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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Feb 02. 2023

옛 노래

백수 중년의 생 바라보기 12

내 주위 친구들과 아는 사람의 대부분은 7080 노래나 심지어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의 트로트를 좋아한다. 나는 당최 그런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옛날 노래에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인지, 아님 멀리서 본 과거는 언제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 때문인지, 시대의 흐름을 왜 거부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몸의 근육은 점점 영혼보다 더 빨리 날아가고, 흰머리는 마치 폭설이 내린 양 늘어나는데, 듣는 노래마저 예전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러한 행동이 자신의 변하는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그 시대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자신이 아직도 그 시대에 있다고 착각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인간은 기억의 시간을 조작하는 창조물이다. 좋은 것은 길고 늘어지는 시간으로 인식하고, 나쁜 것은 짧게 줄여 머릿속에 저장하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나간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행복한 시간을 늘리려는 시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는 술에 취하면 어린아이처럼 트로트나 7080 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그러면서 내가 그의 흥에 맞추어 한 소절 따라 불러주면, 그 친구는 “역시 너 랑 나랑은 같은 추억에 잠겨 있구나!”라며 감탄한다. 그러면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되묻는다. 난 그 친구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떨떠름한 목소리로 “응”하고 매번 답하지만, 실은 속으로 “난 이 노래 잘 몰라”라고 무슨 큰 비밀이라도 숨기는 양 되뇌곤 한다. 


흘러간 노래가 듣기 좋지 않다 거나, 가사나 멜로디가 시원찮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명곡들이고, 나한테도 일정 부분 추억이 담겨 있다. 


아내와 연애하던 어느 날, 비 오는 수요일에 극장 앞에서 빨간 장미를 건넨 적도 있다. 그때는 그게 멋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과연 지금 비 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건네면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젊은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이처럼 시대의 유행은 변하고 그 속도는 광속이다.


예전엔 히트하는 곡이 5주 연속으로 1등도 하지만, 지금은 1주일 하기에도 벅차다. 또한 싱글 앨범이라는 이유로, 앨범 수록 곡이 한 곡이다. 예전엔 최소 10곡이상씩 꽉꽉 담아서 건전가요까지 들어가야 앨범을 낼 수 있었으니, 최소 가수의 컴백기간이 빨라야 1년, 늦으면 2,3년은 보통으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 달만 지나도 새 곡이 나오고, 거기에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가수들과 협업을 하며 그 노래와 앨범 수들을 무한 증식하고 있다. 


얼마 전 조카 녀석들이 내가 사는 제주도를 놀러 온 적이 있다. 그 조카들이 내 나름 최신의 노래만 듣는다는 자부심으로 차 안의 플레이리스트를 들려주었더니 기겁을 하며 말한다. “그거 너무 오래전 거잖아요”. 심지어 저장된 곡들이 작년에 유행하던 노래들인데 말이다. 요즘 세대들에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7080 노래처럼 취급한다. 혹자는 이러한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나고, 그런 노래의 깊이가 얼마나 있겠냐고 한탄을 한다. 어쩌면 옛 노래와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반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이런 빠른 속도의 유행노래들이 깊이가 없고, 경박하다면, 현재 K-POP이라는 명목으로 세계를 홀리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그러니 그런 의견이 오히려 경박하고 경솔한 생각인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를 따르지 못하면, 내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그 변화의 옷을 갈아입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그 흘러간 노래의 시절에 갇혀 옛 가요처럼 본인도 점점 잊힐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전통가치를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론 요즘 젊은 세대들이 무슨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 문화를 즐기며 살아가는지를 어른이 된 우리들의 입장에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과 함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나누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유행코드의 언어를 모르면서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메아리 없는 울림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만 우리는 비로소 꼰대라는 가면을 벗을 수 있다. 그런 것이 어른이 가지는 책임이며 의무이다. 어른인 우리는 대접받고 싶으면서도, 정작 어른이 되려고 노력했는지를 차근히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노래가 유행하는지 스트리밍 음원에 접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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