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웃음은 웃음이니까.
꼭지 꼭지 산꼭지 수도꼭지 사과꼭지
무엇하러 나왔나 큰 사람 되러 나왔지
이런 가사에 맞춰 언니들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일명 꼭지송이라고 해서.
지금도 친척 어른들이나 당시의 주변분들은 나를 꼭지라고 부른다. 모든 것의 끝자락 꼭지. 끝에 붙은 존재 꼭지.
꼭지라 불리면서 나는 그 이름이 창피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꼭지는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꼭지 같은 애.
살면서 이후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생겼다. 천주교 세례명인 효주 아녜스. 한국인 성녀의 이름이라 효주와 그녀의 세려명 아녜스까지 합쳐져 두 개나 되었다.
어학연수를 가서는 영어이름 코코로 불리웠다.
선영, 꼭지, 효주 아녜스 , 코코. 내 이름들이다.
때마다 장소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 시간은 흐르더라.
요즘은 남편이 나를 꼭지야라고 부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부를 때마다 나는 또다시 80년대 부산 영도에서 막내딸이던 나로 돌아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