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심조원
동화책을 통해 글로 읽고 구전으로 전해 들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22가지가 구술 채록본에 남겨져있는 글 일부를 발췌해 구성한 책이었다.
채록본에서 발췌한 글들은 사실 서울말을 오래도록 써온 내가 한 번에 읽는 것이 쉽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단어 뜻을 생각해야 했다.
작가님이 채록본 밑에 해설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구전을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었기에 삼십 대 이전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필요할 듯하다.
22가지 구전동화와 작가님의 해석을 읽는 시간 동안 동화의 결말이 지금껏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도, 숨겨져 있는 색다른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좋지 않은 정신적 유산이겠지만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많은 생각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22가지 이야기 속에 있는 내가 꼽은 문장을 공유하고자 한다.
구비 문학은 여성이 주인공이며, 여성 스스로 목소리를 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류이다.
. 우렁이 각시
: 부엌에는 또 다른 위계가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부엌의 주도권을 넘길 생각이 없다.
옛이야기는 대부분 여성들의 '말'이었으며, 남성의 문자로 재해석된 것에 한해 간신히 문학 대접을 받아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렁이 각시는 주류 사회에서 재창조한 남성판타지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집단의 기억은 주류 남성들의 기획물이다. '효자로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다 보면 평생 말없이 밥 해주는 예쁜 여성을 얻는다'는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 방귀쟁이 며느리 : 가부장 사회에 포위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상징한다.
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집과 자기만의 방으로부터 추방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자의 에너지, 곧 생기는 소통할 길을 잃고 감옥이 되어 버린 몸에 갇힌다.
. 여우 누이 : 그 집은 부자다. 권력과 부가 가득하고 아들도 셋이나 된다. 오직 없는 것은 딸!
풍요로움을 보지 못하고 부족한 나라를 채우지 못해 안달이다. 신은 풍요로움을 축복할 기회를 놓치고, 그들에게 자신들과 똑 닮은 욕망 덩어리를 고명딸로 선물한다.
말은 행정과 전쟁에 동원되는 짐승이다. 막내딸이 갈망하는 '사람'은 정치, 군사, 권력의 주인이며, 천 명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절대 권력자의 자리다.
전쟁이나 기근, 전명벙이 휩쓴 뒤에 쑥대밭이 된 마을. 지금까지 그런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남성 가부장 권력이다. 여우는 사나운 땡볕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아버지인 당신을 '미러링'하고 있는 '빌런'인 셈이다.
. 내 복에 산다. : 아버지는 딸의 생각을 물은 것이 아니다. 가부장의 지위와 가족 내부의 위계를 뚜렷이 해 두고자 해 본 소리다. 지금까지도 가정 폭력은 '집안일'이고, '버릇을 고치는 것'은 가부장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들 한다.
숯장수 총각은 아버지와는 다른 남자다. 그는 순하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전 재산인 숯가마를 헐어 아내를 뒷받침한다.
막내딸이 찾은 것은 신분과 나이와 젠더라는 그을음 속에 가려져 있던 뜨거운 생명력이자 불처럼 일어나는 기운이다.
'내 복'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부장의 부와 권력은 그가 훌륭해서 독점할 수 있었던 게 아니며, 돌을 금으로 만드는 복은 공감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관계에서만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나 현실에서나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지만, 가해자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때가 많다.
용서와 화해는 삶을 받아들이려는 생존자의 독백이 되기 일쑤다.
가족 관계의 폭력적인 위계 속에서도 억척스레 살아남은 막내딸들이 여전히 듣기 어려운 말은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한마디.
. 선녀와 나무꾼 : 성폭력과 약탈혼을 가해자의 눈으로 로맨틱하게 그린 혐의가 짙다.
포수가 살아 있는 노루를 그저 사냥감으로 바라보듯, 총각은 '색시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긴다. 그가 몰랐을 뿐 연못은 평화로운 공존과 환대의 장소였던 것이다.
날개 옷은 선녀의 얼굴이자 영혼이지만 사내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다.
상대방이 자기와 다르거나 낯설어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사랑의 바탕이자 하늘 사람의 첫 번째 덕목이다.
나무꾼은 선녀의 당부를 잊고 다시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해 주저 않아 수탉이 되었다. 수탉은 모성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해 끝내 성인이 되지 못한미성숙한 아들의 모습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하늘 사람으로 성숙해지기가 이렇게 어렵다.
. 밥 많이 먹는 색시 : 이야기 속 부부가 사이좋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론이 드문 것은 여성의 몸과 욕망에 대한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시선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 호랑이가 노리는 것은 여자의 몸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늙은 몸뚱이를 먹어 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는 뻔뻔함이다. 여자는 누구에게도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연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고, 공감을 앞서 워 질문을 퍼붓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것처럼 오지랖을 피우거나 가르칠 들지 않았다.
. 과부와 도깨비 :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글자다. 도깨비방망이는 성욕의 양면이다. 잘 가꾸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물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도깨비는 패거리를 모으고, 서열을 짓기 좋아하며, 우쭐대면서 몰려다니는 남성 서열 집단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말을 잃고 겉도는 가부장처럼, 도깨비는 밝은 곳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감투나 완장은 위계를 표시하는 물건이다.
사랑은 자신의 가장 취약한 모습마저 내놓고 상대의 공감을 얻는 과정이다. 둘 사이의 밀당은 폭력 없이 상대의 몸에 다가가려는 감정 소모를 동반한 노동으로 이어져 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돌보고 위로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쫓겨난 도깨비는 자기가 도리어 피해자라며 소란을 떤다. '꽃뱀'한테 억울하게 당했다는 소린데, 떠들어 댄들 여자가 대문을 다시 열어 줄리는 없다.
주인공은 언제나 긴 밤을 버티고 살아남이 이야기하는 당신이다.
. 도깨비방망이 : 소년의 성장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야기이며, 두 개의 방망이는 현제 앞에 놓인 남성서의 두 갈래 길을 가리킨다.
성욕은 삶의 에너지가 되지만, 잘 다루지 않으면 폭력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정제되지 않은 욕망은 쓸모는 고사하고 자신과 이웃을 위험으로 끌어들이므로 환영받지 못한다.
. 아기장수 이야기 : 태어난 아기가 '허락받은 경로를 거치치 않았거나' '정상이 아닌 몸'은 냉혹하게 거절된다.
.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새 : 통제되지 않는 섹슈얼리티와 발언을 뜻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내뱉는 언사다. 괴물새가 간 길은 그동안 어마가 해 오던 노동으로 이어져 있다.
. 콩쥐 팥쥐 : 콩쥐는 가부장제의 방임과 학대를 딛고 노동과 연대의 힘으로 강인하게 살아남은 여성의 생존기다.
의붓어머니는 팥쥐를 통해 상승하기를 꿈꿀 뿐이다. 팥쥐는 욕망이자 집착이며, 콩쥐는 외면하고 싶은 누추한 현실이다.
자기 몸을 부정하면 누구를 사랑하기 어렵다. 낮은 자존감은 집착을 부를 뿐이다.
부부는 높고 낮은 위계에서 벗어나 하 쌍의 젓가락처럼 나란히 서야 사랑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콩쥐는 '말하는 아이'였다. 말들은 분노와 설움을 달래는 노래였으며 세상과 연대하는 무기가 되어 왔다.
. 손 없는 색시 : 어머니는 체액인 젖을 주고 몸의 비밀을 공유하는 최초의 타인이다. 모든 인가의 첫사랑은 어머니를 향한다.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는 아이는 온몸으로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
어머니는 어머니 말고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
계급 사회일수록 하층 계급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되고, 상층 여성은 성적으로 구속되기 마련이다.
. 팥이 영감과 토끼 : 한 해 신생아 20명 가운데 한 명은 국제결혼으로 태어난다. 인구와 관련하여 오히려 급한 문제는 남의 새끼들과 잘 어울려 살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것은 귀한 내 새끼를 살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 아버지의 세 가지 유산 : 가부장제와 젠더, 신분 계급 제도와 기울어진 권력 구조 같은 것은 힘이 세지만, 인간을 완전히 가두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모든 것보다 큰 것은 사랑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어져야 할 것은 도끼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긍정이며 살아 있음에 대한 사랑이다.
책을 읽어보면 제목처럼 책 속에 있는 구전동화들을 읽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다른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내로서 딸로서 느껴야 했던 억압과 속박을 이야기라는 것으로 풀어내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며 숨 쉴 곳을 찾았을 여성들은 21 세이기인 지금도 곳곳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젠더를 구분하고 상대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은 끊임없이 소통해야 가능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