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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 (Edinburgh)

스코틀랜드의 보석 같은 도시

by olive


이번 여행에서 런던을 떠나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만난 도시 에딘버러는 상상 이상의 도시였다.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에게 영국은 런던이 대표하는 나라였다. 영국 하면 떠오르는 모든 장소들, 안개낀 템즈강, 빅벤, 런던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등등이 런던과 연관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영국의 다른 도시 이름이 다른 맥락에서 떠오른다해도 결국은 다 무시되고 오직 런던 하나만 알면 다 끝난다는 듯이 무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모든 것을 압축해서 핵심만 말할 때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런던 북쪽의 스코틀랜드 지역인 에딘버러와 인버네스, 하일랜드 등을 방문하고 나서 완전히 내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이란 단어가 말하고 있듯이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4개의 왕국이 합쳐진 나라였다. 그 중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영국은 잉글랜드로 대표되는 나라였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 착각이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으로 내가 알게된 관점이다. 이번에 잉글랜드를 넘어 내가 가서 본 곳은 스코틀랜드에 그치지만 가 보지 못한 웨일스나 북아일랜드도 잉글랜드와 판이한 자연과 풍습,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직접 가서 본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는 다른 나라였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합쳐진 것은 ‘블러드 메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메리여왕이 죽고 그뒤를 이은 엘리자베스1세마저 후사 없이 죽고나자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동군연합체의 왕이 되고 나서의 일이었지만 느슨한 형태의 통일국가는 18세기 중반의 컬로든 전투(Culloden Battle, 1746년)에서 스코틀랜드가 완전히 참패한 뒤에 비로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합쳐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통일이 된 지 불과 270년이 좀 넘었을 뿐이니 두 나라가 완전히 다른 문화와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일어났던 수 세기에 걸친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던 컬로든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을 이번에 직접 방문해 보고서야 비로소 스코틀랜드의 영국내에서의 특수한 위상을 알게 되어 잘못됐던 시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인 입장에서는 아직도 마음 속에 분노와 원한과 회한 속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정치적 배경을 차치하고라도 에딘버러와 런던은 첫인상부터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도시의 색깔에서부터 확연히 다르다. 런던의 건물들이 대부분 대리석으로 지어져서 옅은 황색을 띄는 반면에 에딘버러의 색깔은 거의 짙은 회색빛과 검은색에 가깝다. 그 지역 특유의 암석들이 검은색을 띈 현무암이거나 사암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처음 에딘버러에 도착해서 도시를 둘러보았을 때 처음엔 그 짙은 회색빛과 검은색에 놀라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짙은 회색빛이 우중충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또 흐린 날과 비오는 날이 많은 날씨와도 관련되어 우울한 잿빛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런 도시의 색깔이 무언가 새로운,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전혀 미지의 세계로 다가왔다. 실제로 내가 알던 단편적인 지식으로 스코틀랜드와 에딘버러를 견주어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에딘버러의 웨이벌리 역에서 나와 곧장 만나는 Market Street에 있었는데 오픈한 지 얼마 안되는 산뜻한 분위기의 호텔인데다가 중요 관광지들과 아주 가깝고 아침 조식도 맛있어서 좋은 평들이 많아 고민하지 않고 고른 호텔이었는데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단지 여기도 조식까지 합쳐서 매우 비싼 편이어서 인버네스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여기서 다시 자려고 해 놓았던 예약은 취소할지 말지 고민스러워졌다. 여행이란 평소 돈을 저축해놨다가 단시간에 한꺼번에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어차피 돈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초반에 예상 밖의 높은 지출을 하면 뒷부분의 남은 여행에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가 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에디버러의 주요 관광명소는 에딘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 길고 곧게 뻗은 도로인 약 1.6km의 로얄마일(Royal Miles) 근처에 다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로얄마일은 옛날에는 왕족들과 귀족들만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광명소 뿐만 아니라 호텔들, 가게들, 식당들, 분위기 좋은 카페까지 한군데에 다 있다. 이 거리만 두어 번 훑고 나서 에딘버러를 다 보았다고 해도 용서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류의 여행을 싫어하는 편이라서 본고장 사람들이 사는 동네, 공원, 가게, 식당들을 두루 돌아다니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단면들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여행 기간이 웬만큼 길어야만 이행해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에딘버러는 그중에서도 특히 몇 백년 전의 중세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몇 백년 전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살고 있고 오래된 거리를 거닐고 오래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래된 카페와 술집에서 차와 술을 마시고 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다분히 옛날의 사고방식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잠시 궁금해졌다. 인간은 누가 뭐래도 환경의 지배를 받으니까. 그렇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날 저만치의 어느 쯤에서 과거의 환상에 젖어 살아보고 싶다면 바로 여기에 찾아오면 된다. 과거의 건물들과 과거의 거리, 과거의 공간들은 20세기, 21세기 근처의 건물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워서 잠시 숨을 멈추게 한다. 우리가 과거의 장중하고 아름답고 멋진 건물들에 탐닉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오늘날의 건축에 동원되는 각종 기계와 기술들도 그리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순수하게 사람의 힘만으로 어떻게 그리도 웅장하고 정교하고 멋있는 건물들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부호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과거 사람들의 인내심과 노력, 열정, 의지, 강인함, 성실성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에딘버러의 건물들은 유난히도 힘차고 웅장하다. 건물들이 대부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탓인지는 몰라도 로얄마일의 모든 건물들은 한눈에 봐도 얼마나 튼튼하고 강건해 보이는지 그런 면에서 압도적이다. 수백 년이 지난다해도 그 자체로서는 허물어내릴 것 같지 않은 완벽한 모습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아마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강인하고 용감한, 불굴의 의지와 정신이 그 속에 깃들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에딘버러를 상징하는 첫번 째 장소는 뭐니뭐니해도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이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에딘버러 어느 곳에서나(건물 등으로 가로막힌 경우가 아니라면) 그 성을 올려다 볼 수 있다. 높은 절벽 위에 바위를 딛고 세워져서 사방을 굽어보고 있는 성은 궁전이라기 보다는 요새의 기능이 더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문을 통과할 때 문의 양옆에 수호신처럼 세워져있던 14세기의 스코틀랜드의 두 영웅 ,로버트 더 브루스와 윌리엄 월리스의 동상이 생존인물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성안은 실제로 가 보니 화려하다기 보다는 철두철미하게 요새로서의 기능에 주안점을 둔 건축물인 것 같았다. 연극배우처럼 말하던 젊은 남자 가이드의 영국식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에 따르면 에딘버러 성은 내부 배반자의 협력으로 성이 함락된 적은 있었지만 결코 외부세력에 의해 성을 빼앗긴 적이 없는 완벽한 요새라고 한다. 성안은 궁전의 기능과 요새의 기능이 적절하게 조화된 곳으로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기질이 드러나듯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실용적인 건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성안의 가장 오래된 건물은 12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마가렛 예배당으로서 데이비드 1세가 어머니에게 지어드렸다고 한다. 예배당은 성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데 개인 예배당답게 아주 작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며 창문은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외의 건물들은 대부분 16,17세기에 지어졌다. 성의 성벽과 망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에딘버러 전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저멀리 희뿌옇게 바닷가 쪽도 보였다. 성 자체도 튼튼하게 지어졌지만 절벽 높은 곳에 지어진 위치 또한 방어하기에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성에서 나와 로열마일 거리를 걷다보면 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 자일스 성당(St. Giles’ Cathedral )이 있는데 이 성당 또한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그 거리에서 단연 눈에 뜨이는 곳이다. 1124년 데이비드 1세에 의해 건축되어 성 자일스에게 봉헌되었다. 성당의 첨탑이 왕관 모양으로 되어 있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안에 들어가 보면 화려하다는 느낌 보다는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한쪽 벽면을 차지한 파이프오르간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당은 존 녹스의 종교개혁 운동이후 성당으로서보다는 개신교의 장로교회의 본산으로 더 오랫동안 이용돼 왔다고 하며 성당 내부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성당 앞 마당에는 <국부론>을 저술한 아담 스미스의 동상이 서있고 그 주위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언제나 혼잡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내려가다가 데이비드 흄의 좌상 앞에 이르면 거의 항상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킬트를 입고서 백파이프를 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연주자가 항상 같은 사람은 아니었고 어떤 때는 젊은 사람이, 어떤 때는 늙은 사람이, 또 언제는 빼빼 마른 사람이 불고 있었는데 두번에 한번 꼴로 <스코틀랜드 더 브레이브>(용감한 스코틀랜드)를 연주했고 그 곡은 언제 들어도 항상 괜히 서글픈 마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이 거리의 특색 중 하나는 위스키 숍과 체크무늬(타탄 무늬) 캐시미어 목도리 숍이 많다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위스키와 타탄무늬 캐시미어 목도리는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특산품이고 품질 또한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앞에 Glen 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지역명들은 게일어로 계곡을 뜻하는데 이런 지역들은 보통 하일랜드의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그곳에는 그 맑디맑은 계곡물로 위스키를 주조하는 양조장(Distillery)들이 숱하게 분포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스카치 위스키는 전세계적으로 최고로 인정받는다. 또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초원과 들판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양들을 보면 스코틀랜드가 왜 양모산업이 발달했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양털로 짠 타탄무늬의 목도리는 누가 봐도 혹할 수밖에 없는 탐나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식구들 선물로 줄 목도리를 사느라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그중 한 가게에서 결정장애를 극복하고 몇 개를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캐리어에 집어 넣었다.



에딘버러에서 들렸던 식당 중에는 세곳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매우 훌륭한 이태리 식당이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느껴서 두 번이나 가서 식사를 했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에서 나와서 약간 내리막길로 가다가 코너를 왼쪽으로 돌면 로얄마일로 통하는 언덕길이 이어지는데 그 중간쯤에 있는 식당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정말로 뜻밖의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 전날에도 그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바짝 마르고 늙수구레한 남자가 허름한 반팔 티 하나만을 입고서 달달 떨면서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았었다. 날씨가 꽤 쌀쌀해서 모두들 두터운 외투나 패딩을 입고 지나다니고 있는 것에 비해 그가 입은 옷만으로는 너무 추울 것이 뻔했다. 나는 지갑을 뒤져 몇 파운드라도 꺼낼까 말까 망서리다가 지갑을 꺼내려면 배낭을 내려 저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야한다는 생각에 너무 시간이 걸린다 싶어서 그만두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식당에 가서 바깥이 환히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어제의 그 남자가 다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아주 말끔한 차림으로 어제의 행색이 아니었다. 단정한 머리에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그는 그 자리에 오자 입었던 잠바를 벗어서 밑에 깔고 반팔 티를 비스듬히 해서 맨살을 드러낸다음 더러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머리를 손으로 막 헝클어 트리고는 돈통 비슷한 것을 앞에 꺼내놓고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달달 떠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서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완전 코미디로구나,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제 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쥐어주지 못해서 몹시 마음이 언짢았었는데. 실상은 완전 딴판이라니!!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심한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의 사이에 가로놓인 간극에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만족시켰던 또 하나의 식당은 “The world ‘s Ends”라는 식당이고 다른 하나는 ”White Hart”라는 Pub 이었다. <더 월즈 엔드> 라는 이름은 그 식당의 외벽이 16세기에 로얄마일 등이 있는 올드타운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플로든 요새의 일부로 되어 있으며 옛날에 에딘버러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으로 시내가 포위되자 그 벽 바깥은 더 이상 자기들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세계의 끝’이라고 불렀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름과 역사 때문인지 식당은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우리가 시킨 메뉴는 운 좋게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런던으로 떠나기 바로 전 마지막 날에 간 식당이 <화이트 하트>였는데 그것은 하얀 사슴을 뜻한다고 하며 그곳이 자랑하는 바는 에딘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오백 년 전부터(1516년 설립) 에딘버러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모여든 문인과 사상가들이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철학과 인생을 논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사람이 올리버 크롬웰, 윌리엄 워즈워스, 로버트 반스인데 로버트 반스는 이곳에 매우 자주 왔던 모양이다. 천정을 받치는 검은색의 서까래에는 하얀 글씨로 그곳에 왔던 명사들이 했던 말들이 빼곡히 써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잡기 힘들다고 해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간 것이 우리에겐 신의 한수였다. 우리가 오고나서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보고 평소에는 귀찮어서 잘 하지 않던 예약을 제대로 하고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둘이 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명성에 걸맞게 식사도 맛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고 얼마간 분위기를 즐기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간에 서있던 커플이 재빨리 다가와서 앉아도 되겠느냐고 양해하듯 묻는 말에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고마운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쯤부터 내리던 비가 좀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는데 가로등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돌로 된 포도가 멋있는 밤풍경을 선사해 주어서 내리는 비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일이면 잠시나마 정이 들었던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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