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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Oct 22. 2022

스페인의 산티야나델마르와 톨레도 여행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왔다. 사실 5년전에 남편과 함께 스페인 포르투갈을 20여일간 자유여행으로 갔다 온 적이 있어서 이번 여행이 나에게 꼭 절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하는 패키지 여행이고 또 그때는 미처 가보지 못했던 도시들이 여행도시목록에 빼곡했으므로 2번 중복해서 가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스페인 중에서도 옛날에는 가보지 못한 북부의 중요도시들이 많았고(빌바오,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 부르고스, 사라고사, 코미야스 등 ) 포르투갈의 파티마가 들어있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코로나로 인해 억눌려 있던 여행욕구를 한꺼번에 발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덤으로 더 좋았던 것은 기내2박, 호텔 9박의 여행비가 믿을 수 없을만큼 저렴해서 안 가는 것이 오히려 손해일 듯한 이상한 계산법이 작동해서 나를 충동질 해댔다.



  어쨋든 그렇게 해서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여행 가방을 싸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내 마음은 이미 공중 비행 중이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는 어린 학생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설렘과 기대 만땅으로 들떠 올랐다.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의 경유지인 두바이를 거쳐서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익히 알려진 관광지인(5년 전에 이미 갔던 곳이다) 성 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 보케리아시장, 람브라스 거리를 관광한 우리는 바닷가에 자리한 식당에서 그 또한 스페인 음식으로는 가장 유명한 파에야와 샐러드 등을 먹었다. 맛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으므로 Everything’s O.K. 였지만 역시나 패키지여행의 속성인 빨리빨리, 여기저기 찍기여행의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극복불가능한 단점은 어쩔 수 없었다. 바다를 굽어보고 높이 서 있는, 고개를 한참 젖혀야만 보이는 콜럼버스 동상의 아름다움과 그 주변 경치의 역사성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는 가야할 코스를 성실히 찍고 또 찍어야하는 갈길 바쁜 순례자의 모습일 뿐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자유시간 동안 피카소 미술관, 후안 미로 미술관 중에서 어느 한곳 정도는 볼 수 있겠지 하던 기대는 보기좋게 무너져 내렸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에 대한 여행기는 아예 써볼 생각도 않았다가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 딱 두 군데만을 뽑아서 여행기를 써볼까 생각을 바꿔 먹었다. 그곳은 나의 이전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접하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해준 도시인 싼티야나 델 마르(Santillana del Mar)와 톨레도(Toled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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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싼티야나 델 마르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혔다는 것이 특징이다. 왜 그런지는 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 도시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도시는 온통 300 ~ 500 년 전의 집과 건축물들 뿐이었고 그림책 속의 마을처럼 정감있는 풍경들이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도시의 탄생과 더불어 그곳을 지켜왔을 거리의 보도블럭도 옛 모습 그대로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반들반들하고 견고하고 투박한 옛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크고 작은 집들이 오랜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어깨를 마주 대고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 모습이라니!!  



산티야나델마르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로 추정되며 마을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은 대부분 16~17 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은 세상사람들에게 3개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유는 성스럽지도 않고(Santo) 평지도 아니며(Illana) 바다에 면해(Mar) 있지도 않다는 뜻이다. 뜻이나 유래는 어떻든지간에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동화속의 마을을 보는 듯한 환상적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옛모습이  보존된  도시를  보는 순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것이다. 골목길이나 열려진  앞에서 옛날 복식을  아리따운 처녀나 건장한 청년이나 귀여운 아이가  튀어나올 듯한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크고 웅장한 건물은   없으나 그것이  오밀조밀하고 앙증맞고 예쁜  도시의 주된 모습을 형성하면서 보는 사람들을 아늑한  시절로 환상여행으로 끌고 가기에 충분해 보였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편안한 기분을 가슴 가득히 느끼면서 한편으론  인간들은 옛것에 이렇게 강하게 끌리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지구에  떨어진 근본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조상들과  숨결을 같이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기인한 것인가   없다. 창조설인지 진화설인지 확신할 수가 없지만 지구상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류가 수십만  동안 주위 환경과 싸워 오면서  분투과정에서 만들어낸 문명의 흔적은 오래된 것일수록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 옛날에 대학입시를 앞두고 고고인류학과로 진학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나는 그러므로 옛날부터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여태 간직하고 살았던 것인지 모른다. 근처에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로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이 발견되면서 더욱 유명한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도시가 이렇게 옛모습을  보존하고 지켜오기까지 주민들과 시정부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좋은 문화유산을 물려받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마을 골목골목을 돌다가 발견한 파라도르(Parador) 호텔을 보면서 이런 곳에 오면 한번쯤은 저런 곳에서도 자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과연 명성에 맞게  파라도르는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규모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주도로의 1층은 대부분 기념품 상점이나 식당, 공방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외 2층, 3층 집들은 호텔이나 펜션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산티야나델마르의 모든 골목들이 거의 이런 모습으로 꾸불꾸불 이어져서 넋 놓고 목을 빼고 하는 마을 산책이 정말 재미있었지만 아쉬운 점은 그 좋은 걸 오래 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곳 주민들은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집집마다 창문과 1층 입구를 각양각색의 꽃들로 예쁘게 장식해 놓는 것 또한 잊지않았기 때문에 이끼 낀 돌담들과 약간씩 허물어진 건물의 벽들, 세월의 더께가 묻은 붉은 벽돌색 지붕들과 전통 양식의 창문, 문틀과 어울려 꽃들의 배합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언젠가 꼭 다시 찾고싶은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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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서 16세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곳이다.  지난 번의 여행  코르도바와 이곳 중에서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다가 아깝게도 코르도바에 밀려 우리의 여정에서 빠지게  도시인데 이번 여행에 톨레도가 끼어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톨레도는  내가 여기를 이번에 오게 됐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정도로 정말 멋진 곳이었다. 왜냐하면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이곳에서도 체류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의 관광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톨레도는 그런 식의 관광으로는 절대로  참맛을 느낄  없는 깊이와 부피와 매력을 가진 도시였으므로  아쉬움은  수밖에 없었다.


  

  1561년 통합스페인왕국의 펠리페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 전까지 구 스페인 왕국의 심장부이자 정치 군사 예술 종교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톨레도는 무려 20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했던 도시이다. 수도가 바뀐 이후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그때문에 그 자체로서 역사박물관이라도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 도시는 화려했던 전성기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스페인 역사의 산 증인처럼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흔히들 말하기를 톨레도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건축양식들이 공존해 오면서 세 건축양식이 혼합된 도시로서의 특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 양식들은 또 각각의 양식을 결합시키고 녹여낸  독특한 무데하르 양식으로 발전되었는데 그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또한 그 복합적 아름다움으로  칭송받고 있다.  톨레도는 그 다양한 건축양식들의 전시장 혹은 집합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다왔고 신비로웠다.



  우선 톨레도는 도시가 위치한  장소부터 아주 특별한 느낌을 준다. 해발 500m 넘는 산등성이에 촘촘하게 건물을 축조하며  주위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 쌓았는데  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성벽들은 오늘날도 묵묵히  투박하고도 견고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도시를 적들로부터 완벽하게 지켜내고 있는 모습이다. 톨레도의 구시가지는  성벽뿐만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르면서 구불구불 흘러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흘러가는  타호강으로  둘러싸여있다.  타호강의 위로는  여러개의 오래된 다리들이 놓여져 있는데  오래된 중세도시와 언덕위에 자리한 건물들과 타호강과  위에 걸쳐진 다리들이 이루어 내는 장면은 멀리서 봤을  헉하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할말을 잊게 만들었다. 옛날에 흔히 보았던 명화의  장면을 연상케하는 톨레도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오래된 성당과 궁전들, 집들,.  언덕의  삼면을 감싸고 돌아 흘러가는 타호강, 좁은  위에 걸쳐진 오래된 다리와 탑들..  나는 오래도록  장면에서 눈을 떼고 싶지가 않았다.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말없이 그렇게 거기 존재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한 순간에 수백 년 전의 과거로 시간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으로 그 풍경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로부터 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톨레도에 도착한 우리는 도시 중심지로 올라가는 긴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투어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현대의 첨단 기계문명과 오래된 중세도시가 왜 이렇게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돼야 하는지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이 없이 걸어서 올라왔다면? 오, 생각만해도 아찔한 힘든 노역이 될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편리함에 너무 많이 길들여진 우리들로서는 너무 당연한 듯 자연스러워서 쓸데없는 문제제기는 필요없어 보였다..

  


  올라간 뒤에 우리는 미니열차(쇼코트랜)을 타고 우선 톨레도 도시 전체를  돌아보는 일정을 시작했다. 이 미니열차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미라도르 전망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톨레도에서는 꼭 타봐야하는 명물이었다. 그것은 어린애들이 유원지 같은 곳에서 즐겨타는 코끼리 열차처럼 귀여운 모양새를 하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비집고 돌아다니고 도시 외곽으로 통하기 때문에 필수코스인 셈이다. 그 미니열차를 타고 강 저편으로 건너가서 톨레도 구도심을 조망했던 일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톨레도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본 듯한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 그 풍경은 정말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다.


 미니열차에서 내려 이번엔 구도심을 도보로 걸어서 둘러 보았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알카사르는 세르반테스 언덕 위 해발 548m 에 있었고 당당하면서도 위용있는 멋들어진 건물로서 도시 전체를 굽어보고 있는 요새 겸 궁전이다. 알카사르는 스페인 전역에 많이 있지만 톨레도의 이 알카사르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며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 시기에 이슬람 세력과 싸우기 위한 요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멀리서 겉에서만 둘러보았다. 그리고 톨레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이라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목표는 바로 톨레도 대성당인데 이 성당은 13세기에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서 16세기에 완공된 성당으로서 외관부터도 몹시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다. 초기르네상스 양식과 후기 르네상스 양식, 무데하르, 바로크,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 알카사르와 함께 도시의 주요풍경을 이루는 모습은 톨레도만의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으로서 많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든다. 거기에서 나와 이번에는 엘 그레코의 최대 걸작인 “오르가스 공작의 매장” 벽화가 걸려있는 산토 토메 성당으로 향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톨레도는 엘그레코의 도시로 자리매김될 정도로 톨레도와 엘그레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서 그 현장에 와서 엘그레코의 그림을 보는 심정은 뭔가 뭉클한 기분이었다.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신인 엘그레코는 본명이 아니고 그냥 보통명사처럼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니 엘그레코의 입장에서는 그 이름을 좋아했을까 싫어했을까 알쏭달쏭해진다.



  시간에 쫓기듯 서둘러서 중요한 곳만을 둘러보는 이번 여행의 속성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시내 중심가의 상점골목에서 재빠른 쇼핑을 했다. 나는 톨레도의 중요 토산품인 종이가죽 가방 가게에서 뭐를 사야할까 망서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산채 나오고 말았지만 나중에 보니 나와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다른 일행은 그 짧은 순간에 원피스며 가디건이며 조끼 등을 사서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역시 쇼핑고수들과는 비교가 안되는구나 하고 잠시 낙담(?)하고 말았다. 짧은 쇼핑을 마친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톨레도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이 멋있는 곳에 와서 고작해야 두 시간 남짓의 시간밖에 머물 수 없다니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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